입력 : 2016.12.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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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거함거포 시대의 짧고 굵었던 대해전

유틀란트 해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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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작된 대해전

지난 도거뱅크 해전 당시 히페르는 처음부터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망가기 급급했고 비티는 앞선 전력에도 불구하고 잠수함을 겁내 추격을 포기하면서 대승의 기회를 날렸었다. 어정쩡하게 승패가 갈렸지만 이들은 모두 본국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에 이번 출동에서는 남다른 의지로 임했다. 5척의 순양전함으로 구성된 히페르의 수색전대와 6척의 순양전함으로 구성된 비티의 순양전대가 이제 다시 운명의 대면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색전대를 이끈 프란츠 폰 히페르(가운데) 제독과 그의 참모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훗날 나치 독일의 해군 총사령관이 되는 에리히 레더다. <출처: (cc)Bundesarchiv at Wikimedia.org>

5월 31일 14시 15분, 전방을 초계하던 영국의 경순양함 갈라타(HMS Galata)가 덴마크 서쪽 100km의 유틀란트 해역에서 독일 군함을 발견했다는 급보를 타전했다. 이에 비티는 속도를 높여 해당 해역으로 달려갔고 바로 뒤에 이반-토마스(Hugh Evan-Thomas) 제독이 이끄는 4척의 전함으로 구성된 제5전함전대가 추격에 동참했다. 비티는 수상기를 발진시켜 수색에 들어갔지만 날씨가 나빠 독일 군함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정작 상대를 먼저 발견한 것은 히페르였다. 15시 20분경, 좌현에서 2열 종렬진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속도를 높여 다가오는 비티의 순양전함들을 발견하자마자 히페르의 수색전대는 전투태세에 돌입하며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레이더도 없이 육안과 청각으로만 목표물을 찾던 시대였지만 5분도 되지 않아 비티도 상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해전 직전의 상황도. 히페르와 비티가 이끄는 전대가 앞서고 양쪽 모두 약 50마일의 간격을 유지한 채 함대 본진이 뒤쫓아 왔다. <출처: (cc)Grandiose at Wikimedia.org>

이들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젤리코와 쉐어도 함대 본진을 이끌고 해당 공역으로 변침했다. 그러는 사이 히페르와 비티의 전대는 서로 평행하게 상대의 측면을 바라보며 포를 겨눈 상태로 서서히 간격을 좁혀 들어갔다. 마침내 15시 48분, 거리가 13km 이내로 줄어들자 독일이 먼저 포격을 개시했다. 독일에서 스카게라크 해전(Skagerrakschlacht)이라 부르는 역사적인 유틀란트 해전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초부대 간의 격돌

순양전함 라이온과 타이거가 연이어 명중탄을 얻어맞았다. 특히 순양전대의 기함인 라이온은 중앙 포탑이 격파되었는데, 만일 탄약고를 신속히 폐쇄하지 않았다면 유폭으로 인해 굉침(轟沈)당할 수도 있었을 만큼 피해가 심각했다. 하지만 비티의 어려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순양전함 인디패티거블(HMS indefatigable)이 격파당하며 유틀란트 해전에서 침몰한 첫 번째 함정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것이었다. 불과 3명만이 운 좋게 구조될 수 있었다.

폰데어탄이 발사한 명중탄을 맞고 침몰 중인 영국의 순양전함 인디패티거블. 유틀란트 해전에서 처음 격침된 함정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히페르의 전대도 포탄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초전은 이처럼 우세했다. 적어도 개전 30분만 놓고 본다면 히페르는 지난 도거뱅크 해전에서 입은 굴욕을 곱절 이상으로 비티에게 돌려준 셈이었다. 티르피츠는 해군력을 구축할 때 양으로는 영국을 이기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고 질을 높이는 정책을 폈었다. 덕분에 독일 함정은 영국 함정보다 맷집이 좋았다. 반대로 이번 해전을 통해 젤리코는 영국 함정의 방어력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처럼 비티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반-토마스 제독이 거느리는 4척의 영국 전함들이 전투 공역에 도착하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이들이 17km 외곽에서부터 사격을 개시하자 직전에 인디패티거블을 격파해 승리의 감격에 빠져 있던 폰데어탄(SMS Von der Tann)이 명중탄을 맞고 침수되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자이들리츠도 중앙부 포탑이 폭발하면서 전투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무려 600m의 폭발 연기를 남기고 심연 속으로 사라진 영국의 순양전함 퀸 메리.

이처럼 히페르도 4척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나마 비티보다 경미해 대양함대 본진이 도착할 때까지 교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기진맥진한 데플링게르와 자이들리츠가 혼전 중이던 순양전함 퀸 메리(HMS Queen Mary)를 목표로 일제 사격을 했다. 정확하게 탄약고를 가격당한 퀸 메리는 연기가 600m나 올라가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단지 8명의 생존자만 남긴 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마디로 비티의 순양전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영국의 후퇴로 막을 내린 서전

이렇게 난타전을 벌이던 양측 선두부대의 주력함들이 급속히 전투력을 상실하자 이들을 호위하고 있던 30여 척의 양측 경순양함과 구축함들이 앞으로 달려 나와 마치 백병전 같은 혼전을 벌였다. 이처럼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망설임 없이 퍼부었을 만큼 비티나 히페르 모두 물러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16시 28분이 되었을 때 비티는 전투 공역 남쪽에서 후방을 초계하던 영국의 경순양함 사우샘프턴(Southampton)으로부터 급보를 받았다.

비티의 순양전대와 히페르의 수색전대의 교전 상황도. 고전을 겪던 비티는 대양함대의 존재를 확인하자 약 한 시간의 교전 끝인 16시 45분 후퇴에 돌입했다. <출처: (cc)Grandiose at Wikimedia.org>

엄청난 규모의 독일 군함들을 발견했다는 정보였다. 바로 쉐어가 이끄는 대양함대 본진이었다. 그들은 최초에 수립된 작전대로 비티의 순양전대를 격멸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영국은 이미 대양함대의 출동 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양함대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 비티는 16시 45분 예하 부대에게 북쪽으로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유틀란트 해전 최초의 대결은 막을 내렸다.

비티의 갑작스런 퇴각은 대양함대 본진과 함께 포위전을 펼치고자 했던 히페르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도주하면 모든 것이 허사였기에 히페르는 자신의 수색전대가 많은 손상을 입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변침해 즉각 추격에 나섰다. 우리 안으로 거의 들어온 먹이가 갑자기 도망간다는 보고를 받은 쉐어도 조급함에 속력을 더했다. 쉐어나 히페르는 역으로 자신들이 영국의 의도에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엄청난 배기 연기를 내뿜으며 전속 항진 중인 영국 대함대의 모습. 머지않아 사상 최대의 함대 간 정면충돌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비티의 순양전대가 이미 많은 피해를 본 상황에서 독일의 대양함대 본진과 싸울 수는 없기에 퇴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더불어 이는 자신들이 미끼가 되어 독일의 대양함대를 젤리코가 이끄는 대함대 쪽으로 유인하는 수순이기도 했다. 16시 38분 상황을 보고받은 대함대 사령관 젤리코는 이제 양쪽 해군이 모든 것을 걸고 싸울 거대한 해전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알았다.


서로의 존재를 깨닫다

젤리코는 사전에 전투 진형을 갖추기 위해 대양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물었으나 정신없이 후퇴 중이던 비티는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보고가 지연되자 젤리코는 침로를 동남동으로 변경하고 비티에게는 대함대의 전방으로, 이반-토마스에게는 후방으로 합류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퇴각하던 2척의 장갑순양함이 항로를 잘못 잡아 격침당했고 1척의 전함이 고장나 엄청난 타격을 입고 간신히 모항으로 귀환했다.

히페르의 기함이었던 루초우. 장갑이 두터워 많은 타격을 입고도 교전을 계속하였지만 결국 퇴함 후 자침되며 유틀란트 해전에서 독일이 상실한 유일한 순양전함이 되었다.

잠시의 소강상태는 18시 21분경, 후드(Horace Hood) 제독이 이끄는 영국 제3순양전대가 나타나면서 깨졌다. 곧바로 엄청난 포격전이 재개되어 히페르의 기함인 순양전함 루초우(SMS Lützow)가 완파되었고 결국 퇴함 후 자침되었다. 반면 후드의 기함인 순양전함 인빈시블(HMS Invincible)은 명중탄을 맞고 함이 둘로 쪼개져 침몰하는 최악의 결과를 당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쉐어는 제3순양전대의 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평선 멀리에서 영국 함대 주력의 모습이 감지되었고 곧바로 함포 사격이 이어져 대양함대의 선두에 섰던 전함 쾨니히(SMS Konig)와 마르크그라프(SMS Markgraf)가 명중탄을 맞았다. 비티의 순양전대를 쫓던 쉐어는 자신들 앞에 그토록 피하고 싶어했던 대함대의 본진이 등장했음을 깨닫고 경악했다. 시나브로 사상 최강의 두 함대가 이미 교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폭발하며 둘로 쪼개져 생을 마감한 영국의 순양전함 인빈시블. 1,026명의 장병이 함께 생을 마감하였고 단 6명만이 운 좋게 구조될 수 있었다.

쉐어는 T자 대형을 유지한 대함대에게 위치에서 밀리고 있음을 깨닫고 전열을 재편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함대 후방부터 차례차례 오른편을 돌아 반전 침로를 취하면서 일단 공역을 빠져나가도록 조치했다. 한창 포격이 계속되던 순간 갑자기 대양함대가 사라지자 젤리코는 당황했다. 동남쪽으로 변침해 추격에 나섰지만 어느덧 젤리코의 대함대와 쉐어의 대양함대는 20km 가량 벌어져 있었고 그렇게 다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