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1.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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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작지만 강하다

A-4 스카이호크(Skyhawk) 공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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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소속의 A-4E 스카이호크. 작지만 강했던 공격기의 전설이다.

전쟁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주제이자 배경이 된다. 옛날에 있었던 전쟁이나 판타지 장르의 전쟁을 다루는 경우는 대부분의 소품을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최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제작의 편의를 위해 군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군도 홍보에 적극적이어서 종종 최신 무기가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보안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대의 공개도 이루어진다.

1987년에 개봉된 ‘탑건(Top Gun)’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였다. 미해군 항공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제작된 이 영화가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해군의 인기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국내에서도 일부 관계자나 마니아들만 알고 있던 F-14 전투기가 대중적 인기를 얻었을 정도였다. 이를 배 아파한 전통의 라이벌 미공군이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제작되도록 애쓰기도 했었다.

탑건의 흥행에 큰 역할을 했던 요인들 중 하나가 장쾌한 공중전 장면이다. 일부는 실제 상황에 바탕을 두고 연출이 이루어졌는데, 흔히 어그레서(Aggressor)라 불리는 가상 적기가 주인공의 F-14와 벌인 모의 공중전 훈련이 대표적이다. 이때 등장한 가상 적기는 사실 주인공인 F-14보다 실전 활약이 훨씬 많았던 또 다른 걸작이었다. 바로 미해군, 해병대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주력기로 사용된 A-4 스카이호크(Skyhawk) 공격기다.

현재 실전에서 운용 중인 아르헨티나 공군의 A-4AR. 최신 개량형이지만 조만간 퇴역이 예정되어 있다. <출처: Chris Lofting at Wikimedia.org>


제트 시대에 요구된 공격기

태평양 전쟁이 끝났을 때 항공모함은 어느덧 전함을 제치고 바다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비록 전략폭격기를 이용한 핵 공격이 현실화되면서 제2차 대전 종전 직후 잠시나마 무용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항공모함이 여전히 중요한 무력투사 수단임을 입증했다. 전쟁 내내 북한 인근 해역에 머물면서 수시로 공산군의 후방을 강타하는 기지의 역할을 했고 이후 발발한 베트남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항공모함은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직접 교전을 벌이는 전함과 달리 단지 함재기를 운용하는 플랫폼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탑재된 함재기에 의해 전투력이 결정되므로 다양한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여러 기종을 탑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항공모함이 행사할 수 있는 힘의 핵심은 공격기(Attacker)라 할 수 있다. 지상이나 해상에 있는 목표물의 공격에 특화된 전술작전기로, 굳이 구분하자면 작은 폭격기 정도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생산된 XA4D-1 실험기. 인상적인 델타익 주익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공격기는 전투기에 비해 속도나 기동력 등은 뒤지지만 폭탄을 충분히 장착하고 목표물까지 다가가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침투 능력이 요구된다.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은 SDB 급강하 폭격기나 TBD, TBF 뇌격기 같은 여러 종류의 공격기를 운용했고 전후에 들어 A1D(A-1)나 전투기에서 임무를 바꾼 F4U 등을 공격기로 운용했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새로운 공격기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항공모함용 전투기를 F9F, F2H 같은 제트기로 교체한 미해군은 공격기도 제트기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었다. 그러던 중 한반도 북부에 갑자기 등장한 공산군의 MiG-15는 미군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F-86 이전에 등장한 미국의 모든 전투기를 압도하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자 공격기들이 더 이상 편안하게 작전을 벌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활약한 미해군의 주력 공격기였던 A-1 스카이 레이더. 상당히 뛰어난 공격기였지만 제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급히 교체될 운명이었다.


역발상으로 난제를 해결하다

A-4의 개발자인 에드워드 하이네만. 이 외에도 SBD, A-20, A-26, A-1, A-3, F3D, F4D 등의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출처: (cc) The Flight magazine archive at Wikimedia.org>

그런데 당국이 정식으로 소요를 제기하기 이전부터 각 항공기 제작사들은 이미 개념 연구를 하던 중이었다. 제트기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폭장량을 늘리고 비행 능력을 높이려면 필연적으로 기체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양한 새 기능의 접목에 집착하는 엔지니어들이 거대화를 더욱 부추겼다. 문제는 성능이 향상된 만큼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고장률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런 난제는 슈퍼캐리어1)의 등장을 촉진시켰지만 당장은 기존의 에식스(Essex)급에서 운용이 가능해야 했다. 제2차 대전 중에는 충분히 거대했지만 제트 시대에 들어서면서 에식스급은 어느덧 애매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더글러스(Douglas)의 엔지니어인 하이네만(Edward Heinemann)은 발상을 전환했다. 꼭 필요한 성능만 갖추는 수준으로 기체를 단순화하면 크기를 줄이면서도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당시 미해군이 핵폭탄 운용을 위한 전략공격기의 개발을 별도로 추진하고 있었기에 하이네만은 새로운 전술공격기는 이 정도 수준이면 된다고 판단하고 1952년 해군에 정식 제안서를 제출했다. 해군은 애초에 예정한 기체의 절반 정도 크기였지만 제안대로 개발되면 오히려 운용에 효율적일 것이라 평가하고 실험용 시제기를 발주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불과 2년 만인 1954년에 XA4D-1 초도기가 완성되어 비행에 성공했다.

XA4D-1이 보여준 각종 실험 결과는 해군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대체가 예정된 기존 A1D와 비교해 길이는 비슷했지만 폭이 절반에 불과한 델타익(delta wing)2) 이어서 주기 시 날개를 접지 않아도 되었다. 덕분에 기골이 튼튼했고 더 많은 연료를 탑재하여 약 1,000km 이상을 더 비행할 수 있었다. 사실 항속거리는 동급 기체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최초로 버디 투 버디(Buddy to buddy) 공중 급유 기능을 채택해 작전 반경을 대폭 늘릴 수 있었다.

버디 투 버디 급유 기능을 최초로 채택하여 작은 공중 급유기 역할도 담당할 수 있었고 반대로 급유를 받아 작전 반경을 늘릴 수도 있었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개발과 배치

처음 구상대로 기체를 단순화하는 것과 함께 가급적 생소한 신기술 채택을 배제하고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장비도 최소화하는 식으로 구조도 단순화해 기체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그만큼 정비 요소도 줄어들어 이후 실전 배치된 후 뛰어난 가동률을 보였다. 이는 항공모함처럼 제한된 환경에서 운용하는 데 상당히 뛰어난 장점으로 작용했고 그만큼 가격도 저렴해 도입에 부담이 덜 했다.

단발이지만 9,300 파운드의 추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J52 엔진을 장착해 제2차 대전 당시 단거리 임무에 투입된 B-17 폭격기와 맞먹는 최대 4.5톤의 폭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고시속이 1,000km를 넘어 소련의 MiG-17과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또한 중력과 기압에 의해 최적의 상태로 작동하도록 제작된 리딩 에지 슬랫 덕분에 영화 속에서 묘사된 것처럼 뛰어난 기동력을 발휘했다.

1964년 통킹 만에 전개된 항공모함 키어사지(Kearsarge) 상공을 비행 중인 제146공격비행대 소속 A-4C 편대.

공격기지만 이 정도의 속도와 기동력은 소련의 전투기들과 공대공 전투를 벌일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월남전과 제3차 중동전에서 근접 선회전을 펼쳐 MiG-17을 격추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물론 여러 기능이 생략된 만큼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적어도 이 정도면 애초의 예상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A4D라는 정식 제식명을 부여받고 1956년부터 양산 및 배치가 개시되었다.

이후 1962년에 각 군별로 따로 붙이던 미군용기 제식부호가 새롭게 통일된 후, A-4라는 이름을 새로 부여받았다.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풍족했던 미국은 A-6, A-7 같은 후속 공격기를 별도로 도입해 함께 운용하는 사치를 부리지만, 양적으로 A-4는 미해군, 해병대 항공대의 주력 공격기 역할을 담당했고 외국에도 많이 수출되어 총 2,960기 생산이라는 상업적 성공도 거두었다.

이스라엘은 217기의 A-4를 도입한 주요 사용국 중 하나이며 많은 실전을 경험하였다. <출처: (cc) Oren Rozen at Wikimedia.org>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다

대량 생산되고 여러 나라에 공급되었기에 실전에서의 활약도 많았던 A-4는 월남전, 중동전, 그리고 포클랜드 전쟁에서 부지런히 출격해 폭탄을 투하했다. 그만큼 피해도 컸는데 적기의 요격에 의한 것보다는 대공 미사일이나 화기에 의한 손실이 대부분이었다. 폭탄 투하를 위해 저공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마디로 많이 사용되고 소모된 공격기라 할 수 있고, 그만큼 역할이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4는 작은 공격기지만 폭장량이 상당하기에 B43, B57, B61 같은 전술 핵폭탄도 운용할 수 있다. 덕분에 엄청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965년 12월 5일, 필리핀 근해에서 훈련 중이던 항공모함 CV-14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에 배치된 A-4E가 B43 핵폭탄을 탑재한 상태로 이륙 준비 중 바다로 떨어져 조종사가 실종되고 핵폭탄이 분실되는 엄청난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1981년까지 비밀에 붙여졌었고 현재도 핵폭탄의 행방을 모른다.

미해군 곡예비행단 블루 에인절스에서 사용한 A-4F <출처: (cc) RuthAS at Wikimedia.org>

A-4에 대한 미해군의 사랑은 각별해서 처음 언급한 것처럼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가상 적기로 운용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기동력을 살려 미해군 곡예비행단인 블루 에인절스(Blue Angels)의 애기로 지난 1986년까지 활약했다. 이처럼 다양한 활약을 펼쳤던 A-4는 대부분 은퇴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브라질은 A-4를 대대적으로 개조해 AF-1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항공모함 상파울루(São Paulo)의 주력 함재기로 운용 중이다.

사실 A-4는 거의 동시대에 등장해 미해군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주력 전투기이자 전술폭격기로 맹활약한 F-4 팬텀(Phantom) II에 비해 유명세가 덜한 편이다. 또한 처음 구상 단계부터 생략한 부분이 많아 시간이 갈수록 성능의 열세를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에서 묵묵하게 제 역할을 다하며 장수한 공격기였다. 한마디로 작지만 드러나지 않게 뛰어났던 하늘의 강자였다.

브라질 항공모함 상파울루에서 AF-1이라는 이름으로 운용 중인 A-4KU. 원래 쿠웨이트에 공급된 것을 브라질이 구매하여 개조한 것이다. <출처: (cc) Navy of Brazil at Wikimedia.org>

▌제원(A-4F)

전장 12.22m / 전폭 8.38m / 전고 4.57m / 최대이륙중량 11,136kg / 최고속도 1,083km/h / 전투행동반경 1,158km / 상승한도 12,880m / 무장 20.mm Mk12 기관포 2문 외, 5개 하드 포인트에 4,490kg 탑재


▌주석

1)

항공모함 중에서도 배수량이 약 70,000톤 내외인 대형항공모함.

2)

삼각형의 평면형을 가진 날개.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