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싸움이 어려웠던 이유

전쟁이 발발하고 수백만의 군대가 전선으로 달려간 이상, 해군도 바다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세계 정상급의 해군력을 보유한 영국과 독일은 서로 건곤일척의 싸움을 삼가고 있었다. 이런 이상한 상황은 해전이 17세기에 전열함(戰列艦)1)이 등장한 이래 함포로 치고 받는 방식으로 바뀐 것과 관련이 많다. 적의 공격을 최대한 버텨내면서 더 많은 타격을 정확히 가해 상대를 먼저 침몰시키는 것이 승리의 해법이었다.

따라서 물러서지 않고 포탄을 쏘며 전면 교전을 벌이면 대부분 속전속결로 싸움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주력함 획득에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투입했음에도 잃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이었다. 한번 손실된 전력을 회복하기란 상당히 어렵고 자칫하면 전쟁 전체에 어려움을 안겨줄 수도 있었다. 제2차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의 승패가 갈린 결정적인 이유도 미국과 일본의 현격한 전력복구 능력의 차이에 있었다.

해군 전체를 놓고 볼 때 최대한 전력을 보존시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했고 그런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따라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적과 싸워 승리를 거두고 싶은 마음에 섣불리 모든 것을 걸고 정면으로 대결하는 행위는 이성적으로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비록 2위의 자리에 올랐지만 독일이 더욱 소극적인 것은 당연했다. 사실 영국과 독일의 해군력 차이는 단지 1, 2위라는 숫자의 차이를 훨씬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영국은 지금도 전 세계 수병들이 공통으로 착용하는 이른바 세일러복처럼 복장부터 무기, 전술, 전략에 이르기까지, 해군과 관련된 모든 것의 표준을 세운 나라다. 당연히 독일은 벤치마킹 대상인 영국을 흉내 내어 단기간에 전력을 구축했지만 중요한 노하우까지 모두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잠수함 전력 정도를 제외하고 해군과 관련된 모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영국에 뒤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간헐적인 교전

이런 상황 때문에 전쟁 발발과 동시에 영국은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독일을 철저히 봉쇄했고 독일도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갈 생각을 삼가고 있었다. 만일 독일이 모든 전력을 집중해 맞서려 했다면 영국도 적극 대응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일대일로 주력함을 교환하는 싸움이 될 것이 확실했고, 종국에 가서는 독일의 패배로 귀착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점점 격화되는 육지에서의 싸움과 달리 양국 간의 전면적인 함대전은 1914년이 지나갈 때까지 없었고,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남미와 지중해에서 제한적인 교전이 벌어진 것이 전부였다. 독일은 1914년 11월, 칠레 인근의 코로넬(Coronel) 해전에서 승리했지만 8월의 헬리고란트 만(Heligoland Bight) 해전, 12월의 포클랜드(Falkland Islands) 해전에서 패하며 영국 해군의 위력을 똑똑히 체험했다.

지중해에서는 순양전함 괴벤(SMS Goeben)과 경순양함 브레슬라우(SMS Breslau)가 포위망을 뚫고 극적인 탈출에 성공하며 두고두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지만, 결론적으로 이들은 영국 해군의 위력에 눌려 일방적으로 도망 다녔을 뿐이었다. 자화자찬에 빠진 제국 해군이 막상 전쟁 발발 후 수세적으로 나오자 빌헬름 2세와 육군은 불만이 고조되었다. 특히 건함 경쟁으로 인해 군비증강에 차질이 많았던 육군은 공개적으로 해군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비난에 직면한 티르피츠는 결국 뭔가를 보여주어야 했다. 엄밀히 말해 보존에만 신경 쓰느라 싸우지 않는다면 굳이 그렇게 고생하면서 해군력을 구축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섣불리 나서다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티르피츠는 일단 차선책으로 소규모 공격 부대를 은밀히 출동시켜 영국 본토를 공격하는 제한적 작전을 구상했다.

절반의 성공

티르피츠는 막강한 영국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면서 국내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까지 대영 해군의 위용을 굳건히 믿고 있던 영국인들은 전쟁을 군인들이 본토 밖으로 나가서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비록 군사적 성과는 미미할지라도 제국 해군이 영국 본토까지 다가가 공격을 가한다면 영국 국민에게는 불안감을, 반대로 독일 국민에게는 사기를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검토를 끝낸 티르피츠는 시험 삼아 독일 출항지에서 거리가 가까운 잉글랜드 동부 노퍽(Norfolk)주의 항구 도시인 야머스(Yarmouth)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순양전함 자이들리츠(SMS Seydlitz)을 위시한 총 8척으로 구성된 소규모 공격 부대를 구성했고 제국 해군의 주력 부대인 대양함대(Hochseeflotte) 예하 제1수색전대 사령관 히페르(Franz von Hipper) 제독에게 지휘권을 부여했다.

11월 3일 06시 30분경, 수색전대는 야머스 인근까지 침투해 포격을 가하고 해안 봉쇄용 기뢰를 부설하는 데 성공했지만 주변을 순찰하던 영국 해군에게 발각되었다. 구축함을 주축으로 구성된 총 7척의 영국 해군 초계부대와 히페르의 수색전대는 곧바로 포격전에 들어갔다. 독일은 장갑순양함 한 척, 영국은 잠수함 한 척을 잃고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전투가 격화되었으나 히페르는 수색전대를 후퇴시켰다.

처음부터 해전이 아니라 영국 해안가 도시에 대한 기습 포격이 목적이었고 머지않아 영국의 지원 세력이 도착할 것이 명확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영국 해군의 전력이 만만하다고 계속 매달려 있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것이 확실했다. 비록 대지상 포격의 대부분이 무인지대에 떨어져 군사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독일은 영국 해안까지 충분히 침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해상 전투를 준비하다

귀환한 히페르로부터 상세한 보고를 받은 대양함대 사령관 잉게놀(Friedrich von Ingenohl) 제독은 곧바로 후속 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이런 의지를 티르피츠에게 보고했다. 그는 작전의 목적이 지상 목표에 대한 포격이지만 설령 영국 해군과의 교전 상황이 오더라도 이전처럼 무조건 피하지는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대지상 포격은 물론 해상 전투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전대의 규모를 좀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핵심은 영국의 주력함이 합류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두 번째 작전에 나선 수색전대를 총 27척으로 구성했다. 4척의 순양전함과 1척의 장갑순양함, 그리고 3척의 경순양함이 지상 목표를 포격하는 동안 영국 해군의 초계부대가 나타나면 동행한 18척의 구축함이 대응하기로 했다. 지난번 작전의 경험을 참고하여 모든 준비를 완료한 독일 수색전대는 12월 15일 03시 야음을 틈타 빌헬름스하펜(Wilhelmshaven) 항구를 빠져 나왔다.

전대장 히페르는 이 정도 규모의 거대한 전대가 영국 해군의 봉쇄망을 은밀히 뚫고 나가려면 기밀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분산되어 모항을 출항한 군함들은 북해로 나아가 대열을 구성한 후 영국 동해안으로 직진했다. 이번에는 영국 해군의 감시망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잉글랜드 동북부의 스카버러(Scarborough), 하틀풀(Hartlepool), 휘트비(Whitby) 등 여러 항구 일대가 목표였다.

12월 16일, 함포 사정권까지 다가가는 데 성공한 독일 수색전대는 08시부터 목표를 향해 각각 나뉘어 기습 포격을 가했다. 불의의 기습을 받은 영국은 137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00여 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고 다수의 시설이 파괴되었다. 급보를 받고 무려 6척의 전함을 포함해 40여 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출동했지만 작전을 마친 독일 전대는 마치 약 올리듯이 포 사정권을 약간 벗어난 간격을 확보하면서 본국으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