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탄자를 멀리 날려 보내는 차원에서만 본다면 옛날 공성용으로 썼던 투석기도 포로 볼 수 있다. 차세대 신무기로 각광받는 레일건(Rail Gun)도 탄자를 전자기로 가속시켜 발사하는 것이니 개념적으로만 따진다면 투석기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흔히 떠올리는 상식적인 범위로만 축소한다면 포는 화약을 이용해 탄자를 발사하는 무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무기사에서 포의 탄생과 발전은 화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력으로 던져서는 크게 타격 효과가 없을 작은 탄자라도 화약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가스를 에너지로 삼으면 엄청난 살상력과 파괴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포의 중요성은 커졌고 당연히 보다 좋은 포를 보유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이 과정에서 포의 재질은 물론 구조와 사격 기술도 크게 변모해 왔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초의 포로 언급되는 백년전쟁의 포드페르(Pot-de-fer)와 오늘날의 포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성능의 차이가 크다.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진화해 왔기 때문인데, 그래도 강선¹⁾, 무연화약(無煙火藥)처럼 포의 역사에서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프랑스의 M1897 75mm 포(Canon de 75 modèle 1897, 이하 M1897)는 현대 야포의 출발점이 되는 기념비적 무기라 할 만하다.

질적 우세를 위한 경쟁

보다 먼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쉽고 강력하게 타격할 수 있는 포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전쟁의 방식은 획기적으로 변했다. 병력이 적더라도 화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었다. 또한 그동안 난공불락으로 취급되던 수많은 방어물도 쉽게 격파할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의 개막 이래 유럽에 의한 침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데는 포의 역할이 컸다. 한마디로 역사를 바꾼 무기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이후 전쟁을 지휘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포를 중시했고 적보다 많이 보유하기를 원했다. 양측이 보유한 포의 사거리가 비슷하다면 양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쪽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이 포를 무한정 많이 보유하고 운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 제작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운용에 필요한 인력의 양성도 쉽지 않다. 더불어 현대에 와서 자주포가 대세가 되었듯이 중량이 무거워 이동 또한 쉽지 않았다.

이런 제약을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궁리되었고, 결국 포의 수량이 같더라도 더 많이 쏴서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면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질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인데, 이는 비단 포뿐 아니라 모든 무기 분야에서 적용되는 원칙으로, 오늘날은 전투기 같은 최신 무기일수록 질적 우위가 양적 우세를 압도하는 양상을 보인다.

열강들은 포의 연사력과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19세기 말까지 보병과 함께 야전에 투입되어 사용된 야포들은 1분에 불과 2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을 만큼 연사력이 떨어졌다. 특별히 포의 재질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격 후 충격으로 인해 포의 위치가 틀어져 매번 다시 위치를 잡고 조준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포의 반동을 잡는 일이었다.

반동을 잡기 위한 시도

화약을 사용하는 포는 물리적으로 사격 후 발생하는 반동을 피할 수 없다. 반동으로 인한 충격이 크면 포의 내구성도 손상을 받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격 효과 또한 반감이 된다. 그래서 반동을 잡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는데, 무거운 중량도 그중 하나다. 오늘날 아무리 최신 소재로 경량화해도 중화기가 어느 정도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무거우면 그만큼 기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1890년 독일에서 들려온 한 정보가 프랑스를 긴장시켰다. 군부의 요청으로 방산업체인 크루프(Krupp)가 주퇴복좌기(Recoil Buffer)를 탑재한 신형 야포의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이었다. 주퇴복좌기를 사용하면 사격 시 포가(砲架)는 방렬 상태로 고정된 채 포신만 왕복하므로, 새로운 목표물로 변경하지 않는 한 조준을 다시 할 필요가 없어진다. 당연히 사격 속도도 높일 수 있다.

그동안 이론으로만 논의되던 기술 개발에 적성국인 독일이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는 1891년 같은 기능을 지닌 포의 개발에 착수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당시 부르주(Bourges) 조병창에서 실험적으로 제작한 57mm 포를 베이스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57mm 포는 무연화약, 청동 탄피를 사용해 탄두와 장약을 일체화한 포탄 등처럼, 당시까지 개발된 최신 기술을 접목한 실험작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프랑스의 주퇴복좌기 개발은 독일 잉골슈타트(Ingolstadt) 조병창에서 근무하던 하우스너(Konrad Haussner)의 특허로 가장 중요한 유압 관련 기술을 확보하면서 시작되었다. 정식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 스파이 활동을 통해 얻게 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정작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고 시작을 먼저 했던 독일은 프랑스보다 늦은 1902년에서야 주퇴복좌기 개발에 성공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다

이런 아이러니는 주퇴복좌기에 유압 기술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요 기술을 확보한 프랑스는 피토 포병공작창(APX)의 감독관인 데포우(Joseph-Albert Deport) 대령의 주도로 75mm 구경의 신형 야포 제작을 시작했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1897년에 완성된 실험작은 분당 15발이라는 경이로운 연사력을 선보였고 사격 후에도 위치가 흔들리지 않아 명중률도 대폭 향상되었다.

당연히 군 관계자들을 흡족하게 만들어 M1897이라는 제식명으로 1898년부터 양산이 개시되었고 어느덧 20세기가 되자 각국이 앞다투어 주퇴복좌기를 채택한 포를 주력으로 삼게 되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75mm는 야포로서 소구경이어서 화력이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M1897의 탄생 당시엔 나폴레옹 전쟁처럼 돌격하는 보병을 포병이 근접에서 직사로 지원하는 군사 교리가 통용되던 시절이어서 나름대로 충분한 화력이었다.

비록 철도가 대중화되기는 했으나 당시의 이동 수단을 고려할 때 지상전에서 사용하는 포를 화력만 중시해 무작정 대구경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다. 반면 M1897은 화력의 부족을 뛰어난 연사력으로 상쇄시켰다. 실제로 M1897은 프랑스군의 주력이었던 제1차 대전 초기에 기동력을 살려 신속히 전선을 옮겨 다니며 독일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마른(Marne) 전투 이후 전선이 급속히 고착화되고 참호전으로 돌변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참호에 강력하게 축성된 구조물을 파괴하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제1차 대전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1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온 군사 사상이 완전히 뒤바뀐 전환점이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하늘에서도 전투가 벌어질 정도였으니 예전의 방식으로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다.

아직도 이어지는 프랑스의 자부심

구시대의 돌격 위주 사상을 기반으로 개발된 M1897은 새로운 낯선 환경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장점이 많아 도태되지 않고 독가스탄 발사 등에 쓰이는 보조 화기로 꾸준히 사용되었고, 연사력과 가벼운 무게를 이용해 대공포나 생샤몽(St. Chamond) 전차의 주포처럼 다양한 용도로의 변신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일선에서의 수요가 계속 이어지면서 프랑스는 물론 영국, 미국, 러시아 등의 여러 나라에 공급되었다.

덕분에 M1897은 종전 후에 벌어진 수많은 국지전에도 모습을 드러냈고 제2차 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1940년까지 총 21,000여 문이 제작되었다. 공격에는 여전히 좋은 포여서 독일은 프랑스 점령 후에 이를 노획해 요긴하게 사용했으며 미국은 M1897을 기반으로 대전차 자주포를 만들고 M24 전차나 초기형 M4 전차의 주포로도 이용했다. 피아가 모두 사랑한 대표적 무기라 할 만했다.

M1897은 엄청난 양이 생산되어 무려 50년 넘게 일선에서 종횡무진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니아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받는 무기는 아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M1897을 통해 현대식 야포의 기본 틀이 완성되었다는 점만으로도 무기사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프랑스에서 M1897을 의전용 예포로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의의와 자부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원

무게 1,544kg / 포신 2.69m / 구경 75mm / 사거리 8,500m(유탄) 6,800m(유산탄) / 발사속도 분당 15발 / 포구속도 초속 500m

▌ 주석

1)

총포의 내부에 나사 모양으로 판 홈. 탄환이 목표물에 깊이 박히도록 돌면서 나가게 한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