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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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현대 전차의 기본을 완성하다

르노 FT 전차(Renault 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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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육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르노 FT 전차. <출처: (cc) Paul Hermans at Wikimedia.org>

군사 퍼레이드는 국민들에게 군의 위용을 선보이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만, 더불어 적성국을 향해 펼치는 일종의 무력시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유하고 있는 무기들을 이때 선보이곤 하는데, 종종 극적인 효과를 노려 개발이나 보유를 비밀로 했던 무기까지 전격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2015년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제2차 대전 승전 7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군이 벌인 퍼레이드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러시아군 정도라면 무지막지한 위력을 지닌 전략무기가 주목을 받아야 했겠지만 정작 당시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무기는 따로 있었다. 그동안 외양이나 성능에 대해 추측과 설왕설래가 많았던 러시아의 최신예 전차 T-14가 처음으로 대외 공개된 것이었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뛰어난 전차라고는 하지만, 공개 이전의 온갖 억측과 달리 전통적인 전차의 모습이어서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다지 특이한 점이 없었다.

대개 전차라 하면 캐터필러로 주행하는 차체 위에 360도로 회전하는 포탑이 장착된 형태를 연상한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던 T-14도 바로 그러한 모습인데, 어쩌면 전차라는 무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이런 것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916년 9월 솜므(Somme) 전투에 사상 최초로 등장한 전차인 영국의 Mk 시리즈(이하 Mk)나 독일이 이에 대항해 만든 A7V를 보면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의 무기다 보니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그래서 초창기의 전차들을 보면 캐터필러로 움직이는 것 정도를 제외하곤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초기에 등장하고 사용되던 여러 모습의 전차들 중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구조를 갖춘 전차도 있었다. 현대 전차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프랑스의 르노 FT(Renault FT, 이하 FT) 전차다.

FT는 전차의 기본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차체에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을 탑재한 최초의 전차였다. <출처: (cc) PHGCOM at Wikimedia.org>

다양한 형태로 개발된 초창기 전차들

Mk의 활약에 놀라 각국이 전차 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차는 초창기의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다 해도 뚝딱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참호전이라는 초유의 지옥을 경험하던 프랑스도 영국과 비슷한 1915년부터 이미 전차 개발을 시도하고 있었다. 영국의 도움을 받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서부전선의 대부분을 책임지던 프랑스가 영국보다 전차의 필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군 당국은 여러 차량 및 방산 기업체에 참호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 즉 전차의 개발을 동시에 의뢰했다. 르노 자동차(Société des Automobiles Renault)도 의뢰를 받았던 기업 중 하나였으나 치열한 경쟁 끝에 슈나이더(Schneider)에서 제작한 CA1이 영국의 Mk와 비슷한 1916년 11월에 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프랑스 최초의 전차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얻었다.

영국의 Mk 전차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프랑스의 슈나이더 CA1 전차.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초창기 전차는 정해진 틀이 없다 보니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었다. 그래서 당시 등장한 Mk나 CA1은 최초의 전차이자 장갑차로도 거론된다. 슈나이더나 또 다른 프랑스 국내 경쟁자인 생샤몽(Saint Chamond)은 두터운 장갑을 두른 중(重)전차가 전선 돌파에 효과적이라 본 반면, 르노는 생산성과 주행 성능에 초점을 맞추어 무게가 CA1의 절반, 생샤몽 전차의 30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가벼운 경전차 개발에 나섰다.

사실 FT의 최고속도인 시속 20km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기어 다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CA1이나 생샤몽의 전차들보다는 2배나 빨랐다. 당시까지 제작된 엔진이나 동력 계통 장치 등의 성능 면에서 아무래도 제한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런 한계 속에서 주행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차체를 최대한 작게 만들다 보니 75mm 주포를 장착한 경쟁자들과 달리 무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FT의 주무장인 SA18 37mm포. 분당 15발까지 속사가 가능하지만 저압포여서 대보병 전투 정도에나 효과적이었다. <출처: (cc) Balcer~commonswiki at Wikimedia.org>

전차의 상징이 된 포탑의 탄생

고심 끝에 르노는 약점을 다른 방법으로 커버하기로 했다. 37mm 주포를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에 장착해 어느 방향으로도 신속히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었다. 그에 반해 Mk, A7V, CA1, 생샤몽처럼 동시대에 등장한 여타 전차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포격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지로(Giro)사에서 포탑을 제조했으나 이후 양산이 결정되고 수요가 대폭 증가하자 발리에(Berliet)사에서도 제작이 이루어졌다.

해치를 개방한 모습. 조종수와 포수 2인의 승무원이 탑승하여 전투를 벌일 수 있다.

오늘날 전차의 일반적인 모습이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었다. 제2차 대전 중에 포탑이 없는 구축전차가 전차 역할을 대신한 사례가 있었지만, 러시아의 T-14 같은 최신예 전차도 채택하고 있을 만큼 포탑은 전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이처럼 효율적으로 전투를 펼칠 수 있도록 설계가 되다 보니 6~9명의 승무원이 필요한 중전차와 달리 FT는 조종수와 포수, 단 2명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각 업체로부터 최종 시안을 제출받았을 당시 프랑스군은 전선의 상황을 고려해 방어력이 좋다고 판단된 중전차에 관심을 가졌으나, 처음 실전에 투입된 Mk가 최종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전과를 분석한 결과 수량이 충분치 않으면 전선 돌파 효과가 적고, 중전차는 속도가 느려 후속 추격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당국은 관심 밖이었던 르노의 경전차도 함께 주력 전차로 전격 채택했다.

참호 지대를 돌파하는 FT 전차. 최대시속이 20km에 불과하였으나 동시대에 사용된 여타 전차에 비하면 쾌속이었다.

당대 최고의 전차

이에 따라 르노의 경전차는 FT라는 제식명으로 대량 생산에 들어가 1917년부터 전선에 공급되면서 흔히 FT-17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발 당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드러나 생산이 지체되었지만 곧바로 실전에서의 결과와 이를 바탕으로 한 개선이 이루어져 1918년 5월 실전에 본격 투입되었다. 당시 수아송(Soissons) 일대에 돌출된 독일군 방어선 제거에 30여 대의 FT가 투입되면서 성공적인 성과를 올렸다.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인 FT. <출처: (cc) Hohum at Wikimedia.org>

최초 투입 결과에 만족한 프랑스군은 1919년까지 12,260대를 목표로 생산량을 대폭 늘리도록 지시해 1918년 11월 종전까지 3,000여 대 이상이 양산되어 전선에 공급되었다. 르노의 생산시설 외에 다른 업체에서도 하청 생산되었을 만큼 일선의 반응이 좋았다. 특히 전쟁을 끝낸 연합군의 마지막 작전인 100일 공세 당시 전선 대부분에서 돌파의 중핵을 담당했다.

제1차 대전에 뒤늦게 뛰어든 미군에게도 FT는 강렬한 인상을 안겨 주었다. 사실 20세기 초만 해도 서로 인접해 치열하게 군비경쟁을 펼치던 유럽의 열강들에 비해 미국의 지상군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랬던 미군에게 FT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현지에서 구입해 전차 부대를 편성한 것으로도 부족해 라이선스 생산에까지 나섰다. 당연히 이후 미국의 전차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18년 아르곤 일대를 돌파하는 미군 기갑부대. 라이선스 제작까지 하였을 만큼 미국은 프랑스 다음으로 FT를 많이 사용한 나라다.

모든 전차의 아버지가 되다

제1차 대전 종전 후에 FT는 폴란드, 핀란드 같은 신생 독립국을 비롯한 20여 개국에 수출이 되었고 일본,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자국산 전차 개발에 참조하기도 했다. 소련은 적백내전 당시 백군에 공급된 FT를 무단복제해 M 전차를 만들었고, 이후에 이를 기반으로 T-16, T-17 같은 전차들을 제작했다. 한마디로 FT는 전차 개발사에 또 다른 획을 그은 소련 전차의 아버지 노릇도 했다.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전시 중인 M 전차. FT를 불법 카피한 소련 최초의 전차다. <출처: (cc) Алексей Белобородов at Wikimedia.org>

이처럼 FT는 현대 전차의 모티브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설계 사상이 뛰어나 전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상당 기간 주력 전차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른바 전간기 동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국지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등장한 Mk 같은 여타 라이벌 전차들이 제1차 대전 종전과 함께 사라져 버린 점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생명력이었다. 놀랍게도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개발국 프랑스는 1940년 독일의 침공이 개시되자 500여 대를 전선에 투입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FT는 이미 과거의 전차가 되어 있었다. 독일의 초기 전차인 1, 2호 전차도 성능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과 정면으로 전차전을 벌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새로운 전쟁이 개시되자 FT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전차에 계속 이어지는 흔적만으로도 FT는 무기사에 영원히 기록될 걸작임에 틀림없다.

FT는 수많은 나라에 공급되었고 제2차 대전 당시에도 사용되었다. 1940년 프랑스를 점령하여 상당수의 FT를 노획한 독일군은 2선급 전차나 운반 차량으로 이용하였다. <출처: (cc) Grieptoo52 at Wikimedia.org>

▌ 제원

중량 6.5톤 / 전장 5.00m / 전폭 1.74m / 전고 2.14m / 항속거리 60km / 최대속도 20km/h / 승무원 2명 / SA18 37mm포 1문 또는 호치키스 8mm 기관총 1정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