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M-86은 미 공군의 B-52 전략폭격기에서만 유일하게 운용되는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다. 다양한 형식이 있지만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핵탄두를 탑재한 AGM-86B이다. 사거리가 2,400㎞인 AGM-86B 순항미사일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0배 이상의 위력을 자랑하는 W80-1 핵탄두를 장착한다. 이 때문에 대륙간탄도미사일 그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전략 핵전력으로 알려져 있다.

냉전초기 핵전력의 한 축이었던 순항미사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한 독일의 V-1은 오늘날 순항미사일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냉전 시작과 함께 미국은 각종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어김없이 핵탄두가 장착되었다. 1952년 MGM-1 메타도어(Matador) 순항미사일이 등장한다. V-1과 유사한 외형을 지난 메타도어 순항미사일은 40kt의 핵탄두를 탑재했고, 사정거리는 1,000㎞ 이상으로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해 마하 0.9로 비행이 가능했다. 미 공군이 운용하던 메타도어 순항미사일은 1954년부터 서독을 시작으로 해외에 배치되기 시작하여, 1958년에는 오산 미 공군기지에도 배치되었다. 이후 메타도어를 발전시킨 MGM-13 메이스(Mace) 순항미사일이 등장하였는데, 사정거리와 핵탄두 위력이 대폭 증대되었다.

중형 전투기 크기의 순항미사일 “스나크”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하기 이전인 1946년, 미군은 미 본토에서 소련 깊숙한 곳까지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순항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미 노스롭(Northrop)사의 주도로 개발된 대륙간순항미사일은 SM-62 스나크(Snark)로 불렸다. 1959년부터 미 전략공군에 배치되었으며 3.8Mt 위력의 핵탄두를 탑재했다. 대륙간비행을 해야 했던 만큼 크기 또한 이전의 순항미사일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길이는 20.5m에 날개 폭은 12.9m에 달했고 무게는 27.2톤(t)으로, 이후에 등장한 F-105 전투기와 유사한 크기를 자랑했으나 무게가 훨씬 무거웠다. 스나크 순항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만㎞ 이상이었지만 원형 공산 오차가 2.4㎞에 달했고, 발사 직후 오작동하는 미사일이 많아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등장하면서 이후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지상에서 하늘로

탄도미사일 기술이 일취월장하면서 지상에서 발사되는 순항미사일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지상에서 길을 잃은 순항미사일은 하늘로 올라갔다. 1950년대 말부터 소련은 지대공 미사일을 일선 부대에 배치하기 시작했고,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미군의 전략폭격기들은 지대공 미사일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적의 지대공 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안전하게 핵공격이 가능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1960년 이러한 목적의 순항미사일인 AGM-28 하운드 독(Hound Dog)이 미 공군에 배치되어 B-52 폭격기에서 운용된다. 하운드 독 순항미사일은 최대 마하 2.1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며, 1,200㎞가 넘는 사정거리를 자랑했다. 또한 1.1Mt 위력의 핵탄두를 장착했다.

저공 침투가 가능한 신형 순항미사일

그러나 소련이 촘촘하게 고고도 지대공 미사일 체계를 갖춤에 따라 하운드 독 순항 미사일도 요격될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1970년대 초부터 미군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 체계를 피해 핵공격이 가능한 신형 공중발사순항미사일 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1974년 9월 미 보잉(Boeing)사가 개발업체로 선정된 이후 AGM-86A 순항미사일이 등장하게 된다. AGM-86A 순항미사일은 이전의 하운드 독과 달리 소련의 방공망을 피해 저고도로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AGM-86A 순항미사일에는 털컴(TERCOM) 즉 지형 대응 유도 방식이 장착되었다. 지형 대응 유도 방식은 미사일에 장착된 전파 고도계로 비행하는 지역의 고도를 측정하여, 미리 입력된 경로의 디지털 고도 정보와 비교하면서 비행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순항미사일이 저공 비행을 할 수 있어, 적의 레이더에 발견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소련의 간담을 써늘하게 한 순항미사일

1976년 5월 B-52 폭격기에서 AGM-86A 순항미사일의 첫 발사가 이루어졌고, 6차례의 시험발사 중 4차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AGM-86A 순항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200㎞에 불과했다. 결국 미 공군의 요구에 따라 사정거리가 길어지고 대형화 된 AGM-86B 순항미사일이 탄생하게 된다. 1981년 8월부터 미 공군 B-52G/H 폭격기에 장착 운용하게 된 AGM-86B 순항미사일은, 사정거리가 2,400㎞에 달했고 W80-1 핵탄두를 탑재했다. 무게가 110㎏에 불과한 W80-1 핵탄두는 150Kt의 위력을 자랑했다. W80-1 핵탄두를 탑재한 AGM-86B 순항미사일의 원형 공산 오차는 30~90m로 알려져 있다. 이전의 공중발사순항미사일과 달리 족집게 식 핵공격이 가능해진 것이다. AGM-86B 순항미사일이 전력화 됨에 따라, 당시 소련은 간담이 써늘할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방공망으로는 AGM-86B 순항미사일을 막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막대한 국방예산을 들여 공중조기경보기와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고 저고도 방공망을 새롭게 건설할 수밖에 없었다.

걸프전의 서막을 연 AGM-86C 캘컴

1991년 1월 16일 오전, 미 박스데일(Barksdale) 공군기지에서 7대의 B-52G 폭격기가 창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이들 B-52G 폭격기에는 AGM-86B 순항미사일을 개조해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AGM-86C 캘컴(CALCM) 순항미사일이 탑재되어 있었다. 이들은 35시간 동안 4번의 공중급유 끝에 22,000여㎞를 비행한 후, 35발의 AGM-86C 캘컴 순항미사일을 이라크 방공망을 향해 발사했다. 이들 미사일들은 정확하게 날라가 이라크 군의 방공망을 파괴했으며, 이후 다국적군의 항공기가 이라크 영내로 신속하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지난 1986년부터 개발된 AGM-86C 캘컴 순항미사일은 핵탄두 대신 900㎏의 재래식 탄두를 장착했으며,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GPS 항법장비를 새롭게 장착했다. 이후 사정거리가 1,200㎞로 줄어들고 1,450㎏의 탄두를 탑재한 AGM-86C 캘컴 블록(Block) 1 순항미사일이 등장하였다. 2001년 미 공군에 배치된 AGM-86C 캘컴 블록 1A 순항미사일은 원형 공산 오차가 3m에 불과했다.

2030년까지 운용될 AGM-86B 순항미사일

이밖에 AGM-86D 캘컴 블록 2 순항미사일은 적의 지하시설물을 파괴할 수 있는 무게 540㎏의 AUP (Advanced Unitary Penetrator) 고관통 폭탄을 탑재하고 있다. AGM-86B 순항미사일은 1986년까지 1,700여 발이 생산되었으며, 이 가운데 280여 발이 AGM-86C 캘컴 순항미사일로 개조되었다. 지난 2012년 AGM-129 ACM(Advanced Cruise Missile)과 2013년 미 해군의 BGM-109A 핵탄두 탑재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퇴역하면서, AGM-86B 순항미사일은 미군 유일의 핵탄두 탑재 순항미사일로 남게 되었다. 또한 미·러 양국의 핵무기 감축 협정에 의해 그 수도 점차 줄어 들고 있다. 2007년 미 공군 발표를 기준으로 500여 발의 AGM-86B 순항미사일이 운용되었으나 현재는 200여 발만 사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은 AGM-86B 순항미사일의 수명연장을 통해 2030년까지 운용할 예정이다. 높은 정확도와 파괴력을 자랑하는 AGM-86B 순항미사일은, 한반도 유사시 핵우산으로 우리에게 제공될 1순위 핵무기로 손꼽히고 있다.

▌AGM-86B 순항미사일 제원

제작사 미 보잉사 / 길이 6.3m / 무게 1,429㎏ /지름 63.23㎝ / 전폭 3.63m / 사정거리 2,400㎞ / 속도 마하 0.73 / 탄두 W80-1 150Kt / 가격 100만 달러

글 김대영 | 군사평론가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국방관련 언론분야에 종사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군발전자문위원 및 방위사업청 반 부패 혁신추진단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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