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5일,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지구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공표했고, 전 세계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사상 초유의 업적을 이룬 소련은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요즘이라면 중요한 과학적 성과로 취급되어 찬사를 받았겠지만 동서 냉전 시기에 소련과 경쟁하던 미국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동안 미국은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나라가 미국이 될 것이라고 호언해 왔기에 한 방 먹은 셈이었지만, 사실 스푸트니크는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의미와 같았기 때문이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상원의원 린든 존슨이 “소련은 이제 육교 위의 아이들이 지나가는 차를 향해 돌을 던지듯, 우리 머리 위로 폭탄을 퍼부을 것이다.”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소련은 미국의 한복판을 핵폭탄으로 손쉽게 타격할 수단을 확보하고 있음을 이처럼 화려하게 입증했다. 그리고 미국의 우려대로 이듬해 2월 9일,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 로켓에 핵탄두를 장착한 최초의 ICBM이 모스크바 북쪽의 플레세츠크(Plesetsk)에 배치되면서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대변되는 새로운 공포의 시대가 본격 개막되었다. 이제 전쟁의 방식이 버튼 조작만으로도 상대를 궤멸시킬 수 있게 바뀐 것이었다.

이 최초의 ICBM을 GRAU(소련 로켓 포병 총국)에서 코드명 8K71로 명명했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는 SS-6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했다. 그런데 이 발사체는 새로운 공포의 시대를 열었지만 정작 우주개발 분야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기며 인류의 발전을 선도했다. 이후 파생형 별로 다르게 언급되지만 흔히 탄생 당시의 제식명칭으로 많이 불리는 R-7 세묘르카(Semyork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전쟁 말기에 등장한 신무기

R-7을 언급할 때 소련(러시아) 우주개발의 아버지인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Korolev)를 빼놓을 수 없다. 항공기 기술자로 틈틈이 로켓을 연구하던 그는 1938년 대숙청 기간 중 동료의 모함으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가 1944년에 풀려났다. 그가 사지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 말기에 노획한 독일의 V-2 로켓을 소련 내에서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만 해도 로켓은 몇몇 과학자들이 호기심으로 연구하는 영역 정도로 취급되었었다. 비록 제2차 대전 말기에 등장한 V-2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투입된 자원과 노력에 비하면 그다지 실용적인 무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 무기가 될 것이 명백했기에 전후 미국과 소련은 독일에서 확보한 기술과 인력을 발판으로 로켓 연구에 착수했다.

어느덧 OKB-1(제1설계국)을 이끌며 소련의 로켓 개발을 진두지휘하게 된 코롤료프는 1947년 V-2를 카피한 R-1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사거리가 길고 정확도가 향상된 후속작 개발에 열중했다. 1949년 소련의 핵폭탄 개발 성공은 장거리 로켓 개발을 더욱 촉진시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적진 깊숙이 자리한 목표까지 핵폭탄을 운용할 수단은 장거리 폭격기가 유일했는데, 소련은 미국에 비해 이 부분에서 절대 열세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도 로켓이 핵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뛰어난 수단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거의 같은 시기에 동일한 선상에서 미소 양국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1954년 코롤료프는 사거리가 1,200km인 소련 최초의 핵탄두 탑재 탄도 미사일 R-5의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 정도로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군부는 보다 먼 거리를 비행해 적진을 타격할 수 있는 초장거리 로켓, 즉 ICBM을 요구했다.

압박 속에 이루어진 개발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군부의 이 같은 열망은 코롤료프를 비롯한 소련의 로켓 개발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었다. 대숙청과 제2차 대전 당시의 암흑기를 몸소 경험한 그들에게 권력으로부터의 압력은 어지간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역설적이지만 개발자들에게 극단적인 공포를 안긴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는 초기 ICBM 개발 경쟁에서 소련이 미국을 앞설 수 있었던 하나의 동인(動因)이기도 했다.

OKB-1은 R-5와 별개로 이미 1953년부터 3Mt급 수소폭탄 무게인 5톤 정도의 탄두를 8,000km 이상 날릴 수 있는 R-7의 개발에 이미 착수한 상황이었다. 관건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로켓의 엔진과 직결된 문제였다. 당장 강력한 고성능 엔진의 개발이 물리적으로 어려웠던 코롤료프는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개의 엔진을 다발로 묶는 형태의 클러스터링 방식을 이용했다.

덕분에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지만 R-7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제작되었다. 우선 메인 로켓에는 4개의 노즐과 4개의 자세 제어용 보조 노즐이 하나로 묶인 RD-108 엔진을 장착했고, 그 주변에는 정방형으로 4개의 부스터가 붙었는데 이들도 4개의 노즐과 2개의 보조 노즐을 하나로 묶은 RD-107 엔진을 장착했다. 이렇게 20개의 메인 노즐과 12개의 보조 노즐이 붙은 R-7은 총 500톤의 추력을 낼 수 있었다.

이 정도 추력으로 군부가 요구한 성능을 충분히 달성할 수는 있었지만 구조가 복잡한 만큼 제어에 많은 기술력이 요구되었고 당연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957년 5월 15일에 있었던 최초의 발사 실험에서 R-7은 600km를 비행했으나 부스터 배관이 터지며 공중 폭발했다. 하지만 이는 고난의 시작일 뿐이어서 2차 발사는 문제점 발견으로 실험이 취소되었고 7월 12일에 있었던 3차 발사도 회로 고장으로 추락하며 실패로 끝났다.

무관심이 바꿔놓은 역사

어쩌면 개발 중에 닥칠 수 있는 자연스런 문제들이었지만 당시 소련의 상황은 이를 용납하기 어려웠다. 소련 군부는 개발이 불확실한 ICBM보다 장거리 폭격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만일 한 번 더 실패가 있다면 정책을 선회하겠다는 언질을 주었다. 사실 무기개발보다 우주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코롤료프에게 이는 위기였다. 프로젝트의 중단은 그가 평생 꿈꾸어 온 우주로 향한 도전이 중단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1957년 8월 21일, 바이코누르(Baikonur) 기지에서 군부 관계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4번째 발사 실험이 실시되었다. 발사대를 떠난 R-7은 6,000km를 비행하여 목표로 했던 극동의 캄차카 반도에 정확히 떨어졌고 이 소식은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를 흥분시켰다. 미국을 겁박할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 그의 지시로 8월 26일 소련 관영 타스 통신은 소련이 사상 최초의 ICBM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그런데 이를 거짓말로 치부한 미국의 무관심한 대응은 인류 역사를 크게 바꿔놓았다. 소련의 과학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단정한 미국의 반응에 흐루시초프가 당황하고 있음을 알게 된 코롤료프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R-7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면 소련의 ICBM 보유 사실을 자연스럽게 입증할 수 있을 뿐더러 우주개발 분야의 선도라는 부수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당국을 설득했다.

이에 따라 8K71을 위성 발사용으로 개조한 8K71PS에 탑재된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었고 처음 언급처럼 미국에 엄청난 쇼크를 안겨주었다. 더군다나 미국이 예상보다 훨씬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자 흐루시초프는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우주개발에 많은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미소의 새로운 경쟁은 1960년대 말까지 이어지면서 이른바 ‘Space Race’라 불리는 우주개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인류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다

이런 변혁을 이끌긴 했지만 최초의 ICBM이었던 R-7은 무기로서의 생애가 짧았다. 발사대에 로켓을 세우고 연료를 주입하는 데만 20시간 정도 걸린데다, 연료를 충전한 상태에서 장시간 대기도 불가능해서 너무 제약이 컸다. 미국 대통령과 항상 동행하는 이른바 핵가방에서 알 수 있듯이 전략 무기는 언제나 즉시 사용될 수 있어야 하지만 R-7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실전 배치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전량 퇴역 처리되었다.

이처럼 R-7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것 말고는 무기사에 남길 만한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우주개발에 있어서 R-7과 이를 기반으로 제작된 후속 모델들은 지금까지 꾸준히 사용되는 초유의 베스트셀러다. 27개의 모델들이 설계되어 현재까지 무려 1,700회 이상 각종 유무인 우주선을 발사하면서 가장 많은 인류를 우주로 수송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주로 가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안전한 택시 역할을 한 셈이다.

R-7은 미국을 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최초로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리고 인류를 우주로 보내면서 오히려 무기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겼고 이후 인류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은 미국의 우주인을 우주로 보내거나 의뢰받은 위성들을 궤도에 쏘아 올리는 등, 냉전 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무기사에서 보기 드문 긍정적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원(8K72 ICBM)

무게 280톤 / 전고 34m / 폭 3.02m / 페이로드 5,370kg / 사거리 8,800km / 추력 메인 엔진 907.4kN 부스터 907.4 kN×4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