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동시에 철수를 준비하다

엄밀히 말해 나르빅 전투는 압도적으로 전력이 앞선 연합군이 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지상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연합군은 나르빅, 아니 노르웨이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연합군은 나르빅 점령을 시도하기 전부터 과연 작전을 벌여야 하는지의 여부를 놓고 고민을 했었다. 보름 전인 5월 10일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250만의 독일군이 일거에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로 물밀듯이 쇄도해가면서 드디어 서부전선이 불타올랐다. 독일이 연합군의 해상 방해를 물리치고 차지한 나르빅에서 쉽게 철수를 단행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연합군이 더 이상 노르웨이에서 전투를 벌이기 곤란한 상황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 전선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연합군이 변방에 계속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사실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과 연합국의 적극적인 대응도 서부전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부수적인 군사 행동일 뿐이었다. 독일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반대로 연합국은 독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르웨이를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서부전선에서 독일과 연합국이 정면 충돌을 하게 되자 양측 모두 노르웨이에 진지하게 매달릴 이유가 사라진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프랑스의 안위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프랑스 북부의 해안가인 됭케르크(Dunkirk) 일대에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30여 만의 연합군이 5월 26일부터 필사의 해상 탈출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나르빅 전투의 승리에 감격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미 노르웨이의 상당 부분을 독일이 점령한 상태였고 연합군은 본토 방어를 위해 당장이라도 한 명의 병사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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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전을 포기하고 망명길에 오른 노르웨이 국왕

6월이 되자 영국은 프랑스마저 완전히 포기했다. 불과 한 달 만에 서유럽 최강의 육군을 보유한 프랑스군과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영국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서부전선에서 완벽하게 몰락한 것이었다. 히틀러가 선두부대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우려를 표했을 정도로 역사에 길이 남을 독일의 쾌승이었다. 독일도 놀랄 정도였으니 영국과 프랑스의 당혹감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결국 노르웨이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철군을 시작했다. 사실 알파벳 작전(Operation Alphabet)으로 명명된 이 철수작전은 나르빅 전투가 한창 정점으로 치닫던 5월 26일에 이미 시작되었다. 노르웨이는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코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굳이 프랑스의 상황을 들먹이지 않아도, 또 설령 30,000명의 연합군이 철군하지 않았다 해도 독일군에게 계속 밀렸을 상황이었다.

노르웨이에 가장 많은 지원군을 보낸 영국이 당장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노르웨이가 독일을 상대로 항전을 계속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비록 병력이 철수해도 지원만 이어진다면 겨울전쟁 당시의 핀란드처럼 지형을 발판 삼아 저항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프랑스가 패망한 이상 그런 기대도 접어야 했다. 6월 7일 호콘 7세와 정부는 눈물을 흘리며 망명길에 올랐다.

하지만 연합군의 철수는 결코 쉽지 않았다. 독일 폭격기가 해안가에 접안한 철수선을 공격할 때 폭탄이 명중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었다. 그 마지막 절정이 6월 8일에 벌어졌다. 철수선단 호위에 나선 항공모함 글로리어스(Glorious)가 초계 활동을 벌이던 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의 감시망에 걸려 집중 포격을 받고 침몰된 것이다. 6월 10일에 노르웨이 전역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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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전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다

당시 목숨을 걸고 참전한 이들은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제2차 대전 전체로 볼 때 덴마크, 노르웨이 전역은 대전쟁 속에 숨어 있던 부수적인 전쟁이었다. 독일이 노르웨이를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개월이었다. 그전에 있었던 폴란드 전역, 그리고 한 달 뒤에 벌어진 프랑스 전역과 비교하면 꽤 긴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측 합쳐 전사상자가 10,000명 정도에 불과해 치열한 싸움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일단 해군력이 약한 독일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핸디캡이 있었고, 적은 전력으로 거대한 국토를 장악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서부전선에서는 500만 명이 뒤엉켜 싸웠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양측 합쳐 불과 20만 명이 전쟁을 치렀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구조적으로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승리한 독일의 의도대로 전쟁이 진행되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두 달은 독일의 예상을 엄청나게 벗어난 시간이었다. 노르웨이를 덴마크처럼 침공 당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동원한 군수 물자나 준비 태세를 보면 작전 기간을 약 2주 정도로 예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5월 초로 예정된 프랑스 침공을 위해서라면 하루라도 조속히 노르웨이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몰락이 확실해 보이는 그 순간까지도 노르웨이에서는 계속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된 데는 우선 예상보다 연합군, 특히 영국 해군의 동원이 신속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노르웨이를 도우려 했다기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분명 영국 해군의 용전분투는 독일을 크게 위축시킨 면이 있었다. 비록 작전상의 실수도 있었고 많은 손실도 입었지만 영국 해군으로 인해 독일은 예상을 뛰어넘는 피해를 입었고 이는 이후의 전쟁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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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런 전쟁의 최종 승자

노르웨이 전역을 마지막으로 독일 해군은 더 이상 전쟁의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애당초 노르웨이 침공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레더 해군 총사령관은 이러한 참담한 피해에 놀라, 영국 본토 상륙을 위한 바다사자 작전(Unternehmen Seelöwe)을 극력 반대하고 나설 만큼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독일 해군은 제1차 대전처럼 유보트를 이용한 차단전에만 주력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점령한 노르웨이는 이후 독일에게 득보다 실이 된 측면이 많았다. 처음에 히틀러는 영국을 측면에서 위협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했지만 독소전쟁 개시 후에는 연합군이 노르웨이로 상륙해 독일 본토로 진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병력 부족으로 고생하다 소련군에게 베를린이 함락되던 그 순간까지도 무려 40만 명의 독일군이 노르웨이 해안가 방어를 위해 남아 있어야 했다. 이는 당시 독일군의 10퍼센트가 넘는 규모였다.

노르웨이는 끝까지 저항했다는 이유로 독일의 수탈 대상으로 전락했다. 덴마크와 달리 총독을 파견해 강압적인 통치를 펼치며 노르웨이 국민들의 자유를 박탈했는데, 점령 기간 동안 총 10,262명의 노르웨이인들이 나치에 의해 사망했고 약 4만 명이 감금의 고통을 겪었다. 또한 독일의 전쟁 수행을 위한 후방기지화 정책에 따라 노르웨이 국내총생산의 40퍼센트가 수탈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일은 불꽃 같은 노르웨이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독일 패망 이후, 일부러 망명일인 6월 7일에 맞추어 오슬로에 돌아와 국민들을 감격시켰을 만큼 호콘 7세를 비롯한 위정자들은 국외에서도 대독항전을 열성적으로 이끌었다. 비록 군사적으로는 패했지만 이처럼 꺾이지 않는 굳은 의지가 있었던 노르웨이 국민들이 어쩌면 약소국의 주권을 우습게 봤던 야만스런 전쟁의 최종 승자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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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