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항공전사의 측면에서 상당히 의의가 컸던 전장이다. 제2차 대전 말기에 등장하면서 가능성을 선보였던 제트 전투기가 불과 5년 만에 하늘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당연히 새로운 시대의 에이스들은 제트 전투기를 타고 전과를 올렸다. 중공군, 비밀리에 참전한 소련군, 그리고 여전히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는 북한군 소속의 에이스들이 예외 없이 MiG-15를 몰았다. 이에 맞선 미군의 에이스들도 F-86이라는 걸출한 대항마로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이처럼 피아 모두가 최신 제트 전투기로 격추 기록을 세우던 당시에 미 해군 항공대의 보델론(Guy P. Bordelon) 대위는 유일무이하게 프로펠러 전투기로 에이스가 되었다. 비록 격추시킨 적기도 La-9, La-11, YAK-18 같은 프로펠러기였지만 무엇보다 그가 조종한 애기의 성능이 좋았기에 가능한 전과였다. 보델론이 미국의 마지막 프로펠러 전투기 에이스가 되도록 만든 주인공은 한때 최고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F4U 코르세어(Corsair)다.

고성능 전투기의 필요성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무기의 등장과 관련해 종종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예로 들자면 F-86은 갑자기 등장한 MiG-15에 대항하기 위해 서둘러 한반도에 전개되면서 처음으로 실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인지 F-86을 자칫 MiG-15에 놀란 미국이 후다닥 개발한 비밀 병처럼 오해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F4U도 미군이 A6M 제로기에 몰리며 한창 곤욕을 치르던 1942년 6월에 등장했기에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때 실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투기 같은 고성능 무기는 뚝딱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2차 대전에서 활약한 최고의 전투기 중 하나인 F4U도 전쟁 발발 이전인 1938년에 해군의 소요 제기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보면 조급함에 따른 시작이었지만 미 해군의 이러한 대응은 결과적으로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함재기인 F4U의 탄생은 당연히 항공모함과 관련이 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함재기는 크게 지상의 목표나 적함을 공격하는 폭격기나 뇌격기¹⁾ 같은 공격기와, 함대의 방공이나 작전 지역의 제공권 확보를 책임지는 전투기로 구분된다. 그중 전투기는 공대공 전투를 벌여야 하므로 특히 기체와 비행 성능이 좋아야 한다. 이는 해군 함재기뿐 아니라 지상 기지를 기반으로 작전을 벌이는 공군 소속의 전투기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뛰어난 항공모함 탑재용 전투기의 개발 경쟁이 열강 사이에 벌어졌다. 미 해군이 1940년 배치를 목표로 1936년 개발에 착수한 전투기가 F4F였지만, 정작 개발이 마무리되어 배치가 목전에 이른 시점에서 고민이 생겼다. 복엽기인 F3F를 개량한 형태인 F4F는 개발 초기만 해도 성능이 충분하다고 여겨졌지만, 전력이 급상승 중이던 독일, 일본의 신예 전투기들과 막상 비교하니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전투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정작 F4F가 배치되어도 주력 전투기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미 해군은 당장 발생할 전력 공백을 막고자 F4F 사업과 별도로 1938년 2월 새로운 신예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여러 항공기 제작사에 참여를 의뢰했다. 당연히 현존하거나 앞으로 등장할 경쟁기들을 압도할 수 있는 성능을 요구했다.

최강의 전투기를 꿈꾸다

대양에서 작전을 펼치려면 장거리 항속 능력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지상이나 적함 공격에도 투입할 수 있도록 폭탄이나 로켓의 장착도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뛰어난 공대공 전투 능력이었다. 사업 경쟁에 뛰어든 보우트(Vought)사는 함재기로서 단지 이런 요구 조건의 충족을 넘어, 지상을 기반으로 작전을 벌이는 공군 전투기보다도 뛰어난 당대 최강 전투기의 개발을 목표로 했다.

우선 전투기의 기본적인 성능 지표는 속도인데, 고속 비행이 가능하려면 기체 설계도 잘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엔진이 좋아야 했다. 바로 이때 보우트사는 개발 완료 단계에 있던 프랫앤휘트니(Pratt & Whitney)사의 R-2800 엔진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보우트사는 2000마력이 넘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이 새로운 엔진을 신예기의 심장으로 염두에 두고 기체 개발에 나섰고 결국 F4U가 R-2800의 최초 사용자가 되었다.

강력한 R-2800을 장착하려면 기체의 크기가 커야 했다. 더해서 장거리 항속이 가능하려면 많은 연료를 탑재해야 하는데, 이것도 기체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결론적으로 기체가 커지지 않고서는 성능을 비약적으로 늘리기가 어려웠다. 크기가 커진다는 것은 무게가 늘어난다는 의미이므로 그만큼 착함 시에 가해지는 충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기체의 강도와 구조도 튼튼하게 제작되어야 했다.

보우트사는 길이가 짧은 강착(降着)장치²⁾로 충격을 흡수하고자 했지만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R-2800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장착한 직경 13피트 4인치의 커다란 프로펠러가 지면에 닿게 되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보우트사는 역갈매기형 주익을 채택해 난제를 해결했다. 주익이 꺾이는 부분에 강착장치를 넣어 기체의 높이는 충분히 확보하면서 강착장치를 단축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주익은 이후 F4U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면서 공랭식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통통한 구조 대신 기수를 길게 늘려 날렵한 모습을 구현했다. 한마디로 당시까지 개발된 거의 모든 기술이 총집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8년 보우트사가 제안한 R-2800 탑재형 V-166B 모델을 미 해군이 전격 채택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고 말 많던 F4F가 본격 배치되기 시작한 1940년 5월, XF4U-1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서둘러 선을 보이다

실험 비행에 들어간 XF4U-1은 그해 10월 시속 630km의 비행 속도를 달성했다. 이는 당시까지 미 해군은 물론 미 육군항공대(현재 공군)가 보유한 모든 군용기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공랭식 엔진은 고속 비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그동안의 편견을 일거에 깨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전 배치를 위해서는 개선할 점이 많았다. 새로운 시도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안정성 측면에서 계속 문제가 벌어진 것이었다.

1942년 6월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양산형 모델인 F4U-1의 생산이 시작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종석이 너무 뒤에 있어 이함 시에 시계 확보가 힘들고 착함 시에는 실속 때문에 자세 제어가 어려운 문제 등으로 인해 정작 항공모함에 탑재되지 못하고 육상 기지에서만 운용되었다. 이처럼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서둘러 배치가 시도된 이유는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이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이다.

우려하던 대로 F4F가 일본의 A6M에게 절대 열세임이 확인되면서 일선에서 F4U를 즉시 공급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비록 항공모함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때까지 확인된 F4U의 비행 및 전투 능력은 적어도 독일 공군의 Bf 109와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될 정도였기에 당연히 기대가 컸다. 마침내 9월 7일, 미 해병대 제124전투비행대(VF-124)를 시작으로 F4U가 일선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일단 전선에 데뷔는 했지만 해병대가 지상에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F4U는 항공모함에 오르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다. 다행히도 전력 공백을 F4F의 개량형인 F6F가 훌륭하게 메워주고는 있었지만 해군 조종사들도 해병대 조종사들이 입이 마르게 자랑하는 F4U를 부러워했다. 마침내 1943년 11월, 개량된 F4U-1A가 항공모함 에섹스(CV-9 Essex)와 벙커힐(CV-17 Bunker Hill)에서 운용을 개시했다.

하늘의 전설이 되다

전세가 역전되어 여유가 있었고, 여전히 실험적인 성격도 컸지만 F4U에 대한 해군의 기대가 그만큼 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44년에 개량된 엔진을 탑재하고 캐노피, 주익, 강착장치를 개선한 F4U-1D가 등장하면서 항공모함에서의 운용과 관련한 모든 제한이 철폐되었다. 어느덧 해전의 결과가 항공력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로 바뀌다 보니 F4U가 장악한 태평양의 하늘을 일본이 넘보기는 힘들었다.

F4U가 일본 전투기의 저승사자가 되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근접 선회는 A6M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더 이상 상대가 되기 어려울 만큼 성능 차이가 현격했다. 특히 일본은 숙련된 조종사들을 많이 상실한 이후 갈수록 F4U에 맥을 못 추었다. 공대공 전투에서 2,140기의 일본 전투기를 격추하는 동안 F4U의 손실률이 189기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정도다.

영국 해군이 일부 운용했지만 유럽전선에서의 활약은 없다시피 하여 F4U는 당대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들과 격돌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피아 라이벌 기종들과 벌인 각종 모의 공중전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기에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 중 하나로 손꼽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F4U의 뛰어난 성능은 처음 언급처럼 제트 시대가 개막되고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주력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비록 임무를 공격기로 변경했지만 제트 전투기가 주역이 된 한국전쟁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했고, 2세대 전투기 시대가 본격 개막된 1957년까지 미 해군에서, 그리고 1970년대 초까지 중소국가에서 주력기로 운용했을 만큼 신뢰도가 높았다. 1967년 실전 배치된 미 해군 A-7 공격기의 이름이 코르세어 II로 명명되었던 사실만으로도 F4U가 미 해군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전설이 된 하늘의 명검이었다.

▌제원(F4U-1A)

전장 10.1m / 전폭 12.5m / 전고 4.9m / 최대이륙중량 5,185kg / 최고속도 671km/h / 전투행동반경 1,633km / 상승한도 11,247m / 무장 12.7mm M2 기관총 6문 외, 5인치 로켓 8개, 500파운드 폭탄 최대 4발

▌주석

1) 어뢰로 함선을 공격하는 해군 공격기
2)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필요한 장치. 바퀴, 완충 장치 등이 있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