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부터 망신을 당한 독일 해군

독일은 침공군을 6개 그룹으로 나누어 오슬로, 베르겐(Bergen), 나르빅, 트롬쇠(Tromsø), 트론헤임, 크리스티안산, 스타방에르를 동시 상륙해 점령하려 했다. 전력의 분산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바다를 건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최대한 빨리 요지들을 선점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또한 노르웨이는 국토가 길고 험준한 산악지대가 연속되어 내륙을 통해 점진적으로 점령하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이를 위해 독일이 동원한 총 42척의 각종 함선은 당시 독일 해군이 보유한 전체 전력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이처럼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한데다, 초전부터 제공권까지 장악하여 충만했던 독일의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참혹한 망신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독일 해군은 노르웨이 침공전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치명타를 입었고 이로 인해 전쟁 내내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고난은 제5전대가 점령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시작되었다. 독일 함정들이 지상군을 상륙시키고 근접에서 화력을 지원하기 위해 좁은 피요르드 안으로 진입하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노르웨이 해안 포대가 포격을 가했다. 19세기 말에 제작된 독일제 구닥다리 포에서 발사한 포탄과 오슬로 항에서 출동한 어뢰정에서 발사한 구형 어뢰 2발이 제5전대의 기함인 중순양함 블뤼허(Blücher)를 통타했다.

이 공격으로 취역한 지 7개월 밖에 되지 않은 최신예함이 순식간에 하늘로 배를 드러내며 1,000여 명의 병력과 함께 수장되었다. 옆에서 함께 작전을 펼치던 경순양함 엠덴(Emden)도 타격을 입고 전투 공역에서 황급히 빠져나와야 했다. 이로 인해 당일 오슬로에 상륙하기로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독일군은 목표지점에서 20㎞ 떨어진 곳에 잔여 병력을 상륙시키고 서둘러 철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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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하지 못한 한계

이렇게 얻은 시간을 틈타 의회로부터 권력을 완전히 위임받은 호콘 7세 국왕은 왕실과 정부를 이끌고 내륙으로 피신한 후 결사 항전을 선언했다. 동시에 국내외에 있던 선복량¹⁾ 400만 톤이 넘는 1,000여 척의 노르웨이 상선들이 정부의 명령에 따라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이들은 연합국 수송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며 전쟁 승리에 일조하게 된다. 이처럼 노르웨이는 침략자에게 순순히 굴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반면 독일 제1전대는 북부의 요충지인 나르빅을 쉽게 점령했다. 독일 해군의 기함이라 할 수 있는 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가 이곳에 투입되었음을 확인한 포브스 제독은 그동안의 소극적인 대응에서 전환해 끝장을 보기로 결심했다. 영국은 독일을 압도하는 전함 로드니(Rodney), 밸리언트(Valiant), 순양함 리펄스(Repulse) 등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함대를 편성해 출동시켰다.

양측 함대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많은 손실이 발생하면서 전쟁 전부터 독일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4월 12일까지 영국은 4척의 구축함과 2척의 잠수함이 격침된 반면 독일은 순양함 2척과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척이 격침되었다. 양측의 피해가 비슷했지만 독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독일 해군은 1935년 히틀러의 재군비 선언 직후부터 전력을 증강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공군이 아무리 근접 지원을 한다 해도 독일은 엄연한 해군력의 격차를 넘을 수 없어 연안 일대에서만 간신히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독일 입장에서는 작전 당일 해상에서 차단당하지 않고 예정된 지점들에 지상군을 상륙시킨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했고, 결국 이들이 노르웨이의 실질적인 점령을 수행해야 했다. 노르웨이 육군이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나서면서 곳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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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육군의 전쟁이 되다

이처럼 영국 해군과 노르웨이가 치열하게 저항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4월 14일 핀란드에서 이동 전개한 연합군이 나르빅에, 영국과 프랑스 본토에서 증원된 지상군이 트론헤임 일대에 상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1915년의 갈리폴리 전투 패배에도 불구하고 상륙작전 분야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했던 영국은 상륙 직후 정작 독일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몰랐다.

일단 영국은 독일보다 먼저 점령한 트론헤임에 교두보를 구축하고 오슬로에서 북쪽으로 진격해오는 독일군을 차단하기 위해 나섰지만 엉성한 준비와 부대 간 연락 두절 등의 혼란으로 인해 패퇴를 반복했다. 지난 폴란드 전역에서 실전을 경험했던 독일군에 비해 연합군은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연합군 지휘부는 지상군을 투입해 놓고도 알아서 잘 싸우라는 식으로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반면에 독일 공군의 맹폭은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연합군의 사기를 급속도로 꺾어 놓았다. 노르웨이 전역 당시 독일에서 그나마 제 역할을 해준 것은 공군뿐이었다. 해군은 영국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르웨이의 저항에도 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육군은 프랑스나 북아프리카, 소련에서 보여준 전과를 생각할 때 노르웨이 전역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인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르웨이가 약 두 달 간 저항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국토가 넓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역할을 맡아야 할 독일 해군은 개전 초를 제외하고는 본토와 오슬로, 크리스티안산을 오가는 통로 확보에 급급했기에 육군이 순전히 도보로 진격해서 요충지를 점령해야 했다. 산악지대가 많고 교통편도 좋지 않았기에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트레이드 마크인 쾌속 돌파가 이곳에서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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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전투에서 얻은 최초의 승리

4월 15일이 되었을 때 북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르웨이 요충지는 독일의 수중에 떨어졌다. 트론헤임을 지원하기 위해 북쪽의 남소스에서 연합군 추가 병력이 상륙하자 독일 공군이 폭탄을 투하하며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이들은 선발대 지원은커녕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몰리자 서둘러 북쪽으로 후퇴했다. 5월 1일, 국왕 호콘 7세와 정부는 트롬스(Troms)로 옮겨 항전을 계속했다.

이제 노르웨이의 운명은 나르빅에 달려 있었다. 당시까지 노르웨이의 유일한 안전지대는 북부의 트롬스와 핀마르크뿐이었는데, 나르빅은 이들을 영국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육지로는 스웨덴, 소련과 연결되지만 그들은 노르웨이나 연합국 편이 아니었다. 스웨덴은 중립국이었고 당시 소련은 독일과 폴란드를 분할한 동맹이었다. 지속적인 저항을 위해 보급을 하려면 나르빅을 확보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이 묘했다. 침공 초기 나르빅 상륙에 성공한 독일 제3산악사단이 도심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독일 해군이 활동을 접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반면 나르빅 외곽은 연합군이 차지하고 있어서 전략적으로 독일군이 연합군 한복판에 떨어진 형국이었다. 남쪽에서 6개 사단의 독일군이 이들과 연결하기 위해 두 방향으로 나뉘어 북상하고 있었지만 속도가 매우 느렸다.

연합군은 이들을 몰아내고 항구를 탈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나르빅 일대에 집결한 연합군은 노르웨이, 영국, 프랑스 및 망명 폴란드군까지 포함해 총 25,000명에 달했다. 반면 도심에 위치한 독일군은 5,000명 수준이었는데 수병을 제외한 전투 병력은 3,000명 정도였다. 곧바로 격전이 벌어졌고 마침내 연합군은 5월 28일 독일군을 나르빅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연합군이 육상 전투에서 얻은 최초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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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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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