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노르웨이 침공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약소국이 중립을 선언한다 해도 모두가 의사를 존중해 충실히 지켜 주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들은 필요하다면 중립국도 침략해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는데, 그것은 독일뿐 아니라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이 노르웨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이유는 독일이 이곳을 중요하게 보았던 이유와 같았다. 그들도 이미 노르웨이에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었고 유사시를 대비한 군사 행동 계획도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영국은 독일 못지않게 소련도 위험스러운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1939년 11월 30일에 있었던 소련의 핀란드 침공을 독일과 소련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분할 점령 시도로 판단할 정도였다. 의도야 어쨌든 독일과 소련이 무력으로 북유럽을 점령한다면 영국이 골치 아파질 것은 명약관화했다. 영국은 노르웨이를 직접 차지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남의 입에 순순히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할 필요가 있었다.

‘윌프레드 작전(Operation Wilfred)’은 노르웨이 연해에 기뢰를 설치해 해상 수송로를 봉쇄하는 소극적인 작전이었고 ‘R4 계획(Plan R4)’은 독일이나 소련의 침공이 임박할 경우 영국이 먼저 상륙해 노르웨이의 요지를 선점한다는 적극적인 대응책이었다. 당연히 이는 노르웨이와 사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단독 작전으로, 오로지 영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선제적인 약소국 침공 계획이었을 뿐이다.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직후 영국은 노르웨이에 해상 운송에 관한 협조를 요구했다. 당시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 규모인 480만 톤의 상선단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중 유조선은 전 세계 물동량의 20퍼센트를 담당하는 수준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상업적 거래를 확대해달라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영국을 지원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라는 강압이었다. 당연히 중립을 표방하던 노르웨이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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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노르웨이는 1939년 9월 20일부터 두 달 간 영국과 협상을 벌여 총 45만 톤의 선박과 150척의 유조선을 영국에 임대해 주기로 약속했다. 평시라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매우 유익한 거래라고 할 수 있었지만 독일의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 노르웨이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당연히 이런 행보는 폴란드와 한창 전쟁 중이던 독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노르웨이를 프랑스 침공 전에 먼저 손봐야 할 대상으로 여기도록 했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시한 노르웨이는 12월 14일, 친(親)나치 성향의 극우 정당인 민족단일당(Nasjonal Samling)의 당수 크비슬링(Vidkun Quisling)을 베를린으로 보내 히틀러와 회담하도록 조치했다. 이때 크비슬링은 독일이 유사시 노르웨이의 해군과 공군 기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북해 항로가 봉쇄될 경우 노르웨이가 협력한다는 내용의 비밀 각서를 교환했다. 사실 이는 엄밀히 말해 노르웨이가 중립을 포기한다는 의사와 다름없었다.

영국과의 협상 내용은 경제적 거래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독일이 대놓고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지만 군사적 협력을 언급한 독일과의 비밀 협상은 분명히 중립국이 취할 내용은 아니었다. 어쩌면 노르웨이의 협상 대표가 이후 독일의 앞잡이가 된 매국노 크비슬링이어서 중립국의 외교 원칙을 벗어난 어처구니없는 협상이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노르웨이는 이 정도면 굳이 독일이 침공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 총사령관 레더(Erich Raeder)는 영국과의 일전을 생각할 때 반드시 노르웨이를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제1차 대전 당시 독일이 세계 2위의 해군력을 보유했으면서도 작전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대양으로 나가는 통로가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결국 노르웨이 침공을 결심한 것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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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유발한 작은 사건

비록 서부전선에서 전면전이 벌어지진 않고 있었지만 외교적으로는 교전 상태였기에 바다에서 연합국과 독일 사이의 제한적인 전투가 수시로 있었다. 당시 독일은 남대서양 같은 원양에서 연합국 상선을 격침시키는 작전을 구사했는데, 해외에서 영국과 프랑스로 향하는 전쟁 물자를 차단함과 동시에 연합군 해군력을 멀리 분산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포로가 발생하곤 했다.

제2차 대전 당시 편협한 나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독일은 점령지나 전투 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잔학 행위를 벌였지만 바다에서는 그런 모습이 덜했다. 히틀러가 전력이 약한 독일 해군에 기대를 많이 하지 않다 보니 작전에 참견이 덜했고 또한 전통을 중시하던 독일 해군도 나치즘에 상대적으로 덜 물들었기 때문이었다. 독일 해군은 격침시킨 연합국 선박의 승조원들을 구조해 중립지대나 독일 국내의 포로수용소로 보내곤 했다.

그런데 대서양에서 작전을 펼치던 포켓 전함 그라프 슈페(Graf Spee)가 연합군 함선을 격침시킨 후 299명의 영국인을 임시 보호한 일이 있었다. 독일 해군의 보급선 알트마르크(Altmark)가 영국인들을 넘겨받아 귀환하던 중 영국 해군의 추격을 받게 된다. 알트마르크는 가까운 노르웨이로 대피했지만 1940년 2월 16일, 노르웨이 영해까지 진입한 영국 구축함 코사크(Cossack)에게 공격당한 후 포로를 뺏겨버렸다. 이때 노르웨이는 영국 군함의 전투 행위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히틀러는 유사시 독일에게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노르웨이의 약속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노르웨이가 자국 영해에서 영국 해군의 군사 활동을 방임한 것은 영국과도 이면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도록 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노르웨이를 점령해 최대한 이점을 누리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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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암투 속에서 OKW가 작전을 맡게 되었다

어느덧 노르웨이는 프랑스 침공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할 당면 목표가 되었고 계획을 수립하라는 히틀러의 지시가 2월 21일 OKW(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에 하달되었다. 그런데 이는 당시 독일 군부의 암투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조치였다. 1938년 전쟁성 무력국을 확대 개편함으로써 탄생된 OKW는 형식상 육해공군을 통괄하는 독일군의 최상위 조직이었지만 정작 군령권이 없어 허수아비에 가까웠다.

OKW의 수장인 국방군 총사령관 카이텔(Wilhelm Keitel)은 히틀러에 맹종하는 대표적 정치군인이었는데,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지 못했고 사실 발휘해 볼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름뿐인 직책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과 OKW의 위상을 높이고자 어떻게든 작전에 관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프로이센 이래 군부의 실질적인 중심을 자처하는 전통의 육군과 종종 알력을 빚곤 했다.

육군의 최상위 조직인 OKH(육군 최고사령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일군 최고의 브레인 집단이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육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OKW를 만들었음에도 폴란드 침공전이나 프랑스 침공전, 소련 침공전처럼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OKH가 작전을 수립하고 전선을 주도하도록 조치했다. 당연히 OKH는 OKW를 무시하기 일쑤였는데, 바로 그렇게 뒷전에 물러나 있던 OKW에게 마침내 중요한 임무가 하달된 것이었다.

OKH는 경악했지만 총통의 명령은 사실 타당했다. 우선 OKH는 프랑스 침공 준비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었다. 둘째로 노르웨이 침공은 육해공군이 유기적으로 함께 작전을 펼쳐야 하므로 OKW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후자가 바로 OKW의 설립 목적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이러한 히틀러의 지시는 OKW가 전쟁 말기까지 그래도 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조직으로 남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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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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