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는 중립국이었지만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1939년 10월 6일, 약 한 달 간의 격전 끝에 폴란드 전역(戰役)은 막을 내렸다. 이제 제1차 대전의 승전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의 다음 상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더구나 폴란드가 침공당한 직후, 연합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기에 외교적으로는 이미 교전 상태였다. 다만 양측 모두가 상대의 강한 전력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실전을 망설이고 있을 뿐이었다.

1940년이 되자 독일과 프랑스 국경에는 양측 합쳐 중무장한 500만의 대군이 팽팽히 대치하게 되었지만 지난 전쟁의 혹독한 경험 때문에 섣불리 총을 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합국이 애써 피하려 해도 호전적인 히틀러가 존재하는 한, 전쟁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정작 앞장서서 싸워야 할 독일 군부는 연합국과의 전쟁을 원치 않았지만 총통의 의지를 너무 잘 알기에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지난 전쟁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고심했다. 1918년 종전 시점까지 독일은 동유럽과 프랑스의 엄청난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정작 전쟁에서는 패했다. 연합국의 막강한 해군력을 앞세운 해상 차단 작전으로 각종 원자재의 직접 도입이 불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었다. 한마디로 지도상의 우위와 달리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다시 서유럽에서 전쟁이 예견되는 이상 연합국은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독일을 해상 봉쇄하고자 했다. 반면 독일은 선제적으로 연합국의 움직임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북해와 발트 해를 연결하는 초입에 위치한 노르웨이가 양측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했다. 결국 약소국 노르웨이는 중립을 외치던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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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전략 물자인 철광석의 수송로에 위치했다

독일에게는 매년 1,000만 톤 가량의 철광석을 공급하는 스웨덴이 상당히 중요한 국가였다. 그러나 중립국이므로 단지 지리적으로 가깝고 상업적인 거래로 맺어진 관계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독일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나라들도 스웨덴에서 철광석을 수입하므로 굳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전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철은 무기의 가장 기초적인 재료가 되므로 당연히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 최대의 철광 산지는 북극권에 인접한 내륙의 키루나(Kiruna)다. 이곳에서 채굴된 품질 좋은 철광석은 동남쪽 발트 해 연안의 룰레오(Luleå) 항으로 옮겨진 후, 선박 편을 통해 독일까지 운송된다. 발트 해는 독일군이 충분히 초계할 수 있는 작은 내해여서 연합군이 이곳까지 침투해 수송을 방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문제는 항구와 바다가 얼어붙어 수송이 불가능한 동절기였다.

겨울에는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관통하는 철도를 이용해 북해에 인접한 부동항인 노르웨이의 나르비크(Narvik)로 철광석을 수송한 후 배에 싣고 와야 했는데, 이 루트는 해군력이 약한 독일이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위치다. 1940년 5월 이전까지 독일이 연합국보다 확실히 앞섰던 전력은 공군이었지만 독일 본토에서 노르웨이 북부까지 작전을 나가기는 불가능했다.

만일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해 군대를 전진 배치시킨다면 중요한 수송로를 안전하게 사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단지 그런 목적만으로 중립국인 노르웨이를 침공할 수는 없었다. 동절기 이전에 충분히 재고 물량을 확보하거나 독일 본토와 점령지에서 채굴량을 늘리면 수요량을 그럭저럭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독일이 노르웨이를 노린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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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대서양으로 나가는 통로이자 영국 공습의 거점이 될 수도 있었다

노르웨이는 당시 인구가 400여만에 불과한 소국이었지만 해안선의 길이만도 2,000여 킬로미터가 넘는 광활한 국토를 가진 나라다. 따라서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면 연안을 따라 이어지는 수송로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거대한 대서양과 북극해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전력이 절대 열세였던 독일 해군에게 이는 상당히 중요한 전략적 이점이 될 수 있었다.

당시 독일 해군의 거점들은 바다와 접해 있는 발트 해 연안에 주로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해에서 발트 해로 통하는 초입이 차단될 경우 독일 해군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세계 최강의 영국 해군은 충분히 바다를 봉쇄할 능력이 있었고 예전에도 이미 그렇게 했었다. 하지만 만일 독일이 노르웨이를 장악하여 해군을 전진 배치한다면 북해를 통해 곧바로 나갈 수 있게 된다.

물론 독일 해군이 대양으로 쉽게 나갈 수 있다고 해서 당장 영국과 일전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항구에 묶여 있는 것과 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확보하고 있는 것의 차이는 당연히 엄청나다. 반대로 그동안 한 곳만 틀어막아도 독일 해군의 진출을 막아내기에 충분했던 영국 해군이지만 작전 범위가 커지면 그만큼 전력을 분산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노르웨이는 공군을 통해 영국의 측면에 직접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위치다. 실제로 이후 노르웨이에서 출격한 독일 폭격기들이 영국의 후방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와 동부 해안 지역까지 공격했다. 비록 전과가 좋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측면이 길게 노출된 영국은 이 일대의 방비를 위해 전력을 분산 배치해야 했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노르웨이 점령은 군사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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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맞붙을 소련을 향한 진격로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독일에게는 전략적인 또 다른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소련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 소련은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은 동맹국이었지만 히틀러가 자서전에 대놓고 정복 의지를 밝혔을 정도로 둘이 계속 친구로 갈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거대한 일전을 고려하던 독일에게 노르웨이는 소련의 북쪽 측면으로 이어지는 출입구가 될 수 있었다.

노르웨이 북부의 핀마르크(Finnmark)를 통하면 지금도 러시아 해군의 주요 기지가 있는 무르만스크(Murmansk)를 쉽게 공략할 수 있다. 아직 소련 침공 계획이 수립되기 전이었지만 좋은 진격로를 하나라도 미리 확보해 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무르만스크는 이후 수립된 바바로사 작전에서 독일의 최종 진출선으로 예정되었던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까지 직선거리로 불과 600여 ㎞ 정도였다.

또한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면 동맹 대상으로 고려 중인 핀란드와 연결할 수 있었다. 1918년 독립 당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만큼 독일은 핀란드를 중시했는데, 거기에다가 겨울전쟁에서 보인 인상적인 전과 때문에 어떻게든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이렇게 독일이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확보하면 중간에 위치한 스웨덴은 자연스럽게 고립되므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를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독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노르웨이가 알아서 독일 편에 붙는 것이었지만 전운이 감돌기 이전부터 중립을 선언했기에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중립은 약소국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지만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은 내가 위험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다. 따라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많은 노력이 병행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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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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