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코프의 주도로 시작된 ‘화성 작전’

당시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에서 한창 진행 중인 피의 격전을 종결짓고 독소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소련 쪽으로 가져오기 위해 천왕성 작전(Operation Uranus)으로 명명한 야심만만한 계획을 준비 중이었다. 도심 점령에만 몰입되어 있던 독일 제6군을 이중 포위하여 일거에 섬멸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를 실질적으로 기안하고 추진한 인물이 주코프의 믿음직한 책사인 총참모장 바실렙스키(Aleksandr Vasilevsky)였다.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천왕성 작전의 개념은 간단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독일군 방어선의 취약 부위 양측을 파고들어가는 것인데, 핵심은 독일이 눈치채지 못하게 전력을 최대한 은밀히 측면에 준비하는 것이었다. 소련은 완벽한 준비가 갖추어지기 전까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이런 바실렙스키의 생각이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 밝혀진 것은 없지만 주코프는 르제프 돌출부도 같은 방식으로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르제프 돌출부 제거를 위해 주코프의 주도로 수립된 새로운 공세 계획이 화성 작전(Operation Mars)이다. 오랫동안 이 작전은 천왕성 작전에 도움을 주기 위한 양동작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새롭게 자료가 밝혀지면서 전혀 다른 별개의 전투라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어 이제는 정설이 되었다. 사실 르제프는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독일의 지원을 방해하기 위해 양동작전을 펼치기엔 물리적으로 너무 멀었다.

하지만 양동작전이건 별개의 전투건 상관없이 그 거대했던 규모에 비해 화성 작전의 내용과 결과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글랜츠(David Glantz) 같은 학자가 주코프 최악의 패배라고 표현할 정도로 엄청난 참패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해가 많았어도 만일 소련이 목표를 달성했다면 틀림없이 스탈린그라드 전투 못지않게 널리 회자되었을 것이다.

화성 작전은 주코프 최악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화성 작전의 세부안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었다. 지난 1년 가까이 그래 왔던 것처럼 돌출부 좌우에 있는 칼리닌 전선군과 서부전선군이 양 측면을 강타한 후 쇄도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충분한 전력을 구축할 때까지 교전을 삼갔던 것이었고 덕분에 11월 중순이 되자 70여만의 병력과 1,500여 대의 전차를 배치할 수 있었다. 마침내 스탈린그라드를 둘러싼 포위망이 완성된 직후인 11월 25일 공격이 개시되었다.

칼리닌 전선군 예하 제22, 41군이 벨리(Bely)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고 동시에 서부전선군의 제20, 31군이 르제프 남쪽으로 파고들어갔다. 더불어 지난 7월 붕괴되었다가 재건된 제39군이 르제프 북쪽 전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동안 수차례나 점령에 실패했던 시쵸프카에서 만난 후 곧바로 브야즈마까지 남하해 독일 제9군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곧바로 독일군의 방어선에 막혔다.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미끼 역할을 맡은 소련 제62군이 극렬히 저항하며 독일 제6군을 도심에 잡아놓는 데 성공했지만, 르제프에서는 독일 제9군의 시선을 끌어 무한정 소모시킬 유인책이 없었다. 무엇보다 1년 가까이 전선의 거시적인 변동이 없었기에 방어선이 완벽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강화된 상태였다. 오히려 소련군은 방어선 전면으로 무모하게 돌파하다가 독일의 역공을 받고 하나둘씩 사라져 갔고 전선은 다시 한번 소련군의 시신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독일의 방어 전략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델은 종심에 대기시켜 놓은 예비대를 위급한 지역으로 급파해 소련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필요하다면 그로스 도이칠란트(Großdeutschland) 사단 같은 최정예 부대조차 갈기갈기 찢어 여러 방어 거점에 나누어 투입할 정도였다. 결국 한 달이 지난 12월 20일이 되자 주코프는 공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약 10만의 전사자를 포함해 40여만의 피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로 독일은 르제프 돌출부를 포기해야 했다

제2차 르제프-시쵸프카 공세(Second Rzhev–Sychyovka Offensive Operation)로도 불리는 소련의 화성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고 그렇게 1943년이 시작되었다. 지난 1년 간 독일 제9군은 경이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선전을 펼쳤다. 1941년에 있었던 여러 포위전과 비교해 전선이 단지 정적이었을 뿐, 무려 130여만의 병력과 수천 대의 전차를 포함한 엄청난 장비를 소모시켜 소련군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독일은 르제프 돌출부를 포기해야 했다. 소련군의 새로운 공세가 재개되어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했던 것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 후 신속한 전력 복구가 힘들어진 독일은 전선을 조정해 부대를 재배치하는 방법으로 당장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 결국 르제프 돌출부를 비롯해 독일이 전략적으로 사수하던 몇몇 거점을 포기하는 데 히틀러도 동의했다.

OKH의 지시를 받은 모델은 돌출부를 방어하던 35만여 명의 독일군과 그동안 자신들을 도운 6만여 명의 반소(反蘇) 러시아인들을 200여km 후방에 구축될 새로운 방어선으로 소개시키는 들소 작전(Operation Büffel)을 수립했다. 목표는 소련군을 기만함으로써 추격을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철수하는 것이었다. 1943년 3월 1일, 민간인과 부상병을 시작으로 3주 동안 이어진 대규모 철수가 시작되었다.

속임수에 빠져 독일군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소련군이 뒤늦게 추격을 했지만 오히려 철수 직전에 설치한 부비트랩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 3월 22일, 철군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서 독일 중부집단군은 500km의 울퉁불퉁한 전선을 200km로 대폭 축소시킴과 동시에 20여 개 사단을 예비대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지난 15개월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진 르제프 전투는 마침내 막을 내렸다.

모두가 잊고 싶어 했던 전투

3년 동안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벌어진 시기는 고지전이 시작된 1951년 여름 이후의 2년간이다. 하지만 그다지 외형적인 변동은 없어서 전선이 역동적으로 오락가락했던 최초의 1년에 비해 자세한 내용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르제프 전투도 이와 상당히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너무나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내용이 더 많을 정도다.

우선 독일은 성공적으로 방어전을 이끌었지만 60여만의 피해를 보고 수세적인 입장에서 방어전만 펼쳤기에 소련군의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할 수 없었다. 즉, 겉으로 드러난 내용만으로는 승리한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들의 전과를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소련은 130여 만의 인명 피해를 입었을 만큼 전술적으로 엄청난 패배를 당했고 또한 자력으로 르제프 돌출부를 탈환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 전투가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런 경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소련이 붕괴된 후 극히 일부 자료가 공개되면서 그 내용이 간신히 드러났고 특히 화성 작전을 주도해 참패를 당한 주코프와 관련된 내용은 고의로 누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분쇄기라 불린 르제프의 잔혹한 싸움터에서 살아남은 소련군 참전용사들이 20세기 말까지 노고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분통을 터뜨릴 정도였다.

반발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러시아 당국은 지난 2007년 뒤늦게 군사 영예 도시(City of Military Glory)라는 칭호를 수여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지만 참전용사나 희생자 가족들의 반발을 완전히 누그러뜨리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5개월 동안 쉼 없이 계속된 르제프 전투는 너무나 크고 잔인한 지옥이었다. 그런 내용이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관심 밖에 머물러왔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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