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 사령관의 교체와 제1차 르제프 - 시쵸프카 공세

7월 30일, 소련의 칼리닌 전선군과 서부전선군이 50만여 명의 병력과 1,700여 대의 전차, 1,000여 기의 작전기를 동원해 시작한 대대적인 공격을 흔히 제1차 르제프-시쵸프카 공세(First Rzhev–Sychyovka Offensive Operation)라고 한다. 맞상대인 독일 제9군은 지난 상반기 격전에서 소모된 병력을 제대로 보충 받지 못한데다 공교롭게도 불의의 사고로 사령관이 바뀌는 어려움까지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제9군을 이끌며 성공적으로 르제프를 사수하던 모델이 7월 초, 전선 시찰 도중 총상을 입었던 것이었다. 불의의 전상을 당하고 그가 후송되자 대신 예하 제46장갑군단장 피팅호프(Heinrich von Vietinghoff)가 임시 사령관이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소련군이 공세를 집중한 곳이 제46장갑군단의 담당지역이었다. 소련은 5배의 압도적 전력을 앞세워 곳곳을 돌파했고 8월 5일에 이르러서는 30여㎞를 진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소련군이 돌파구 초입에 있던 데르자(Derzha) 강에서 진격을 멈추었다. 이곳은 강이라기보다 조금 넓은 하천 정도여서 폭이 좁았지만 수심이 깊어 도하가 불가능했다. 사전에 적절한 도하 장비를 준비하지 못한 결과였다. 결국 시간을 지체한 끝에 강을 건넜지만 그 사이 남쪽의 수히니치에서 긴급 전개한 독일군 정예부대들이 속속 도착했다. 피팅호프는 소련군의 진격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중앙으로 출몰한 소련 제8전차군단과 제6전차군단을 향해 독일 제5전차사단이 달려들었다. 소련군의 진격을 저지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제5전차사단은 4배에 가까운 전력 격차 때문에 많은 손실을 입어야 했다. 같은 날 함께 올라온 독일 제2전차사단은 카르마노포 부근까지 다가온 소련 제20군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소련군이 더 이상 진격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독일군의 역공이 때맞춰 일어난 것이다.

끝내 저지된 소련의 공세

예상치 못한 독일 기갑부대의 등장에 소련군이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또 다시 포위망에 갇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워낙 많이 당해왔기 때문인데, 정작 소련의 소심한 우려와 달리 전력이 절대 열세였던 독일은 더 이상 반격을 지속할 수 없었다. 피팅호프는 돌파구를 간신히 막은 상태지만 역공이 불가능하므로 바주자(Vazuza) 강을 방어선 삼아 전선을 고착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반면에 작전을 총지휘한 주코프는 보급 문제와 독일군의 방어에 걸려 소모가 극심하긴 했지만, 돌파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이상 공세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그의 눈에 독일 제5전차사단과 제2전차사단 사이의 틈이 보였다. 공교롭게도 이 공간은 이번 공세의 최종 목표인 시쵸프카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는 후방에 있던 제5군에게 제8전차군단과 제2근위기병군단을 도와 이곳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8월 6일, 소련군이 5km를 전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수히니치에서 막 도착한 독일 제1전차사단이 이들의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독일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사전에 구축한 방어 진지를 적절히 이용해 앞으로 달려 나오는 데 급급한 소련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했다. 8월 9일이 되었을 때 결국 소련은 시쵸프카 점령을 단념해야 했고, 부상에서 회복한 모델이 다음 날 사령관으로 복귀했다.

8월 23일, 간헐적인 소모전을 계속한 끝에 소련은 카르마노포 점령에 성공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독일의 방어선은 더욱 단단하게 변해갔다. 8월 26일에는 주코프가 소련군 총사령관 대리(Deputy Commander-in-Chief)라는 스탈린 다음 직위이자 실질적인 군부의 수장으로 영전했다. 주코프는 전선 전체를 총괄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났고 르제프 전투를 이끌 신임 서부전선군 사령관으로 그동안 칼리닌 전선군을 지휘한 코네프(Ivan Konev)가 임명되었다.

르제프에 집중시킨 공격조차 독일군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많은 자료에서 소련군의 진격이 멈추고 지휘 체계가 바뀐 8월 23일을 제1차 르제프-시쵸프카 공세의 종결일로 보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공격에 나서는 소련군과 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독일군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르제프 공략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인수받은 코네프는 의욕이 충만했는지 곧바로 공세 재개를 계획하고 STAVKA(소련군 최고사령부)에 병력과 물자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봄에 있었던 브야즈마 공략은 물론, 시쵸프카로 목표를 축소해 벌였던 초여름의 공세도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예정대로 독일군의 배후를 절단한다면 대승을 거두겠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독일의 역량을 생각할 때 결코 녹록한 과제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공격을 돌출부의 정점이자 지금까지 이어진 치열한 싸움의 상징과도 같은 르제프로 한정해 벌이기로 했다.

사실 르제프만 함락시켜도 효과는 충분했다. 돌출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르제프는 도시 자체가 남북과 동서로 지나가는 철도의 교차점이었다. 독일이 소련 포병의 사정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을 사수한 것도 소련군의 이동을 손쉽게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네프는 르제프 외곽에 나란히 도열한 제30, 29, 31군에게 르제프를 포위하란 명령을 내렸다.

대대적인 포격 후 소련군의 돌격이 개시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의 반격에 저지당했고 벌판은 시신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지만 지도상으로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미약한 변화와 상관없이 병사들의 희생은 엄청났다. 독일군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지만 진지 밖으로 나와 돌진하다가 차례로 죽어간 소련군의 고통은 너무나 컸다.

30여만 명의 희생으로 얻은 미미한 성과

10월 1일이 되자 코네프도 자신의 의도가 좌절되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결국 8, 9월 두 달 동안 벌어진 소련의 연이은 공세는 르제프 돌출부 제거에 실패하고 단지 동쪽의 줍초프와 카르마노포 선을 탈환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20여 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장비를 쏟아부은데다 무려 30여만의 사상자를 냈다. 반면 독일은 8만의 손실을 입었는데 단지 상대적으로 적다 뿐이지 사실 이 또한 엄청난 수준이었다.

또 다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지난 1월에 현재의 전선이 형성된 이후 지도상으로는 거의 변동이 없다시피 했기에 계속 소강상태였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내용은 사뭇 달랐다. 치열했던 공세와 방어가 잠시 멈춘 진짜 조용한 상태였다. 지난 7월의 자이들리츠 작전을 제외하고 계속 수세적인 입장이었던 독일은 물론, 쉼 없이 공격을 가해왔던 소련도 그동안의 격전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10월 중순이 되자 절정으로 치닫던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OKH와 STAVKA 모두의 1순위 관심사가 되면서 여타 전선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벌일 여력이 부족했던 점도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바로 이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매진하던 주코프가 르제프 돌출부를 다시 주목했다. 애당초 스탈린의 욕심 때문에 시작된 싸움이었지만 지휘권을 코네프에게 넘긴 8월 말까지 그에게 르제프는 치욕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때려도 끄떡없는 독일 제9군은 그에게 진정한 눈엣가시였다. 1년 가까이 모스크바를 향해 튀어나온 르제프 돌출부를 그대로 둔 채 두 번째 겨울을 맞는다는 것은 소련군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에겐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당시 주코프는 스탈린그라드에 집중된 독일 제6군을 포위 섬멸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르제프도 같은 방식으로 함께 정리하고자 했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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