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5월부터 6월 사이에 연이어 벌어진 산호해 해전(Battle of Coral Sea)과 미드웨이 해전(Battle of Midway)은 태평양 전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친 기념비적 전투들이었다. 이 역사적인 두 해전에 모두 참전해 용맹을 뽐내고 최후의 순간까지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어 미 해군의 전설로 자리 잡은 항공모함(이하 ‘항모’)이 있다. 짧지만 굵었던 생애로 유명한 CV-5 요크타운(USS Yorktown)이다.

일본의 남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 출동한 요크타운

1927년 미 해군이 최초로 실전에 배치한 항모인 CV-2 렉싱턴과 CV-3 사라토가(이하 렉싱턴급)는 군축조약에 의해 건조가 중단된 전함의 선체를 개조한 형태여서 운용 도중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그러나 1934년 5월 기공한 만재 배수량 25,900톤의 후속 신예 항모들은 처음부터 항모 전용으로 설계와 제작이 이루어졌기에 렉싱턴급에 비해 크기는 조금 작았지만 작전 효율은 오히려 더 좋았다.

총 3척이 건조된 이 신예 항모들은 1937년 9월 배치된 초도함 요크타운을 시작으로 CV-6 엔터프라이즈와 CV-8 호넷(이하 요크타운급)으로 명명되었다. 원래 대서양 함대에 배치되었던 요크타운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함대가 순식간에 와해될 정도의 엄청난 타격을 입자 긴급 이동 전개되었다. 그러는 사이 1942년 4월 말이 되자 일본의 세력은 남반구의 호주 근처까지 이르게 되었다.

일본은 미국과 호주의 연결을 끊기 위해 경(輕)항모 쇼호가 이끄는 상륙부대를 출동시켜 파푸아뉴기니의 포트모르즈비 점령에 나섰다. 그러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요크타운과 렉싱턴을 주축으로 한 제17기동부대를 출동시켰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 당시 자리를 비워 보존된 미국의 항모 세력을 격멸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해, 동남아에서 작전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 중이던 중(重)항모 쇼카쿠와 주이카쿠를 돌려 이곳에 추가 투입했다.

사상 최초의 항모 간 대결이 벌어지다

5월 4일, 일본이 길목에 위치한 툴라기 섬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접한 미군은 함재기들을 날려 대응에 나섰다. 미 항모들이 근처에 있음을 직감한 일본은 예정대로 쇼호가 포트모르즈비 상륙에, 쇼카쿠와 주이카쿠가 미 항모 격멸에 나서기로 했다. 이처럼 양측은 상대방 항모가 근처에 있음을 인지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산호해 전투가 시작되었다.

5월 7일 아침, 먼저 쇼호를 발견한 미군은 요크타운과 렉싱턴의 함재기들을 출격시켰다. 공교롭게도 상륙부대 호위를 위해 쇼호의 함재기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오전 11시경, 미군기들이 텅 빈 쇼호를 향해 맹수 같이 달려들면서 사상 최초의 항모 함대 간 대결이 시작되었다. 공격 30분 만에 쇼호가 불덩이가 되어 침몰하면서 요크타운은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본의 주력인 쇼카쿠와 주이카쿠는 건재했다. 드디어 5월 8일 새벽, 양국의 정찰기들이 거의 동시에 상대의 함대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양측 모두 공격에 나서다 보니 방어용 전투기들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결국 누구의 공격력이 상대를 더 신속히 제압하느냐의 여부로 승부가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일본 항모들은 약간의 수리만 받으면 재투입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경미한 피해를 입은 반면 미국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렉싱턴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요크타운도 결정타를 얻어 맞아 70여 명의 승조원이 사망하며 갑판 기능이 정지되었다. 승조원들의 분투로 함을 포기하는 상황까지는 막았지만 전술적인 패배를 인정하고 전투 공역에서 물러나야 했다.

대파된 항공모함을 3일 만에 수리한 기적

전과를 분석한 일본은 미국의 잔존 항모 세력이 유일한 위험 요소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 당장은 일본의 전력이 우위에 있지만 미국의 산업 생산 능력을 고려하면 머지않아 역전될 가능성이 확실했다. 때문에 일본은 미국의 잔존 항모 세력을 끌어들여 일거에 격멸한 후 강화 협상을 주도하고자 했다. 결전의 장소로 미드웨이 해역이 지목되었고 감청을 통해 일본의 계획을 파악한 미국도 응전을 결정하면서 사상 최대의 해전이 막을 올리게 되었다.

5월 26일, 일본은 항모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를 주축으로 편성한 대함대를 출동시켰다. 이에 미국도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주축으로 구성된 제16기동부대를 5월 29일 발진시켰지만 이들만으로는 절대 열세였다. 고심 끝에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는 5월 27일까지 요크타운의 진주만 귀환을 지시하고 더불어 정비부대에는 3일 안에 함재기를 이착할 수 있도록 수리를 마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은 산호해 해전에서 요크타운을 침몰시키지는 못했지만 수개월간 작전에 나서지 못할 정도의 타격을 입혔다고 판단했고, 그러한 생각은 피해를 당한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요크타운이 도착하자마자 2,000여 명의 기술진이 즉시 수리에 들어갔고 기적이 연출되었다. 제16기동부대가 출동한 다음 날인 5월 30일, 요크타운은 선내의 기술진이 계속 수리를 하는 상태에서 미드웨이를 향해 출항했다.

미국 스스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일본은 불과 보름 전에 대파당한 요크타운이 미드웨이에 등장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42년 6월 3일, 미드웨이 섬을 일본 항공대가 공습하면서 거대한 해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의 핵심을 간파한 미국은 일본의 항모들을 먼저 찾아내 공격에 나서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태평양을 불태운 거대한 해전

미군의 3시간에 걸친 파상 공세를 굳건히 견뎌낸 일본 함대가 반격으로 전환하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공격에 나선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 항모들을 차례로 강타하면서 항모 3:4로 시작한 해전은 반나절 만에 3:1로 균형추가 기울었다. 이러한 참사에서 간신히 벗어난 마지막 항모 히류가 반격에 나섰고 이 와중에 요크타운은 또 한 번의 전설을 만들어 냈다.

그때까지도 일본은 미국이 이번 전투에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2척을 동원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히류의 공격비행대는 마침내 미국 항모를 찾아냈는데 바로 요크타운이었다. 3발의 폭탄이 요크타운의 갑판에 정확히 떨어지고 그중 한발이 기관실에 들어가 폭발하면서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일본 조종사들이 1척의 미국 항모를 잡았다고 판단했을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이제 일본은 항모 전력이 1:1이 되었다고 판단했고 남은 1척만 잡으면 결국 승리할 것이라 여겼다. 일본은 자신들이 공격한 항공모함이 요크타운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사를 당한 요크타운의 승조원들이 끈질기게 진화에 나서 불길을 잡았다. 그리고 불과 1시간 만에 이착함이 가능한 수준으로 갑판의 기능을 회복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는 동안 히류에서 후속 출격한 뇌격비행대가 마침내 마지막 남은(물론 일본의 생각으로) 미국의 항모를 찾아냈다. 그런데 그것이 기적적으로 회복한 요크타운이었다. 바로 직전에 치명상을 입은 항모일 거라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구된 상태였던 것이다. 일본의 뇌격기들은 즉각 저고도로 내려와 공격에 나섰고, 그중 일부가 어뢰를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요크타운의 짧지만 굵었던 생애

2발의 어뢰에 허리를 강타당한 요크타운은 좌측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승조원들이 침몰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고 결국 퇴함 지시가 내려졌다. 이처럼 요크타운이 곤욕을 치르는 와중에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 출격한 비행대가 끝까지 저항하던 히류를 찾아내 격침시켰다. 이처럼 일본의 항모들이 모두 궤멸당하면서 미드웨이 해전은 미국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 일본은 수세적인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체가 20도나 기울어 있던 요크타운은 마치 자신의 운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다음 날에도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요크타운에 올라가 조사를 한 기술진은 더 이상의 침수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침몰시키기로 했던 계획을 바꾸어 진주만으로 끌고 가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불사조 요크타운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기적처럼 부활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퇴하지 않고 인근에 매복해 있던 일본 잠수함 I-168이 발사한 어뢰 한 발에 정확히 측면을 강타당한 요크타운은 결국 6월 7일 05시 태평양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처럼 미 해군 역사에 길이 빛날 해전에서 주역으로 대활약한 요크타운은 비록 바다로 나간 지 5년 만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 어느 군함보다 굵은 족적을 남겼다.

연이은 엄청난 피해에도 굴하지 않은 요크타운의 끈질긴 투혼은 해전사의 한 장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난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이름 없는 수많은 승조원과 엔지니어, 조종사들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감투 정신이 불사조 같은 투혼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요크타운이란 위대한 이름을 저버릴 수 없었던 미국은 1943년 4월 취역한 CV-10에 함명을 승계시켰다.

▌제원

배수량 25,900톤(만재) / 길이 251.38m / 폭 33.38m / 속력 32.5노트(시속 60.2km) / 승조원 2,217명 / 함재기 전투기, 공격기, 뇌격기 등 80여 기 탑재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