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6.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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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미 육군의 정예 특수부대

그린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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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특수부대의 정식 명칭은 ‘US Army Special Forces’, 말 그대로 ‘미 육군 특수부대’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는 ‘그린베레’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하다. 대한민국 육군으로 치면 특전사에 해당하는 부대로 볼 수 있다.

그린베레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영화 람보에서 드러난다. 홀연히 적 후방으로 투입되어 파괴와 공포를 몰고 오는 특수부대원의 모습이 굳어진 것도 이런 영향 덕분이다. 원래 미국은 건국 당시에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소규모 부대의 도움을 받았던 국가다. 영화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에서 묘사된 것처럼 프랜시스 매리언(Francis ‘Swamp Fox’ Marion)의 활약은 영국군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결국 독립에 기여했다. 매리언 장군은 미국 특수부대의 기원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미 특수부대의 훈련시범, 테러범의 최후는? GMV, MH-6, MC-130 등 특수작전용 차량 항공기 총출동!


미군 특수전의 시작: 제1특수임무대와 OSS

미군은 제2차 대전 동안 제1특수임무부대나 알라모 정찰대, 메릴 특공대에서부터 OSS 침투팀까지 다양한 특수부대들을 운용해왔다. 이 중에서 제1특임대는 우수한 캐나다 지원병 800여 명과 미 육군의 ‘잉여자원’ 1,000여 명을 모아 만들었다. 이들은 강하와 상륙, 폭파는 물론이고 근접 전투, 침투, 스키, 등반 등 다양한 기술들을 연마했다. 제1특임대는 실험적 성격의 부대이자 미국의 현대적 특수부대의 시초였다.

파병준비가 끝난 1943년에 제1특임대는 이탈리아 전선으로 투입되어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피해도 대단했다. 한 달 간의 전투에서 창설대원 1,800여 명 중 1,4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1944년에는 안치오 지역에서 무려 사단급 작전구역을 맡아 독일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 제1특임대는 악마의 여단이란 이름으로 독일군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다.

또 다른 주축으론 OSS가 있다.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란 전략정보국으로, CIA의 기원이 되는 미국 최초의 정보기관이었다. OSS의 역할은 정보수집뿐 아니라 적 후방에서의 준군사작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활동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국 SOE(Special Operations Executive)의 적 후방 공작이었다. SOE 대원들은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 유럽주민들을 훈련시켜 독일군의 후방을 타격하는 저항군으로 키워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마찬가지로 OSS는 제드버러(Jedburgh)팀을 만들어 레지스탕스를 양성하고 이들과 함께 적 후방에서 철도나 교량을 파괴하는 사보타지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제2차 대전이 끝나면서 이들 부대는 해체되었다. 적 후방에서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임무는 새로 생긴 정보기관인 CIA로 넘어갔다. 6.25가 시작될 때만 해도 미 육군 내에 특수전/비정규전 능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심리전 사무국(Office of Psychological Warfare)만이 유일한 특수작전 관련 부서였다.


6.25 전쟁 중에 탄생한 제10특전단

그러나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은 군 내부에 특수전 능력을 남겨놓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UN군이 북진한 이후 1950년 겨울을 즈음해 북한 지역에는 수많은 자생적 유격대들이 생겨났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은 제8군 G-3 휘하에 8086부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이후 8240부대로 통합되면서 한반도의 모든 게릴라 작전을 지원했다. 1952년 초에 이르러서는 레오파드, 울프팩, 커클랜드의 3개 지대를 운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외의 특수작전을 군이 아닌 CIA가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CIA는 주한 합동고문단(Joint Advisory Commission, Korea; JACK)이라는 명칭 아래 한반도에서 적 후방의 파괴공작이나 조종사 구출 같은 임무를 띠고 활동했다. 부산의 영도유격대도 실은 이런 CIA 산하의 조직이었다.

한반도의 특수작전을 관장하기 위해 CCRAK(Combined Command Reconnaissance Activities, Korea; 한국정보활동 통합사령부) 같은 조직이 생겨 미 극동군사령관(즉 UN군 사령관)의 휘하 조직으로 활동했지만, 군이 직접 통제하는 특수부대의 필요성은 여전히 컸다.

그리하여 심리전 사무국이 주축이 되어 특수부대가 구상되었다. 미 육군의 정예 경보병부대인 레인저의 창설 10주년인 1952년 6월 19일, 미 육군 최초의 특수부대인 제10특전단(Special Forces Group)이 창설된 것이다.

유럽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미 육군 특수부대는 훈련 때 그린베레를 비공식적으로 착용했다. <출처: Wikipedia>

제2차 대전의 특전용사였던 아론 뱅크(Aaron Bank) 대령이 지휘하는 제10특전단이 배치될 장소는 유럽이었다. 6.25 전쟁으로 인해 전력이 부족해진 유럽전선에 만약 소련군이 침공한다면 제2차 대전 때 같은 유럽의 레지스탕스 작전을 특전단이 이끌겠다는 구상이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특전단의 새 교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저항군을 이끌어 독립을 되찾는다는 레지스탕스의 정신은 부대의 라틴어 모토인 ‘De oppresso liber(압제로부터의 해방)’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전 이후 국제 정세가 복잡해지면서 특전단의 규모는 점차 늘어났다. 우선 1953년 제10특전단이 독일 바트 퇼츠(Bad Tölz)에 배치되자 나머지 절반의 병력은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 남아 제77특전단이 되었다. 그리고 1956년 제77특전단에서 다시 몇 개의 분견대들이 극동지역으로 파병되면서 제1특전단이 일본에서 창설되었다. 한편 베트남 독립전쟁으로 북베트남이 생겨나자, 미국은 1959년부터 남베트남군에 특전단 소속의 군사고문단을 은밀히 파견했다.


그린베레가 특수부대의 상징이 된 이유

미 육군 특수부대는 ‘그린베레’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하다. 원래 녹색의 베레모는 제2차 대전 당시 영국군 특수부대인 코만도의 상징이었다. 코만도가 처음 생겼을 때 다양한 부대 출신자들이 스코틀랜드식 빵모자(Tam o' Shanter)에서부터 포리지 캡, 베레모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양한 모자들을 쓰고 모여들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부대를 방문해 그린베레의 착용을 요청하면서 그린베레는 공식 착용모가 되었을 뿐 아니라 미 육군 특수부대의 별칭이 되었다. <출처: Wikipedia>

결국 새로운 부대를 상징할 모자를 찾아야만 했는데, 타 부대가 상징으로 선점하지 않은 모자를 찾다 보니 녹색의 베레모가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후 코만도와 연관된 수많은 서구의 부대들이 녹색 베레모를 썼다. 코만도의 후신인 영국 해병 코만도는 물론이고 호주의 육군 코만도, 프랑스의 코몽도 마린, 네덜란드의 KCT 등이 착용하고 있다.

미 육군 특수부대가 그린베레를 착용하게 된 계기도 실은 유럽과 관계가 있다. 독일에 배치된 제10특전단에는 제2차 대전 참전용사들이 많았는데, 훈련 시에 철모 대신 다양한 베레모를 쓰고 다녔다. 일반 보병이 아닌 특수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녹색의 베레모가 부대의 비공식 모자가 되었다. 하지만 보병 지휘관들은 이런 ‘사제’ 복장을 엄청 싫어하여, 베레모는 유럽스럽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착용금지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어준 것은 엉뚱하게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케네디의 포트 브래그 방문 장면 <출처: AWIC / 유투브>

케네디는 특수부대야말로 미래의 전쟁에 대한 해답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961년 10월 12일 포트 브래그를 방문하기 전에 특수전단이 반드시 녹색 베레모를 착용하도록 하라고 특수전 교육단장인 야보로(William P. Yarborough) 준장에게 부탁했다.

이날 연설에서 케네디는 공산혁명과의 싸움에서 특수부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린베레는 다가올 도전에서 커다란 활약을 할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다. 이렇게 케네디 대통령의 축복 속에 특전단은 녹색 베레모 착용을 허락받은 것은 물론이고 그린베레라는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기본 작전단위인 ‘A팀’

그린베레의 기본 작전단위는 ODA(Operational Detachment Alpha), 즉 A작전분견대로, ‘A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80년대 미국의 인기 드라마 ‘A특공대(원제목 A-Team)’도 바로 그 A팀을 가리킨다. A팀은 통상 12명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18알파(A): 대위, 지휘(사관) 주특기
● 180알파(A): 준위, 지휘(준사관) 주특기
● 18줄루(Z): 상사, 지휘(부사관) 주특기
● 18브라보(B): 중사, 화기 주특기
● 18브라보(B): 하사, 화기 주특기
● 18찰리(C): 중사, 폭파 주특기
● 18찰리(C): 하사, 폭파 주특기
● 18델타(D): 중사, 의무 주특기
● 18델타(D): 하사, 의무 주특기
● 18에코(E): 중사, 통신 주특기
● 18에코(E): 하사, 통신 주특기
● 18폭스트롯(F): 중사, 작전·정보 주특기

우리나라 특전사의 특전중대도 A팀과 편성이 유사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중대장이 대위, 부중대장이 소위·중위인 반면, 그린베레 A팀은 부중대장이 준위라는 점이 다르다. 특히 A팀에서 180알파와 18줄루는 마치 팀 내의 아빠와 엄마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A팀의 핵심은 부사관이다. 진급이 우선이어서 보직이동이 잦은 장교보다, 대개 하나의 보직에 붙박이로 붙어있는 부사관들이 더욱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1개의 팀 가운데 작전·정보, 화기, 폭파, 의무, 통신의 5대 주특기가 모두 존재한다. 특히 이러한 주특기들이 도제식으로 전수될 수 있도록, 한국식으로 치면 사수-부사수처럼 선임자와 후임자를 같이 배치했다. 이렇게 하면 팀을 2개로 나누어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A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 능력이다. 그린베레는 해외에서 현지 세력을 포섭해서 작전해야만 한다. 따라서 적어도 2개 국어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만 하며 1개는 완전히 능통해야 한다. 주특기마다 차이가 있으나, 그린베레가 되기 위해서는 100주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 무려 2년에 가까운 양성기간이다.

그린베레는 A팀 이외에 CIF중대와 같은 타격작전/대테러 직할대도 있다. <출처: (cc) USASOC News Service at Wikimedia.org>

한편 ODA 말고 ODB와 ODC도 있다. ODB, 즉 B분견대는 지역대 본부를, C분견대는 대대본부를 의미한다. 그린베레는 보통 6개의 A팀이 모여 1개의 지역대(B팀, 소령 지휘)를 형성하며, 3개의 지역대가 모여 1개의 대대(C팀, 중령 지휘)가 된다. 보통 특전대대 4개가 모여 1개의 특전단이 구성되므로, 특전단에는 70여 개의 A팀이 있게 되는 셈이다.

한편 모든 특전단에는 찰리팀으로도 불리는 CIF(Commander’s In-extremis Force, 사령관 직할대)중대가 하나씩 있어서 타격작전이나 대테러작전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그린베레의 주화기(소총)는 역시 M4 카빈이다. 현재는 Mk18 Mod1과 Mod2 카빈이 애용되고 있다. <출처: (cc) US ARMY SPECIAL FORCES at Flickr.com>


베트남전에서의 눈부신 활약

케네디 대통령 시절, 그린베레는 제3·5·6·8특전단이 창설되면서 4개의 부대가 증편됐다. 제77특전단은 제7특전단으로 재명명되었다. 이렇게 몸집을 불린 그린베레가 본격적으로 투입된 전장은 베트남이었다. 원래 그린베레는 게릴라들을 모집하여 북베트남에서 싸우려 했지만 우수하고 신념에 찬 게릴라들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남베트남에서 활약하는 공산 게릴라들이 훨씬 더 우수했다. 결국 게릴라전보다는 게릴라를 막는 대분란전(Counterinsurgency)이 그린베레의 임무가 되었다.

이에 따라 현지 소수민족을 모아서 전략방어촌을 형성하고 민간 비정규방어대(CIDG)를 조직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전략방어촌과 CIDG 간에는 연계망을 만들어놓고 한 마을이 공격당하면 인근에서 지원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또한 기동타격대(Mobile Strike Force, 마이크 포스)를 만들어 적에 대한 타격도 실시했다.

일부 대원들은 MAC-V/SOG(베트남 군사지원사령부 특수작전단)에 배속되어 CIA와 함께 공산혁명 핵심세력들을 체포·사살하는 HVT작전(High Value Target, 고가치 표적작전, 즉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피닉스 프로젝트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의 작전은 제5특전단이 중심이 되어 실시되었으며, 최고명예훈장 수여자가 16명이나 배출되었다. 그러나 이미 1970년 정도에 그린베레는 상당수 베트남의 전장을 떠난 상태였다.

그린베레는 위대한 실패로 알려진 손타이 포로구출작전 이후 베트남 전쟁에서 멀어졌다. <출처: Wikipedia>

그린베레의 베트남전 활약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받은 것은 손타이 포로구출작전이었다.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적 후방으로 침투해 들어간 이 과감한 계획은 1970년 11월 20일 시작되었다. 구출작전 자체의 실행은 빈틈이 없었고 수용소까지 도달해 적을 제압했지만 막상 포로들이 없어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군을 구하기 위해 적진으로 과감하게 뛰어든, 그린베레의 용맹성과 존재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베트남전 이후 침체기를 맞은 그린베레

베트남전이 끝나면서 그린베레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려 14년간이나 베트남에서 싸웠지만 현지인을 활용하는 비정규작전이나 거듭되는 CIA와의 비밀작전을 군 수뇌부는 좋게 보지 않았다. 제6·8특전단이 70년대 초에 해체되었고, 많은 대원들이 군을 떠났다.

인권을 강조하는 카터 행정부의 눈에 그린베레 같은 조직이 좋게 보일 리 없었고 그린베레는 살아남기 위해 매우 낮게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람보(First blood, 1982) 같은 영화가 나온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다시 전쟁에 뛰어들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한 그린베레는 심지어 1983년의 그레나다 침공에도 참여 범위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그린베레는 남미와 중동 등에서 소규모 군사활동을 계속해왔다. 대원들은 군사자문관으로서 공산게릴라를 막기 위해 정부군을 양성하거나, 반대로 공산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를 비밀리에 양성했다.


걸프전에서 화려한 부활을 하다

그린베레가 다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파나마 침공에서부터였다. A팀들은 파나마의 라디오 송신국을 파괴했고, 교량을 장악해 적의 증원을 막았다. 전쟁이 끝나자 스페인어에 능통한 그린베레 대원들은 파나마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달래고 남은 저항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린베레가 본격적으로 활약한 것은 바로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부터였다. 그린베레의 임무는 크게 2가지로, 첫 번째가 전략정찰 임무였다. 이들은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적의 동향을 감시했고, 우선순위 표적이던 스커드 미사일을 탐지해 파괴하도록 도왔다. 두 번째로, 다국적군에 참여한 아랍 국가들을 준비시키는 것도 그린베레의 몫이었다. 그린베레는 군사고문관으로서 다국적군 109개 대대를 전쟁 전에 훈련시켰고, 전투에서는 이들을 직접 이끌면서 승리를 이뤄냈다. 그야말로 화려한 재등장이었다.

이후 그린베레는 보스니아 내전, 아이티 내전 등에 투입되어 1990년대에는 주로 안정화 작전이나 자국민 피난 작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어 9.11 테러가 터지자 그린베레는 제일 먼저 전투에 나섰다. 미군 중부사령부조차 빈 라덴이 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작전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중동을 담당한 제5특전단은 테러 발생 직후에 이미 아프간 전쟁계획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하여 테러 발생 한 달 만인 2001년 10월 19일, 2개의 A팀이 아프간에 침투하면서 시작된 탈레반 정권 전복작전은 11월 12일 A팀이 이끄는 반군들이 수도 카불을 점령함으로써 정점을 찍었다. 반군과 함께 말을 타면서 스텔스 폭격기의 공격을 유도하는 그린베레의 모습은 새로운 전투의 아이콘이 되었다.

2003년 이라크에서는 더욱 큰 임무를 맡았다. 정규군이 투입되지 않은 서부 사막지역을 제5특전단이 담당하면서 스커드 발사를 막고 적군을 섬멸했다. 소위 킬체인(Kill Chain) 작전을 차량화한 특수부대가 수행한 것이다. 또한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과 연합해 이라크군을 압박하는 것도 그린베레의 몫이었다.

제10특전단은 페시메르가(Peshmerga)1) 반군과 합류해 이라크군 13개 사단 10만여 명의 병력과 싸웠다. 특히 이렇게 소수의 인원들이 전투를 수행하려면 항공력의 지원은 필수다. 소수정예의 특수부대와 항공전력의 결합으로 적의 전선을 뒤흔드는 전략적인 작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린베레가 입증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활약 중인 7개의 특전단

미군은 현재 모두 7개(현역 5개, 예비역 2개)의 특전단을 운용하고 있다. 제1특전단은 태평양 및 동남아시아 지역, 제3특전단은 아프리카 지역, 제5특전단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제7특전단은 중남미 지역, 제10특전단은 유럽지역을 담당하는 식이다. 각 특전단마다 담당 지역이 있어 해당 국가의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 A팀 내에 최소한 1명 이상은 반드시 존재한다.

현재 그린베레는 아프가니스탄 전선은 물론이고 이라크-시리아 전선에도 투입되어 알카에다나 다에시(ISIS)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이슬람 무장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지원작전에 나섰다. 물론 그린베레는 제1특전단이 한반도를 관할하고 있어 대한민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매년 한국군과 정기적인 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북한의 핵 위기 고조 이후에 미군 특수전 부대들이 한반도에 순환배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1특전단의 전개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주석

1) 이라크 소수민족 지역인 쿠르디스탄의 민병대

양욱 | 군사전문가
양욱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뒤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컨설팅과 교육, 훈련을 제공하는 민간군사서비스{Private Military Service} 기업인 인텔엣지(주)의 대표이사이다. 또한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선임연구위원이자 공군 정책자문위원, 해군 발전자문위원으로 우리 국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