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과의 전쟁

독일은 얼마나 빨리 소련의 기를 꺾어버리느냐에 독소전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보았다. 현실적으로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초전에 소련의 저항 의지를 신속히 무너뜨려 항복을 받아내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1년 전의 프랑스가 바로 그렇게 무너졌다. 프랑스는 단지 국토의 15퍼센트만 점령당하고 150만의 대군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7주 만에 항복하였었다.

독일은 우선 진출 목표인 A-A선까지만 이르면 소련이 항복할 것으로 보았다. 비록 이 선은 지리적으로 소련 국토의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인구와 경제력의 70퍼센트 정도가 몰려 있는 곳이라 독일의 생각이 결코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바로사 계획은 예정 진출선까지 신속히 진출함과 동시에 초반에 소련군 주력을 섬멸하면 충분히 완수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 위해 독일은 침공군을 거대한 3개 병단으로 나누어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지금까지 독일은 주공이 정해지면 여타 병단이 조공이나 견제의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소련 침공전에서는 모두가 주공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련이 단지 한 곳의 돌파구만 열어서는 점령을 할 수 없는 거대한 나라라는 뜻이고, 역설적으로 독일의 배후에는 적절한 예비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이때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기로 예정되었던 병단은 레프(Wilhelm Ritter von Leeb) 원수가 지휘하는 북부집단군(Heeresgruppe Nord)이었다. 예하 부대 중 창을 담당하는 제4기갑집단이 전선 가운데에 돌파구를 열고 진격하면 좌우에서 제18, 16군이 병행하여 돌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진격로를 제1항공군이 하늘에서 엄중히 호위할 예정이었고, 3개 집단군 중 유일하게 발트 해로 진입할 독일 해군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북극의 저승사자

북부집단군이 우선 목표인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려면 발트 해 지역을 거쳐 북진하여야 하는데, 진격 거리로만 따지면 우측의 중부집단군보다 멀었다. 전면의 관할 섹터가 작지만 문제는 진격할수록 우측 면에 노출되는 부위가 커진다는 점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빨리 내달려 측면으로 등장할지 모를 소련군이 레닌그라드 방어에만 몰려들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력과 예비대가 부족한 것은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북부집단군에게 함께 보조를 맞춰 소련군을 압박해 줄 강력한 동맹국이 등장하였다. 바로 북극의 저승사자인 핀란드였다. 독소전쟁 당시에 항상 병력이 부족하였던 독일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추축국에 가담한 여러 중소국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는데 핀란드는 그중에서도 가장 전투력이 강한 나라였다. 하지만 핀란드가 추축국에 가담한 것은 독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소련이 미워서였다.

핀란드에게 소련은 영토의 10퍼센트를 빼앗아 간 원수였다. 1939년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4개월간 이어진 이른바 겨울전쟁(Winter War)의 결과였는데, 재미있게도 당시의 물리적인 피해 규모는 승리한 소련 쪽이 훨씬 컸다. 소련은 핀란드 성인 남성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병력을 동원하였음에도 핀란드의 유격전술에 말려 핀란드군의 5배가 넘는 처참한 피해를 당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독소전쟁을 고려하던 히틀러에게 두 가지 큰 영향을 주었다. 먼저 소련군을 규모만 큰 허약한 군대로 얕보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전투에 능한 핀란드를 독일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독일과 핀란드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약 40여만의 핀란드군이 소련 침공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를 독소전쟁과 분리하여 계속전쟁(Continuation War)이라고도 한다.


소련의 대응

독일 북부집단군을 맞상대할 소련군은 34개 사단으로 구성된 북서전선군(Northwestern Front)이었다. 이들은 원래 소련의 후방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사이를 담당하던 2선 급 부대였는데, 1년 전 발트 3국을 기습 점령하면서 서쪽으로 전진 배치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남쪽으로 독일의 동프로이센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타 전선군에 비해 규모가 작아 그다지 전투력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배치를 한 이유는 우선 접촉 면적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발트 해 연안에서 레닌그라드에 이르는 소련 레닌그라드 주(Leningrad Oblast) 일대는 페이푸스(Peipus) 호를 비롯한 많은 장애물로 인하여, 독소전쟁의 여타 전선처럼 대규모 부대가 엉켜서 싸우기가 구조적으로 곤란한 지형이다. 결론적으로 이 일대는 독소전쟁 내내 치열하였지만 겉으로는 가장 정적인 전선이 되었다. 사실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3년 가까이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독일군과 소련군 모두 여타 전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뒤에 북부전선군(North Front)이 레닌그라드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지역 내의 전체적인 전력은 소련이 우세해 보였지만 이들의 위치도 애매모호하였다. 핀란드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소련이 핀란드의 추축국 가담을 눈치챘다는 증거는 없지만 설령 독일과 핀란드가 한 배를 타지 않았더라도 미리 대비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현재 최전선이 되어 버린 발트 3국의 민심이 반소적이라는 점도 부담이었다. 강제로 점령하여 합병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이들이 소련 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만일 독일이 이곳으로 진격하여 온다면 소련군의 입장에서는 적진 한가운데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해당 지역에서 징집한 병력을 북서전선군에 배치하였지만 소수였고 이들이 소련을 위해 열심히 싸워 줄지도 미지수였다.

 

쾌속의 진격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은 남북으로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전 전선에서 소련군을 몰아붙이기 시작하였다. 맹렬한 폭격과 포격 직후 전차들이 쇄도하여 들어갔다. 소련 병사들이 정신을 차려 앞을 보면 이미 독일군은 자신들을 지나쳐 등 뒤에 있었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저항하다 산화하거나 얌전히 항복하는 것밖에 없었다. 소련의 공군도 1,200여 기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미처 날아 보지도 못하고 개전 첫날 지상에서 격파당하며 참사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불과 35살에 소련 해군 총사령관에 오른 쿠즈네초프(Nikolay G. Kuznetsov)가 개전 전날 전선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하여 내린 비상 경계령 덕분에 해군만이 간신히 참사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린 소련 해군의 전력도 전선의 상황을 호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엔 미약한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독소전쟁 개전 첫날의 모습을 요약하자면 독일의 완벽한 대승이라 할 수 있었다.

독일 북부집단군도 1차 목표인 레닌그라드로 향하여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선봉은 동프로이센 일대에 시동을 켜놓고 대기하던 제4기갑집단 소속의 전차들이었다. 3일 후인 6월 25일, 핀란드군이 북극의 초입인 페차모(Petsamo)에서 남쪽의 비푸리(Viipuri)에 이르는 1,000킬로미터의 국경 전역에서 진격을 시작하였다. 덕분에 여차하면 남서쪽으로 전개할 수도 있었던 소련 북부전선군이 이곳에만 집중을 해야 했다.

소련 북서전선군은 호수, 강, 저지대 습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지연전을 펼쳤다. 라세이니(Raseiniai)에서 한 대의 KV-2 전차가 독일 제6기갑사단의 진격을 하루 동안 막아내는 놀라운 선전을 펼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역부족이었다. 7월 7일이 되었을 때 독일군 선두 부대가 소련군 12개 사단을 격파하고 500여 킬로미터를 진격하여 페이푸스 호 남단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제 레닌그라드까지는 200여 킬로미터가 남게 됐다. 하지만 바로 이때 문제가 벌어졌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