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이나 치안 때문에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무기는 살상의 도구여서 위험한 물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상당히 멋진 물건이기도 하다. 물론 멋이라는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느끼는 감정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기로부터 멋을 느낀다. 그래서 공개 행사 등을 통해 대중에게 선보인 무기들은 좋은 구경 거리가 되기도 한다. 무기를 소재로 한 완구나 프라 모델이 많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무기에게서 멋을 느끼는 이유는 고유의 위력보다 겉으로 드러난 인상적인 외형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울퉁불퉁한 근육질에서 풍겨 나오는 야성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날렵하고 밋밋한 최신 이지스 구축함보다 거함거포시대의 대표주자인 전함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반대로 미사일이나 스텔스 폭격기처럼 매끈한 최첨단의 외형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뿐이지 결론적으로 울퉁불퉁, 날렵함 모두가 무기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무기를 통해 느끼는 일반적인 멋과 달리 어처구니없게도 귀엽다고 느껴지는 무기가 있다. 무기와 귀여움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이 무기의 첫 인상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이다. 바로 Sd.Kfz 2 Kettenkrad HK101(이하 케텐크라트)이다.

특징적인 모습

전륜이 바퀴, 후륜이 트랙 구조로 이루어진 케텐크라트는 제2차 대전 당시 많이 사용된 하프트랙(Half Track) 차량과 작동 방식이 같아서 작은 하프트랙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트럭이 아니라 오토바이다. 케텐크라트라는 단어 자체가 트랙(Ketten)과 오토바이(Krad)의 합성어다. 오늘날 보기 힘든 이러한 특이한 구조를 띄게 된 이유는 야전에서의 운송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흔히 캐터필러(Caterpillar)라고 부르는 트랙은 접지면적이 넓어서 포장이 안 된 험지에서 이동하는데 바퀴보다 효율적이다. 그래서 무기뿐 아니라 거친 환경에서 사용하는 건설용 장비들이 많이 채용하는 주행 방식이다. 이름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케텐크라트는 처음부터 험지에서의 운용을 목적으로 개발된 다목적 군용 오토바이로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운용하였다.

전쟁의 규모가 엄청났던 제2차 대전 당시에 수많은 무기들이 등장했지만 이처럼 어느 일방만 애용했던 무기도 그다지 흔하지 않다. 예를 들어 같은 구조인 하프트랙은 독일의 Sd.Kfz. 251, 미국의 M3처럼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트랙이 달린 군용 오토바이로는 케텐크라트가 유일무이하다. 독일이 이처럼 특이한 오토바이를 만들게 된 이유는 공수부대, 즉 팔슈름예거(Fallschirmjäger)와 관련이 많다.

공수부대를 위해 탄생하다

제2차 대전 발발 전 소련군 공수부대의 대규모 낙하 시범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독일은 1936년 팔슈름예거를 창설하였다. 하지만 이제 막 첫 걸음을 디딘 독일은 정작 공수부대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막연한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는 하늘을 통해서 적진 배후나 원거리에 병력을 전개하여도 무장 수준이 빈약한 경보병부대가 과연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주력군이 합류하기 전까지 충분히 버텨주어야 하는데 엄청난 훈련과 군기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소구경이라도 야포 같은 일정 수준의 중화기를 함께 투입하여 전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보았지만 한정 된 인원으로 수시로 거점을 옮기면서 작전을 펼쳐야 하는 팔슈름예거에게 아무리 작더라도 인력으로 이동하기에 무거운 중화기들은 기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화기 견인은 물론 다양한 물자를 편리하게 운반할 수 있는 소형 운송수단의 도입이 결정되었다. 1939년 군 당국은 관련 업체에 병력과 함께 공수할 수 있도록 Ju 52 수송기에 충분히 적재할 수 있는 크기, 1톤 정도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는 능력, 험준한 지역을 달릴 수 있는 기동력, 공차로 시속 60㎞ 이상이 가능한 주행 능력 그리고 초보자도 쉽게 조작이 가능한 신개념의 운송 수단의 개발을 의뢰하였다.

어긋난 인연

이에 지금도 세계 유수의 오토바이 제작사인 NSU Werke AG의 엔지니어인 프락슬(Ewald Praxl)과 슈미트(Ernst Schmidt)는 오토바이의 구동륜을 궤도화하면 험로나 산악 지대의 좁은 길에서도 수월하게 이동이 가능한 경량의 운송 수단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해서 케텐크라트가 탄생하였고 동체 양측에 트랙을 갖춘 구조여서 오히려 오토바이보다 조종이 쉽고 안정성이 높았다.

오펠올림피아(Opel Olympia)에서 만든 36마력의 강력한 1478cc 4기통 엔진을 장착한 케텐크라트는 평지에서 시속 70㎞ 이상의, 오토바이 못지않은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운전수 외에 후방에 2명의 인원이나 화물을 탑재하고도 트레일러에 적재되거나 바퀴가 달린 3톤 정도의 화물도 견인할 수 있었다. 또한 등판각도가 24도에 이르러 어지간한 언덕길도 무난하게 치고 올라갔다.

이처럼 각종 실험에서 예상을 웃도는 결과를 보이자 군 당국은 즉시 대량 생산을 명하였다. 하지만 정작 공수작전에는 사용되지 못하였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1941년 5월에 있었던 크레타 전투에서 팔슈름예거가 엄청난 피해를 입자 히틀러가 이후 대규모 공수작전을 금지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팔슈름예거가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만 이 전투가 끝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일선에 배치되었기에 인연은 정작 많지 않다.

진정한 무대

그러나 이 깜찍한 무기가 명성이 널리 퍼지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하여 쾌속의 진군을 계속하던 독일은 그해 9월 가을 우기가 시작되며 온천지가 거대한 진흙지대로 바뀌자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진격은 고사하고 보급로가 단절 된 일선 부대에게 보급품을 가져다 주는 것도 어려웠다. 특히 본진과 떨어진 소부대의 고통은 극심하였다.

바로 이때 보급품을 실은 케텐크라트가 거대한 진흙 구덩이를 헤치며 다가왔다. 사실 케텐크라트라고 해서 이런 험로에서의 주행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독일이 보유한 운송 수단 중 이처럼 험한 곳을 구석구석 찾아 다닐 수 있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크기가 작아서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화물의 양은 적었지만 진짜 어려울 때 제 몫을 단단히 하여 주었던 것이다.

동부전선은 케텐크라트에게 최적화 된 무대였지만 북아프리카의 사막이나 서부 유럽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였고 통신선 가설이나 이착륙 직전 직후 전투기의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비행장에서 군용기를 견인하는 임무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종전 직전까지 총 8,000여대 이상이 생산된 케텐크라트는 그야말로 독일군이 있는 곳이면 항상 함께 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매력적인 무기

이처럼 다양한 목적에 케텐크라트가 사용되면서 공급량이 딸리자 최초로 승용차에 디젤 엔진을 장착하는데 성공하였던 스토이어(Stoewer)에서도 면허 생산을 하였고 프랑스 차량 제작사인 SIMCA에서 일부 부품을 공급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프랑스가 독일의 점령국으로써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지만 무기사에 길이 남는 명품을 만드는데 본의 아니게 독일과 프랑스의 기업이 함께 하였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500㎞ 주행마다 윤활유를 공급하여야 할 만큼 소모품 소비량이 많았다. 또한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기갑 차량의 특징이기도 한 Schachtellaufwerk라 불린 오버랩 형식의 로드휠도 골칫거리였다. 차량의 하중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이물질이 끼기 쉽고 정비가 어려워 가동률을 떨어뜨렸다. 이후 케텐크라트가 민수용으로 사용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글 처음에 귀엽게 생긴 무기라고 했을 만큼 케텐크라트는 작고 인상적이다 보니 지금도 호사가들의 일급 수집품으로 대접을 받을 만큼 인기가 많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다양한 곳에서 임무를 바꾸어가며 역할을 다한 숨어있는 마당쇠 같았던 존재였다. 회사에서 잘생긴 직원이 동료와 관계가 좋고 일까지 잘한다면 당연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무기계에서 케텐크라트가 바로 그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원
전장 3,000㎜ / 전폭 1,000㎜ / 전고 1,200㎜ / 중량 1,560㎏ / 최고속도 시속 70㎞ / 주행거리 260㎞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