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0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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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제트전투기의 역사를 개척하다

Me 262 슈발베(Schwal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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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박물관에 소장 중인 Me 262A

1781년 증기기관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말보다 빠르고 멀리 갈 수 있는 육상 교통수단은 없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혁명과도 같은 발명품이었다. 이렇게 등장한 열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까지 몇 번의 커다란 변화 과정을 겪었다. 그 중 20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한 고속열차는 철도교통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한마디로 전혀 다른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접근성이 편리한 자동차가 대중화된 이후 열차는 수송 경쟁에서 서서히 밀렸지만 자동차로는 불가능한 고속의 운행이 가능해지면서 중거리 운송 분야에서 비행기와 서비스 경쟁을 벌일 정도로 위상이 바뀌었다. 철도교통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이처럼 인간사를 살펴보면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나 사물은 별도로 존재한다. 무기의 세계에도 위에 거론한 고속열차 같은 사례가 있다.

Me 262는 역사상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전투기다. <출처 (cc) Bundesarchiv>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는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문명의 이기지만 인간이 이를 싸움의 도구로 이용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무기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성능 전투기들이 하늘을 수놓으면서 하늘도 전쟁터로 바뀌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기의 역사에서 제트전투기는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Me 262 슈발베(Schwalbe)는 그런 새로운 시대를 개막한 기념비적 전투기다.


앙리 코안다가 제작한 실험기. 비록 비행에는 실패하였지만 이미 1910년에 제작되었을 만큼 제트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


Me 262가 연합군에게 처음 목격되었을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에 대해서 묘사한 자료가 많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프로펠러기가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제트기에 대한 감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제트엔진이 최첨단 기술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많고, 실제로 오늘날 군사적 혹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제트엔진을 생산하는 업체도 겨우 손꼽을 정도일 만큼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트엔진은 이미 비행기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구상되어 왔던 기술이다. 기원전에 증기를 발생시켜 얻는 추진력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방식을 연구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을 정도이니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개념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원리를 알고 있다 보니 당연히 많은 이들이 제트엔진의 개발에 매진했고 비행기를 개발하던 초창기부터 이를 비행기에 탑재할 동력원 중 하나로 구상하였다.

독일 하인켈사에서 제작한 He 178은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제트기다. 이런 결과물이 있었음에도 전쟁 초기 독일 군부는 제트전투기의 개발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출처 (cc) Bundesarchiv>

비록 실험이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코안다(Henri M. Coanda)가 제트기를 만들었던 때가 라이트 형제의 성공이 있은 지 불과 7년 후인 1910년이었으니 제트기도 비행기의 탄생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고 더 무거운 비행체를 날릴 수 있는 제트엔진을 이용한 전투기의 개발은 어쩌면 당연한 역사의 수순이었다. 독일은 이 분야를 선도한 국가 중 하나다.


제2차 대전 발발 바로 직전인 1939년 8월 27일, 독일은 실험기인 He 178의 비행에 성공하면서 인류 최초로 제트기 시대를 개막하였다. 그런데 정작 군부는 이런 성과가 있었음에도 제트전투기 개발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손쉽게 유럽을 석권하여 나가면서 필요성을 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국해협전투를 거치고 1941년이 되자 현재의 수준에서 만족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좌)우여곡절 끝에 Me 262의 심장으로 채택 된 Jumo 004 터보제트엔진. 전후 Me 262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Avia S-92라는 제식명으로 11기가 생산되었다. 사진은 여기에 장착된 Avia M-04 터보제트엔진으로 Jumo 004의 체코슬로바키아 제식명이다. <출처 (cc) Varga Attila at Wikimedia.org>
(우)Me 262의 조종석. 당시 활약한 여타 전투기들과 차이가 없다.

새롭게 요구된 신예 전투기


시간이 갈수록 일선에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신예 전투기를 요구하였는데, 핵심은 속도였다. 이른바 독파이팅(Dog fighting)으로 공대공 전투를 하다 보니 벌어진 당연한 결과였고 이는 BVR(가시권 밖 교전)이 본격 시작된 제3세대 전투기의 등장이전까지 지속된 트렌드이기도 했다. 이런 일선의 요구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험적으로 진행되던 제트전투기의 개발은 전쟁이라는 시공간을 통해 더욱 가속화되었다.


사실 군부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미래 전장의 주역은 제트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 독일의 군수업체들은 전쟁 전부터 자체적으로 제트전투기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고 메서슈미트(Messerschmitt)사도 그 중 하나였다. 1941년 4월 18일 시제 1호기인 Me 262 V1이 완성되어 첫 번째 비행에 성공했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미완의 성공이었다. 탑재하기로 예정하였던 BMW 003 터보제트엔진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어서 일단 기수에 융커스(Junkers)의 Jumo 210G 피스톤엔진을 장착한 프로펠러기로 기체 성능 실험을 하였던 것이고, 이는 이후 두고두고 엔진 때문에 애를 먹었던 Me 262의 감추고 싶은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이듬해 BMW 003이 완성되었지만 시험 비행 도중 작동이 정지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실망한 메서슈미트는 융커스가 한창 개발 중인 Jumo 004 터보제트엔진을 탑재하기로 결정하고 개발을 계속하였다.


주기장에서 정비 중인 Me 262 <출처 (cc) Bundesarchiv>

험난한 양산 과정


우여곡절 끝에 Me 262의 개발이 완료 된 시기는 1943년 11월로 이때는 독일이 쇠퇴기로 접어든 시점이었다. 당시 그 어떤 전투기도 흉내 낼 수 없던 시속 800km의 속도를 발휘하는 Me 262는 열세에 몰리던 독일 공군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다. 독일 공군의 에이스이자 전투기 감독관(General der Jagdflieger)이었던 갈란트(Adolf Galland)는 직접 Me 262를 몰아본 후 즉시 양산을 주장하였을 정도로 성능에 반하였다.


연일 본토를 공습하는 연합군 폭격기 저지에 애를 먹던 독일 공군은 압도적인 성능의 Me 262가 질로써 양적 열세를 만회하여 줄 회심의 무기가 될 것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히틀러가 Me 262를 폭격기로 생산할 것을 명령하여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는 전세가 몰리는 와중에도 공격만 생각하고 있을 만큼 이성을 잃고 있었다. 이제 막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던 와중에 벌어진 돌발 사건이었다.

넵튠레이더를 장착하여 야간 작전이 가능한 2인승 Me 262B

하지만 Me 262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던 공군은 비밀리에 전투기로 개발을 계속하였다. 이는 옳은 결정이었지만 히틀러를 격노시켰고 관련 담당자들이 해임되었다. 하지만 1944년 9월이 되었을 때 히틀러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전투기로써 양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때문에 흔히 Me 262의 실전 데뷔가 히틀러로 참견으로 인하여 늦어진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설령 폭격기로 개조해도 2발 정도의 범용폭탄을 장착하는 수준인데, 이는 Me 262의 도입을 지연시킬 정도의 커다란 문제는 아니었다. 진정한 난제는 처음부터 애를 먹였던 제트엔진이었다. 1944년 중반이 되어서도 크고 작은 트러블 해결에 계속 애를 먹었을 정도로 Jumo 004의 성능은 완벽하지 않았다. 연료 소모도 크고 고작 80시간 정도만 사용할 수 있는 짧은 엔진의 수명으로 말미암아 야전에서 전투기를 운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다.


(좌)P-51에 의해 격추되는 Me 262. 사실 서둘러 전선에 등장한 Me 262는 고질적인 엔진과 기체의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공대공 전투를 벌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 연합군 폭격기 요격에 투입되었다.
(우)미군에서 노획된 Me 262를 테스트하는 모습 <출처: 미 공군>

그럼에도 새로운 길을 열다


더불어 엔진도 문제지만 비행 능력도 속도만 제외한다면 최악이었다. 가속력이 낮아 이륙시 애를 먹었고 충분한 속도를 얻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다. 급격하게 선회하면 실속이 되어 추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베테랑들이나 제대로 조종할 수 있었고 이는 조종사 수급이 어려웠던 전쟁 말기 독일의 상황에서 상당히 곤란한 또 하나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성능 적 전투기와 격렬한 독파이팅을 벌이기는 어려웠다.


엄밀히 말해 전쟁 말기의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실전에 데뷔하기 어려웠을 만큼 Me 262는 완벽한 성능이 아니었다. 결국 유일한 장점을 살려 폭격기 같은 주요 목표물을 향해 최대한 빨리 날아가 벼락같이 공격을 가하고 전투 공역을 이탈하려 적 전투기의 추격을 따돌리는 전술을 사용하여야 했다. 사실 이런 방법 이외에 특별히 구사할 수 있는 작전도 없었다. 하지만 Me 262의 문제점을 몰랐던 연합군 조종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범접할 수 없는 속도로 눈앞을 지나가는 Me 262의 모습에 작전을 나간 폭격기 승무원들이나 호위 중이던 전투기 조종사들이 당장 대응할지 몰랐다. 또한 많은 연합군 폭격기들이 손쓸 틈도 없이 Me 262에게 희생되었고 당연히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모습은 모르고 생소해서 두려움이 컸던 것이지 Me 262가 압도적으로 강력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것이 Me 262가 올린 가장 커다란 전과라 할 수 있다.


Me 262가 문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커다란 한 획을 남긴 이유는 실전에 데뷔한 최초의 제트전투기이기 때문이다. 무기사만 놓고 본다면 더할 수 없는 영광스런 기록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성능을 발휘하는 영국의 글로스터 미티어(Gloster Meteor)나 미국의 P-80 등도 개발 중이었지만 전황이 우세하다 보니 실전 배치를 서두르지는 않았다. 어쩌면 Me 262는 너무나 급했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은 가운데 단지 먼저 모습을 드러낸 전투기였다.


V1, V2, Me 163처럼 전쟁 말기에 등장하거나 개발 중이던 독일의 혁신적인 무기들을 흔히 ‘나치의 비밀무기’라고 부르는데 Me 262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전후에 이어질 무기 역사를 선도하였다는 공통점이 있고 이는 종종 독일의 기술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미완의 상태로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이 절박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Me 262는 시대를 선도하였지만 그만큼 부족한 것도 많았던 무기다.


제원


전장 : 10.60m / 전폭 : 12.60m / 전고 : 3.50m / 최대이륙중량 : 7,130kg / 최고속도 : 시속 900km / 전투행동반경 : 1,050km / 상승한도 : 11,450m / 무장 : 30mm Mk 108 기관포 4문, 55mm R4M 로켓 24발, 250kg 폭탄 2발 (폭격기형)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2006년 베를린 에어쇼에 등장한 Me 262 복제품. 워낙 인기가 많고 역사적으로 의의가 크다보니 지금도 종종 복제 생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