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략 무기의 운용 능력까지 포함한 러시아 해군의 전력은 세계 2위 수준이다. 비록 전신인 제정 러시아 해군이나 소련 해군이 인상적인 전과를 거둔 적은 없었지만, 이런 평가에 대해서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강대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략 핵잠수함 세력도 그렇지만 키로프급 중순양함, 슬라바급 순양함, 우달로이급 구축함 등으로 이루어진 수상함 전력 또한 가히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이들 전투함들은 만일 일대일 전투가 벌어진다면 미 해군의 주력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공개된 스펙을 기준으로 한 추정이지만 현재 러시아 전투함의 공격력이 그만큼 강하기에 이런 예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엄밀히 말해 전투함 성능의 차이가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러시아의 전투함은 창처럼 공격에 특화된 반면, 미국의 전투함은 방패처럼 함대 방어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성격과 기능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는 해군력 구축에 워낙 많은 국력이 투입되다 보니 구조적으로 미 해군과 경쟁하기가 불가능 옛 소련 시절부터 이어온 고민이 담겨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 해군은 해당 목적에 특화된 별도의 함정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만 소련-러시아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미국의 함대를 일거에 공격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공격력을 갖춘 전투함을 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소련 해군의 최고 목표는 미국 함대의 노른자인 항공모함이었다.

먼 바다에서 함대간에 전투가 벌어진다면 항공력을 보유한 미국이 유리한 것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소련은 일단 미국의 항공모함을 제거해 놓아야 이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 만큼 미국의 항공모함 전력은 최우선 타도 목표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고 당연히 항공모함을 가지고 싶어 했다. 러시아 유일의 항공모함인 쿠즈네초프 제독(Admiral Kuznetsov 이하 쿠즈네초프)은 바로 그런 염원의 산물이다.

새로운 길을 도전하다

소련에서 전투 목적의 함재기를 함정에 탑재한 것은 1967년 12월 ‘프로젝트1123’으로 알려진 헬리콥터 탑재 순양함 모스크바가 취역하면서부터다. 소련의 군사력 수준을 고려할 때 상당히 늦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동안 일부러 도입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심 원하였지만 여러 여건상 힘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렇게 도입한 2척의 모스크바 급 순양함은 실험적인 성격이 컸고 이들을 운용하면서 항공모함에 관한 기초적인 노하우를 얻었다.

소련 해군이 본격적으로 고정익 항공기를 함에서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키예프 항공순양함의 등장 이후부터다. 4척이 건조된 배수량 42,000톤 규모의 키예프급은 30여기의 수직이착륙기와 헬리콥터를 탑재하고 앵글드데크1) 모양의 비행갑판을 갖추어 소련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취급 받는다.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항공모함이라기보다는 미사일로 중무장한 순양함에 함재기를 탑재한 형태여서 흔히 항공순양함으로 통칭된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함재기였던 Yak-38의 작전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련 스스로도 이들을 미사일순양함인지 항공모함인지 명확히 구분 짖지 못하고 운용하였을 정도였다. 결국 이들도 작전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쳐 20년도 안되어 퇴역이 결정되었고 소련이 무너지는 혼란한 시기에 모두 고철로 판매되었다. 이 중 1995년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가 팔려온 곳이 바로 우리나라여서 인연이 남다르다.

실패한 키예프급의 경험을 토대로 소련은 미국에 필적할만한 항공모함인 ‘프로젝트 1143.5’를 야심차게 추진하였다. 실패작인 Yak-38을 운용해 본 결과 항공모함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결국 탑재한 함재기가 고성능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미국의 F-14, F/A-18 같은 함재기를 운용할 정도는 되어야 항공모함이 제해권 장악은 물론 대지상 타격 작전을 펼치는 전략적 이동 해상기지로써의 기능을 발휘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결국 키예프 정도로는 힘들고 미국의 슈퍼캐리어에 견줄 수 있는 만재배수량 6만 톤, 갑판 길이가 300m 정도가 되어야 하며 그러한 항공모함을 최소 4척은 보유하여야 미 해군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1983년 이런 조건에 따라 설계를 마친 초도함이 우크라이나의 니콜라예프 조선소에서 건조에 들어갔고 선체의 골격이 형성 된 이듬해 첩보 위성에 찍히면서 서방에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어렵게 바다로 나가다

그런데 1980년대는 냉전의 끝물이던 시기였다. 지난 70여 년 간 유지되어 온 공산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말미암아 만신창이가 된 경제 상황에서 항공모함의 건조는 많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무한의 군비 경쟁을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갈수록 더해 갔다. 아무리 군부가 간절히 원하여도 이러한 급격한 환경 변화는 애초 계획된 4척은 커녕 단 한 척의 진수조차 장담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제일 먼저 건조에 들어간 초도함은 당시 직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이름을 따서 브레즈네프로 명명될 예정이었을 만큼 기대가 컸지만, 중간에 트빌리시로 이름이 바뀌어 1985년 12월 5일 겨우 진수되었다. 함재기로 채택 된 Su-33은 기동력과 전투 능력이 미국의 최신예기들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던 Su-27을 개량한 기종인데 300m에 이르는 거대한 갑판 덕분에 운용이 가능하였다.

그런데 함재기들이 미국의 항공모함처럼 어레스팅 기어2)와 어레스팅 후크3)를 이용하여 착함하였으나 이 함은 스키점프대 방식을 택하였다. 이는 소련의 사출기 관련 기술이 부족하였기에 선택한 고육책이었다. 덕분에 거대한 선체에도 불구하고 함재기의 운용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함을 위해 Su-33의 무장 능력과 작전 반경도 제한을 받았다. 이처럼 항공모함의 건조 및 운용에 필요한 기술을 만들고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쿠즈네초프의 등장을 어렵게 했던 점은 경제적 문제였다. 진수 직후에 소련의 경제난이 심각하여 취역이 무기한 보류되었고 1988년에는 인도와 매각협상을 벌일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자부심이 순식간 골치 아픈 애물단지로 전락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 1월 21일, 제2차대전 당시의 활약으로 전쟁 영웅 칭호까지 받았던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제독을 기려 또 다시 함명이 변경되어 마침내 해군에 인도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제대로 된 항공모함을 원하였던 소련은 그 해 12월 26일 해체되었다. 이때 해군 전력의 대부분을 러시아가 인수 받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여전히 나빠 수많은 함정들이 퇴역하거나 용도를 상실하였다. 하지만 이런 격변기에 쿠즈네초프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나름대로 최신함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쩌면 항공모함 보유에 대한 오랜 갈망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굴곡진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

쿠즈네초프는 이전의 키에프급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지만 이처럼 첫 걸음을 딛기까지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원래 함대를 이끌고 대양에서 미국 함대와 대적할 소련의 힘으로 제작되었지만 모항 인근의 북해 일대를 돌아다니며 간간한 훈련만 벌이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동시에 건조를 시작하여 70퍼센트 정도 공정이 진행된 상태에서 제작이 중단된 2번함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최초 바르야그로 명명되었던 자매함은 결국 고철로 1998년 3월 마카오의 한 회사에 팔렸다. 그런데 판매 과정 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소유권 분쟁을 벌였고 매각 성사 후에는 선체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는 것을 터키가 반대하는 등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1년 중국의 다롄에 입항하였다. 명목은 카지노와 호텔로 개조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지구상에서 이를 믿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2012년 9월 25일 후진타오를 비롯한 당시 중국 수뇌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의 취역식이 성대히 열렸다. 이처럼 바르야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새롭게 재 탄생하였다. 비록 대대적으로 개수가 이루어져 내부 무장이나 장치들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쿠즈네초프 급 항공모함은 러시아와 중국 해군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향도가 되었다.

취역 후 줄곧 북해 인근에서 간간히 모습을 보여주던 쿠즈네초프는 1995년 지중해에 전개되어 90일간 작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건조 직후부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1998년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오버홀에 들어갔지만 사실 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잠시 현역에서 물러난 상황이었다. 그러던 2000년대에 들어 경제 상황이 호전되자 2004년 현역에 복귀하였다.

자신감을 회복한 러시아는 쿠즈네초프의 운용 경험을 발판으로 대대적으로 항공모함 전력을 확충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주기적으로 지중해 일대에 전개하며 중동 지역에 강대국으로써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후 쿠즈네초프의 장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있었던 과거의 행적도 예상대로 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원

배수량 61,390톤(만재) / 길이 305m / 폭 72m / 속력 29노트(시속 54km) / 승조원 1,690명 / 함재기 Su-33, MiG-29K, Su-25UTG, KA-27LD/PL/PS 등 40기 / 무장 P-700 SSM, 3K95 SAM VLS 등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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