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 전사에 길이 남을 전격전으로 프랑스를 순식간 점령한 독일이 다음으로 손볼 상대는 영국이었다. 하지만 영국해협은 맑은 날 육안으로 영국 땅이 보일 정도로 좁았지만 독일에게는 쉽게 극복하지 못할 엄청난 장해물이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치열한 건함 경쟁을 통해 이룬 세계 2위의 해군력을 앞세워 당당히 도전하였지만 결국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경험을 가진 독일에게 영국 해군은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엄청난 장벽이었다.

하늘 길이 필요했던 독일

그나마 전력이 우세한 공군의 호위 하에 수송선단이 해협을 건너 병력을 보내는 것 이외에 독일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방법은 없었다. 그보다 독일의 능력으로 최소 100만 명 정도의 거대한 침공군을 동시에 상륙시키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사실 이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의 연합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순차적으로 상륙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관건은 전초부대가 영국 본토에 안전한 해안두보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의 육군은 무기를 내치고 프랑스에서 허겁지겁 도망간 상태여서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독일군 수뇌부는 설령 적진에 고립되어도 최대 하루 정도 작전을 펼칠 수 있는 1개 사단 규모의 전력을 신속 전개하여 해안두보를 확보하면 증원 부대들이 후속 상륙하여 돌파구를 신속히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문제는 은밀하고도 신속한 침투 방법인데 바다를 이용하기가 곤란하니 하늘을 통한 기습 침투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존에 보유한 수송기와 글라이더만으로 거대한 공수작전이 힘들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독일이 보유한 수송기나 글라이더들은 단지 경무장의 10명 내외 병력만 수송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10,000명 내외의 중무장 병력을 일거에 공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고심을 거듭한 독일 은 업체들에게 한번에 100여명의 병력 혹은 20여 톤의 화물을 공수할 수 있는 초대형 글라이더의 제작을 서둘러 의뢰하였다.

초대형 글라이더로 영국을 치려 했으나…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견본품들이 제작되어 제출되었는데, 전통의 명가인 융커스(Junkers)의 Ju 322와 메셔슈미트(Messerschmitt)의 Me 321이 최종 경쟁 후보로 제시되었다. 실험 끝에 독일 군부는 Me 321을 선택하였는데, 여담으로 비행 능력은 마무트(Mammut)라고 불린 Ju 322가 뛰어났지만 오늘날의 전익기같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 디자인이 오히려 거부감을 주었다고 전한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선택된 Me 321은 3기의 Me 110 전투기나 1기의 He 111Z 폭격기가 견인하여 하늘로 이륙한 후 적정 고도에서 견인줄을 분리하여 목적지까지 활공한 후 야지에 착지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1기의 Me 321에는 130여명의 중무장한 중대 규모의 병력이 탑승 할 수 있었다. 화물을 운송할 경우에는 약 22톤의 화물을 적재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독일군의 1, 2호 전차들도 너끈히 탑재가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는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주력 수송기였던 Ju 52의 수송 능력이 조종사 포함하여 최대 21명 또는 화물 2.6톤이었던 것에 비교한다면 거의 8배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매셔슈미트는 즉시 양산에 돌입하였는데, 정작 탄생 목적인 영국 침공에는 사용되지 못하였다. 1941년 5월 독일이 영국본토항공전에서의 피해에 놀라 손을 들고 영국 침공을 포기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이 영국 침공을 포기하였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진정한 제2차 대전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1941년 6월, 인류사 최대의 격전이었던 독소전쟁이 개시된 것이었고 그와 더불어 북아프리카까지 전쟁의 불티는 계속하여 번져나갔다. 뒤늦게 양산에 들어갔으나 정작 영국 본토 침공에는 사용되지 못한 Me 321이 동부전선에 첫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글라이더에서 동력기로 변신

그런데 무기로써의 글라이더는 보통 기습 침공 시 은밀히 적의 배후로 치고 들어가 서전을 장식하는 1회용 침투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동부전선은 그러한 성격의 전쟁터가 아니었다. 특히 1941년은 독일군이 두 번 다시 실현되기 어려울 만큼 전차를 앞세운 기동부대가 전격전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던 쾌속 진군의 시기여서 굳이 글라이더로 적의 배후로 침투할 필요조차 느끼지를 못하였다.

때문에 동부전선에서는 단지 보통의 수송기처럼 후방에서 최전방 아군 비행장에 화물을 수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문제는 Me 321이 자체 동력이 없는 글라이더라는 점이었다. 이륙에 많은 노고가 들었고 비행 거리나 조건도 제약이 많았고 더불어 지상에서 보관 시에 이동도 곤란하였다. 하지만 당대 최고라 할 수 있는 20여 톤의 화물을 공수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무시하기 힘든 매력이었다.

이때 독일의 기술진들은 Me 321을 대형수송기로 개조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본체는 비행이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좀 더 골격만 보강하여 엔진을 추가로 장착하면 쉽게 비행기로 개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매셔슈미트는 Me 321 주익에 점령지 프랑스에서 노획한 놈론(Gnome-Rhône) 14N 엔진 6개를 장착하여 시험 비행에 성공하였다.

비록 늘어난 중량 때문에 최대 적재량이 절반가량인 13톤으로 줄었지만 이 또한 다른 수송기와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수준이었고 최대 800km를 운항 할 수 있었다. 바로 제2차 대전 당시 실용화 된 최대의 수송기인 Me 323 기간트(Gigant)가 이렇게 탄생하였고 독일은 200여 기의 Me 321 글라이더를 Me 323으로 개조하여 일선에 투입하여 화급한 지역에 물자와 병력을 신속히 보내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굵고 짧았던 인생

특히 기간트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해군이 약세였던 추축국이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던 운송 수단이었다. 연합군이 장악한 지중해 상공을 날아 1943년 들어 보급에 곤란을 겪고 밀려나기 시작한 독일, 이탈리아군에게 Me 323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귀중한 최소한의 생명선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덩치가 큰 만큼 거인에게는 문제점도 많았는데, 속도가 느려 전투기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사실 이런 점은 오늘날의 최신 수송기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반드시 제공권이 장악되어야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충분한 호위기들이 함께 작전을 펼쳐야 하는데, 전쟁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독일에게 그런 여력이 부족하였다. 더구나 적이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위험 지역에서 둔중한 수송기가 비행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한마디로 기간트 승무원들은 목숨을 걸고 비행에 나선 것이었다.

결국 1944년 여름 이후에는 더 이상 하늘을 나는 거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Me 323은 비록 영국 침공이라는 단일 목적 때문에 제작되었고 또한 우연히 개조되어 탄생하였지만 그 위풍당당한 모습과 달리 흐지부지 그 종적을 감추고 사라진 창공의 거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용량의 공수 능력을 최초로 시현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오늘날 모든 대형수송기의 선도자로 무기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제원 (Me 323 D-6)

전장 28.2m / 전폭 55.2m / 전고 10.15m / 최대이륙중량 29,500kg / 최대속도 시속 285km / 항속거리 800km / 작전고도 4,0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