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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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소련 폭격기의 새 역사를 이끈 ‘슈퍼포트레스키’

투폴레프(Tupolev) Tu-4 전략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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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앙 공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Tu-4

싸움의 방법만 놓고 제2차 대전 당시의 유럽전역을 살펴보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장의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지만 사용하는 무기의 차이도 하나의 이유였다. 무기의 성능은 싸움의 방법과 규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예를 들어 상대보다 멀리 타격할 수 있는 대포를 가진 쪽이 좀 더 원활하게 작전을 펼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당시 가장 대표적인 차이를 보인 분야를 꼽는다면 바로 전략폭격이었다. 서부전선에서의 연합군은 장거리 대형폭격기로 후방의 전략 거점을 연일 맹폭하여 독일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었다. 물론 반대급부로 값비싼 폭격기와 귀중한 승무원들의 희생이 엄청났지만 밤낮 없이 이어진 연합군의 융단 폭격은 전략 시설의 파괴와 더불어 안전한 후방이라고 안심하고 있던 독일 국민의 사기를 꺾는데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동부전선에서 소련이나 독일 공군 모두는 오로지 제한적인 전술 작전만 펼칠 수 있었다. 양측 모두 폭격기는 있었지만 성능이 미흡하여 단지 전선 인근의 가까운 목표물만 공격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소련은 후방으로 이전하여 설치한 각종 공장에서 안전하게 전쟁 물자를 생산해 내었다. 하지만 전선에서 떨어진 독일군의 후방 거점을 공격할 수 없었던 것은 소련도 매한가지였다.


그런 소련에게 미국의 중폭격기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연일 일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B-29 슈퍼포트리스(Superfortress)에게 매료되었다. 너무나 탐낸 스탈린은 공여를 요청하였지만 B-29를 귀중한 일급 신무기로 취급하던 미국은 이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그러했던 소련은 종전 후 불과 2년이 지난 1947년에 마침내 B-29와 맞먹는 전략폭격기를 등장시킬 수 있었다. 바로 투폴레프(Tupolev) Tu-4 전략폭격기다.


자존심보다 먼저였던 실리

Tu-4 <출처 (cc) Maarten from Netherlands, Alan Wilson>
B-29. Tu-4와 색깔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형상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출처 (cc) Maarten from Netherlands, Alan Wilson>

웬만큼 군용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Tu-4를 보는 순간 당연히 B-29를 떠 올릴 것이다. 사실 국적을 표시하는 표식이 없다면 Tu-4와 B-29를 구별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두 폭격기의 모양은 상당히 똑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Tu-4가 B-29를 그대로 복제하였기 때문이다. 단지 겉모양만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 역설계를 통해서 모든 부분을 완벽할 만큼 그대로 재현하였다.


얼마만큼 베꼈는지 미국에서 B-29를 생산하는 도중 실수로 생긴 흠집이나 작전 중 피격 당한 작은 구멍까지도 그대로 재현하였을 정도라는 이야기까지 전한다. 이것이 단지 그럴듯한 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 여건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해프닝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대로 복사하여야 했을 만큼 노하우가 전무한 고성능 항공기라면 그런 흠집이 원제작자가 일부러 만든 것인지 아니면 실수나 운용 과정 중 발생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업용 제품이라면 법적 분쟁까지 갔을 만한 이야기지만 무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 이런 일을 비일비재하다.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받아 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무기를 모방하는 일은 상당히 흔하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겨야 하는 전시에는 특히 그러한데 경우에 따라 교전 상대방의 무기를 복제하는 경우도 많다. 적국의 무기를 카피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존심 문제지만 전쟁에서 이기려면 이런 체면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Tu-4가 B-29를 그대로 카피하였던 것은 당시 소련에게 B-29 정도 수준의 폭격기를 제작할 능력이 절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복사해서라도 가지고 싶어 했을 만큼 B-29에 대한 스탈린의 열망이 컸다. 앞서 언급한 흠집 재현도 그대로 복제해 내라는 스탈린의 엄명을 소련의 엔지니어들이 곧이곧대로 따라 벌어진 일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Tu-4 앞 부분 사진. B-29의 전체적인 형상 뿐 아니라 세부적인 부분도 충실하게 베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cc) Alex Beltyukov, Curimedia at Flickr.com>

B-29 앞부분 사진. <출처 (cc) Alex Beltyukov, Curimedia at Flickr.com>


얼떨결에 얻은 보물


사실 소련이 B-29를 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944년 일본 본토 폭격에 나선 B-29들 중 작전 중 고장이나 피격 등의 사고로 인하여 귀환하지 못하고 가까운 소련의 연해주로 날아가 비상 착륙한 사례가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그런데 소련은 종전 직전에 나포 된 4번 째 기체를 제외하고 미국의 반환 요청에도 불구하고 B-29를 압류하고 조종사만 제3국을 통해 풀어 주었다.


독일을 상대로는 미국과 소련이 같은 편이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1941년 체결된 중립조약을 근거로 소련은 중립을 고수하였던 것이다. 이를 근거로 소련은 연해주로 피신한 미국의 폭격기들을 무단으로 자국의 영공을 침입한 제3국의 군용기로 간주였던 것이다. 사실 이는 단지 핑계일 뿐이었다. 얼떨결에 보물을 얻은 스탈린은 대형기 제작에 나름대로 기술력을 보유한 투폴레프 설계국에게 이를 참고로 폭격기를 제작하라고 명하였다.

개발 당시 투폴레프 개발국의 엔지니어들로 추정되는 소련의 선전 사진. B-29같은 폭격기를 백지 상태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들은 2년 만에 복제에 성공하였다.


기존 소련의 폭격기와 질적으로 차이가 큰 B-29을 보고 기술력의 한계를 느낀 소련은 그대로 복제하기로 결심하였다. 비단 이는 B-29에만 국한 것이 아니라 Me 262를 카피한 Su-9, V-2을 그대로 흉내낸 R-1(NATO명 SS-1)의 예처럼 복제는 최대한 빨리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소련이 선택한 차선의 방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노력으로 소련은 냉전시기에 서방을 위협하는 최신 무기를 속속 선보일 수 있었다.


투폴레프는 종전 직전인 1945년 6월부터 B-29를 하나하나 분해하여 복제에 나섰는데 이때 인치법으로 설계 되었던 B-29는 미터법으로 역설계 될 수 있었다. 사실 항공기처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은 단지 겉모양만 흉내 낸다고 성능까지 완벽히 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체 재질처럼 단지 모양만 보고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이런 많은 난관을 돌파하고 1947년 5월 소련이 만든 시제기가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Tu-4를 제작하는 모습. 역설계하여 제작 중인 모습


짝퉁으로 시작한 역사


이렇게 탄생한 폭격기는 B-29와 비교하여 무게가 불과 1퍼센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자료마다 조금씩 상이하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B-29의 80퍼센트 정도의 성능을 발휘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정도면 당시의 전략폭격기 용도로 충분한 수준이었다. 각종 실험을 통과하여 제식명 Tu-4로 명명된 소련 최초의 전략폭격기는 곧바로 양산에 들어가 1949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Tu-4의 등장은 미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실 B-29를 능가하는 B-36 같은 차세대 폭격기의 개발이 완료단계여서 전력상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지만 같은 모양의 폭격기가 미국 본토 폭격에 나서면 어떻게 구분하여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국군의 주요 무기지만 밀반입하여 북한도 보유 중인 500MD 헬기가 실전에서 어떻게 위협을 줄지 우려하는 경우와 유사한 고민이라 할 수 있었다.

기지에 주기 중인 Tu-4의 모습. 전략폭격기에 대한 소련의 열망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냉전은 이제 막 배치되기 시작한 Tu-4를 곧바로 구시대의 무기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전쟁에서 B-29가 MiG-15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을 보자 비슷한 성능의 Tu-4를 뛰어 넘는 새로운 전략폭격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런 고민과 B-29 복제를 통해 얻은 기술을 발판으로 소련의 새로운 전략폭격기 개발에 착수하였고 그렇게 탄생한 걸작이 지금도 러시아의 주력 전략폭격기 중 하나로 활약 중인 투폴레프 Tu-95 전략폭격기다.


결국 Tu-4는 1952년 847기를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되었고 소련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이를 일부 공여 받은 중국에서는 1988년까지 운용하였다. 서방측에서는 식별 부호로 황소(Bull)이라는 NATO 식별코드를 부여하였지만 워낙 B-29 슈퍼포트리스의 복제품이다 보니 슈퍼포트레스키(Superfortresski)라는 별명으로 더욱 많이 불렸다. 어쩌면 소련 폭격기의 역사를 새롭게 이끈 역사적인 짝퉁이라는 의미가 담긴 가장 적절한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Tu-4 슈퍼포트레스키(?)의 비행 모습. ‘슈퍼포트레스키’는 B-29 슈퍼포트리스를 베껴서 만들었다고 붙인 별명이다.


제원


전장 30.179m / 전폭 43.047m / 전고 8.46m / 최대이륙중량 55,600kg / 최대속도 558 km/h / 항속거리 5,400km / 작전고도 11,200m / 무장 23mm NS-23 기관포 10문, 6,000kg 폭장, KS-1 스탠드오프 미사일 2발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