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무기의 발달 속도는 전쟁 기간 중에 가장 빠르다. 속전속결로 끝난 6일 전쟁 같은 경우라면 어렵지만 20세기 초에 연이어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처럼 규모도 크고 기간도 길다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좋은 성능의 무기를 개발하는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제2차 대전 종전과 동시에 시작 된 냉전은 무기사에 있어 상당히 특이한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음에도 다시 재현하기 힘들 만큼 무기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 초기에 눈부신 발전을 보여준 전투기 분야가 이에 가장 적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제2차 대전 중에 활약한 당대의 최신 전투기들이 종전 직후부터 등장한 제트전투기들에 밀려 순식간 구닥다리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등장한 새로운 전투기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대에 뒤지게 되었을 만큼 변화가 빨랐다.

제2차 대전 말기에 등장한 Me-262는 제트전투기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지만 그때까지 하늘의 주인공은 프로펠러 전투기였다. 하지만 5년 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는 Me-262를 훨씬 능가하는 뛰어난 제1세대 전투기들이 하늘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극적으로 등장한 F-86과 MiG-15는 무기사의 라이벌로 자리 잡았다. 결코 상대방에 뒤지지 않겠다는 미국과 소련의 노력 덕분에 나타난 결과였다.

이런 치열한 경쟁은 F-86과 MiG-15를 불과 5년도 되지 않아 주인공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1954년 사상 최초의 초음속전투기인 F-100을 본격 제식화하면서 제2세대 전투기 시대를 본격 개막시킨 미국은 확고하게 전투기 세계의 주도권을 가져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소련이 즉시 선보인 대항마 때문에 미국의 착각은 불과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바로 소련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인 MiG-19 파머(Farmer)다.

냉전시대의 경쟁

고성능 레이더와 장거리 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BVR(Beyond Visual Range, 가시권 밖)교전이 대세가 된 지금은 속도가 전투기 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최신 전투기가 낼 수 있는 속도가 이제는 보편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 중요성이 감소하였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속도가 전투기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첫 번째 기준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었다.

그래서 제트시대의 도래와 함께 시작 된 냉전은 더욱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전투기의 개발을 촉진시켰다. 요즘의 최신 전투기들은 적어도 20년 이상 주역으로 활약할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전투기가 수시로 등장하고는 했는데 핵심은 속도였다. 국내 항공기 제작사 간의 경쟁도 이런 변화를 이끌었지만 역시 가장 큰 동인(動因)은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체제 경쟁이었다.

제1세대 전투기 시대에서 비슷한 성과를 거의 동시에 달성한 미국과 소련은 곧바로 다음 단계인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MiG-15가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지만 사실 소련의 전투기 제작에 관한 전반적인 기술 수준은 미국에 뒤진 편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과 시도를 통해 다음 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선 미국과 달리 소련은 대성공한 MiG-15를 기반으로 한 후속기 제작에 나섰다.

그것은 미국의 도전에 소련이 시간을 단축하여 즉각적으로 응전하기 위한 차선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MiG-19는 MiG-15, 17을 이어온 원통형 동체와 후퇴익 주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1951년 소련 당국이 차세대 전투기 개발 명령을 내리자 이미 MiG-17을 개량한 형태의 I-340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던 OKB-155(미그 설계국)은 곧바로 시제기 개발에 착수하였다.

라이벌이 되지 못한 부족함

소련의 엔진 기술력이 부족하여 대추력(大推力)의 터보제트 엔진을 확보할 수 없었던 OKB-155는 AM-5 엔진을 쌍발로 탑재하고 주익을 MiG-15, 17보다 더욱 날렵한 58도 후퇴익으로 설계한 SM-2 실험기로 1953년 초음속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다. 소련 당국은 MiG-19라는 제식명을 부여하고 양산에 착수하였지만 미국을 의식하여 충분한 실험을 거치지 않고 배치를 서두르다 보니 초기 양산형은 꼬리날개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F-100에 맞서는 대항마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할 수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계속 개량에 나서야 했다. 결국 문제점을 개선한 MiG-19S가 개발되어 1955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선에 대량 배치되었다. 뒤이어 추력이 증가된 신형 RD-9 엔진을 탑재하여 상승력, 선회력을 향상시킨 MiG-19SF가 출현했다. 덕분에 소련도 미국과 비슷한 시기에 제2세대 전투기 시대를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를 동시에 개막한 F-100과 MiG-19가 이전 세대의 주인공이자 그들의 친형이라 할 수 있는 F-86과 MiG-15의 명성을 잇지는 못하였다. 두 기체 모두 초음속 돌파에만 신경을 써서 너무 날렵한 주익을 택하다 보니 비행 안정성이 나빴는데, 이점이 스스로 생애를 단축하는 족쇄가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도 전에 내부에서 F-105, MiG-21처럼 더 좋은 경쟁 기종이 등장하였다.

그래서 F-100과 MiG-19는 단지 초음속시대를 개막하였다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도 펼치지 못하였고 형들처럼 라이벌 관계도 형성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이처럼 단지 한 가지 장점만으로도 제식 전투기가 될 수 있었을 만큼 냉전 시기의 전투기 경쟁은 치열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몇 안 되는 장점만으로도 당당히 주력 전투기 될 수 있었다는 의미는 당시 기술력이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꽃피다

MiG-19는 악평 일색이던 F-100에 비해 그나마 기동성은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월남전, 중동전 이외에도 지구촌에서 발생한 국지적인 교전에 수시로 등장하였는데, 특히 저고도에서 선회 능력이 뛰어나 근거리에서 서로를 쫓는 독파이팅(Dog fighting)에 들어갈 경우 위치의 우세를 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교전수칙 때문에 제한을 많이 받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었지만 F-4 팬텀이 월남전에서 근접 공중전을 벌이다 종종 MiG-19에 격추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MiG-19는 등장 당시부터 하늘의 주역이 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았던 전투기였다. 후기형에서는 레이더를 탑재하고 공대공 미사일 장착하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MiG-17을 개량한 형태여서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는 어려웠다. 또한 엔진의 수명이 짧고 정비 요소가 많아 가동률이 좋지 못하였다. 소련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MiG-21, Su-9를 주력으로 삼으면서 곧바로 일선에서 퇴역시켰다.

그런데 이처럼 소련에서는 제대로 활약도 못해보고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지만 중국에서 MiG-19는 가히 국민전투기라는 소리를 부여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맹활약하였다. 소련은 1957년 생산을 종료하였지만 이듬해부터 중국은 J-6라는 이름으로 MiG-19를 복제 생산하였는데 F-6라는 수출명으로 14개국에 수출까지 하였다. 또한 저고도에서의 뛰어난 기동 능력을 살려서 대지공격기 Q-5(수출명 A-5)를 제작하여 제식화하였다.

그래서 5,800여기를 만든 중국이 2,000여기를 제작한 소련을 제치고 MiG-19의 최대 생산국이다. 이 정도의 생산량은 지금의 전투기 시장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상업적으로 대성공이라 할 만한 수준이지만 사실 1970년대 이전에 등장한 소련제 주력전투기 중에서 전작 MiG-15, 17 후속작인 MiG-21이 각각 10,000대 이상 생산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로 보기도 힘들다.

우리와의 인연

생산량이나 운용기간을 고려한다면 소련은 MiG-19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중소분쟁 후 소련으로부터 최신예기 도입 및 기술 습득이 어려웠던 중국이 어쩔 수 없이 카피하여 대량 생산에 나선 덕분에 이 정도의 생산량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현역으로 활동 중인 MiG-19는 중국산 J-6이고 그 동안 실전에서 보여준 전과 대부분도 이들이 기록하였다. 월남전에서 최초로 실전을 벌인 MiG-19도 J-6이었다.

인도-파키스탄 전쟁처럼 종종 J-6을 도입한 국가와 소련에서 만든 MiG-19, MiG-21을 도입한 국가 간에 종종 교전이 을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MiG-19는 중국으로 넘어가 빛을 발한 전투기라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대부분 현역에서 물러났다. 지난 2012년까지 생산을 계속한 Q-5가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제한적인 2선급 임무에 계속 투입 중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머지않은 시기에 퇴역이 예상된다.

우리에게 MiG-19는 상당히 인연이 많은 전투기다. 우선 북한이 130여기의 F-6와 A-5를 운용 중인 몇 안 되는 MiG-19 운용국이기 때문이다. 전력으로써의 비중이 미미하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엄연히 현역인 이상 우리 안보에 영향을 주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인연이 따로 있는데 MiG-19는 1980년대 이후에 있었던 중국군, 북한군 공군 조종사들이 자유를 찾아 귀순하였을 당시에 탔던 애기였기 때문이다.

1982년 중국군의 오영근(吳榮根)의 귀순을 시작으로 1983년 북한군의 이웅평, 1986년 중국군의 진보충(陳寶忠), 1996년 북한군의 이철수가 중국산 J-6를 몰고 귀순하였다. 이후 습득 기종들은 적 전술을 연구하고 훈련하는데 유효 적절히 사용하였고 현재는 박물관 등에 보관 중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특정한 무기와 우리가 맺었던 색다른 인연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원 (MiG-19S)

전장 : 12.54m / 전폭 : 9.0m / 전고 : 3.9m / 최대이륙중량 : 7,560kg / 최고속도 : 1,455km/h / 전투행동반경 : 1,390km / 상승한도 : 17,500m / 무장 : 30mm 기관포 3문, 1,000kg 각종 무장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