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11월 21일, 영국 해군의 병원선인 브리타닉(Britannic)은 수많은 부상병을 싣고 에게 해에 위치한 케오스섬 인근을 지나고 있었다. 오전 8시 12분, 갑자기 선수 우현에서 커다란 섬광과 함께 귀청을 찢는 폭발음이 들렸다. 배수량 48,158톤의 거대한 선박은 엄청나게 요동쳤고 여기에 탑승한 많은 이들은 충격으로 인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다.

독일의 공격에 의한 것이었지만 공격 수단이 어뢰인지 기뢰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갈린다. 어쨌든 불의의 일격을 당한 브리타닉은 선수 우현에 커다란 구멍이 발생하면서 급속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장은 인근 케오스 섬까지 항진한 후 배를 좌초시켜 침몰을 모면하려 했지만 결국 퇴선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환자와 의료인이 대부분이었던 승객들은 승조원들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탈출에 나섰다.

브리타닉은 사고 후 불과 55분 만에 침몰하였고 이 와중에 30명의 인명 손실이 발생하였지만 1,066명의 나머지 탑승객들은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이처럼 위기의 순간임에도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불과 4년 전에 있었던 사고의 뼈아픈 경험 때문이었다. 브리타닉보다 먼저 건조되었던 자매 여객선이 해난 사고로 침몰하면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크나큰 교훈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 배는 바로 타이타닉이다.

최대의 호화로움으로 대서양을 누빈 여객선

현재 대양 항로는 화물선 수송로로 주로 사용되지만 항공편이 발달하기 전인 20세기 중반까지는일반 여객들도 이 길을 통해 대륙을 오갔다. 특히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북대서양 항로는 명실상부한 황금 노선이어서 수많은 선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중 하나였던 영국의 화이트스타는 초호화 거대 여객선을 만들기로 하고 1908년부터 순차적으로 3척의 여객선 건조에 착수하였다.

제1번 여객선 이름인 올림픽(Olympic)의 이름을 따서 ‘올림픽급’ 여객선으로 불린 세 척의 선박은 하랜드-울프 조선소에서 제작되었다. 같은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동급 선박은 초도 선명을 따서 ‘OOO급’이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인데 이는 일반 선박은 물론이고 군함도 그러하다. 예를 들면 한국 해군이 보유한 3척의 이지스함을 첫 번째 건조된 DDG-991 세종대왕함의 이름을 따서 ‘세종대왕급 구축함’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올림픽급 선박은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경쟁자보다 크고 빠르며 호화롭고 안전한 최고의 여객선’으로 차별성을 추구했다. 사치스럽다고 할 정도의 최고급 내부 시설을 갖추었고, 모두 16개로 나뉜 선체의 방수 구역 중 4개 구역이 연이어 침수되어도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취역 이전부터 결코 침몰하지 않는 배로 소문이 자자했다.

올림픽은 수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1911년 6월 14일 사우스햄프턴을 떠나 뉴욕까지 초도 항해에 무난히 성공했다. 하지만 5번째 항해에 나선 9월 20일 영국 해군의 순양함 호크와 충돌하여 선수 우현에 손상이 발생하였다. 흘수선 위쪽이라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였지만 대대적인 수리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었다. 어쩌면 이는 올림픽급 여객선들이 연이어 사고를 당하게 되는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아픔에서 얻은 교훈

6주 간의 수리를 거쳐 11월 29일 올림픽은 다시 운항을 재개하였고 이듬해에는 두 번째 여객선이 완공되었다. 화이트스타는 이들 자매함을 교대로 운항하여 대서양 항로의 패권을 잡고자 했고 마침내 1912년 4월 10일 올림픽급의 2호선이 뉴욕을 향해 처녀 출항에 나섰다. 하지만 불과 5일 후 탑승한 인원의 70퍼센트인 1,514명이 사망하는 침몰 참사가 벌어졌다. 이 여객선이 바로 타이타닉(Titanic)이다.

빙산과 부딪히면서 타이타닉 선수 우현 아래 90여 미터가 찢겨져 나가면서 비극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설계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상정한 4개 구역을 넘는 5개 구역에 균열이 발생하였는데, 이 한 개의 차이는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선수 5개 구역이 침수되자 균형이 급속히 허물어지면서 침몰이 가속됐다.

하지만 엄청난 비극을 부른 것은 운행사의 만용 탓이 컸다. 원래 36척을 탑재할 예정이던 구명정은 36척을 모두 구비해도 정원을 다 태울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이마저도 미관에 방해가 된다며 20척만 비치하였고 유사 시 바다 위에 투하하기도 어렵게 결박하였던 것이다. 타이타닉은 2시간 만에 침몰하였는데, 이는 만일 충분한 구명정이 있었고 신속히 결박을 풀어 탈출할 수 있었다면 대다수가 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국 이러한 여러 이유가 겹치면서 타이타닉의 비극은 민간 사고 중 최악의 해난 사고로 기록되었다.

이 사고로 인해 올림픽의 운항과 한창 진행 중인 3번 여객선의 건조가 중단되었고 타이타닉의 사고 원인이 밝혀지자 대대적인 개조에 착수하였다. 단일선각이었던 측면이 2중으로 보강되었고 한 구역이 완전 침수되더라도 다음 구역으로 물이 넘어가지 않는 완전 수밀 방식으로 구획을 보강하였다. 더불어 유사시 모든 인원이 탑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구명정을 구비하고 신속히 투입할 수 있는 설비도 갖추었다.

본받아야 할 사례

이때 원래 자이갠틱(gigantic=거대한)으로 예정된 3번 선명이 타이타닉(titanic=아주 거대한)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브리타닉으로 바뀌었고, 제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취역하게 된다. 터키의 갈리폴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연합군의 사상이 급격히 늘어나자 브리타닉은 곧바로 징발되어 병원선으로 용도 변경되었다. 이렇게 영국 해군 소속으로 전선에 뛰어든 브리타닉은 부상병을 싣고 지중해를 가로질러 본국으로 수송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브리타닉이 6번째 항해에 투입되었을 때, 처음 언급한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타이타닉이 손상을 입었던 곳과 같은 부위였다. 오히려 폭발물의 공격으로 파손 부위가 더욱 컸고 수밀 장치마저 파괴되어 침수 속도가 훨씬 빨랐다. 따라서 타이타닉보다 훨씬 빨리 최후를 맞았지만 신속하게 탈출이 이루어지면서 아픔은 재현되지 않았다.

선단을 이루어 항해하던 여러 함정의 즉각적인 도움이 있었고 더불어 저체온증에 의한 사상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20도가 넘는 수온 덕분에 바다에 뛰어들어 탈출한 많은 이들도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침몰이 빨랐고 승객 대부분이 부상병과 간호사 등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코 쉽지 않은 탈출이었다.

4년의 차이를 두고 두 자매함은 바다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곳에 상처를 입고 비참하게 수몰되는 최후를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너무나 상이한 결과를 보인 것은 결국 이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준비와 노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영국에게 타이타닉은 철저히 대비를 할 수 있게 만든 반면교사였기에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전투용 잠수함을 격침시킨 유일한 여객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타이타닉, 브리타닉과 달리 유일하게 남은 올림픽의 여생은 무난한 편이었다.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올림픽은 징발되어 4.7인치 포와 12파운더 포를 장착한 무장 수송선이 되었다. 특히 1917년 미국이 참전한 이후 대서양을 넘나들며 병력과 물자 수송에 공을 세웠는데, 수송선으로 보기 드물게 적함을 격침시키기도 하였다.

전쟁 말기였던 1918년 5월 12일, 미군 병력을 싣고 프랑스로 향하던 올림픽은 전방에 부상 중이었던 독일 해군의 잠수함 U-103을 발견했다. 즉각 장착된 함포로 사격을 가하였으나 모두 빗나가고 그 사이에 적함이 잠항을 시도하였다. 다급한 올림픽은 전속으로 항진하여 잠수함을 받아버리는 초 강수를 두었고 이 공격으로 U-103은 가라앉았다. 이는 아직까지도 여객선이 전투용 잠수함을 격침시킨 유일한 사례다.

종전 후 올림픽은 다시 초호화 여객선으로 탈바꿈하여 1935년까지 대양을 오갔고 이후 매각되어 해체되었다. 그 와중에 선박의 내부를 장식했던 호사스러운 장식물은 수집가들의 애장품으로 팔려갔고 현재도 일부 보존되고 있다. 올림픽은 엉뚱하게도 전쟁 중 놀라운 업적으로, 타이타닉은 비극적인 사고로, 브리타닉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은 반면교사로 역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겼다. 아마 이런 혹독한 생애를 기록한 자매함들은 다시 등장하기 힘들 것이다.

제원(병원선 당시 브리타닉 기준)

배수량 48,158톤(만재) / 길이 269.1m / 폭 28.7m / 속력 21노트 / 승조원 421명, 환자 300명, 의료인력 489명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