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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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한계선

마지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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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노선은 독불국경은 강력한 요새로 벨기에 쪽은 느슨한 참호 형태로 구축되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Maginot_Line_ln-en.PNG>

1939년 10월 6일, 코크 일대에서 간헐적 저항을 펼치던 폴란드군 잔존 부대가 항복하면서 독일의 침공전은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이제 세계는 독일의 다음 목표가 프랑스가 될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지난 제1차 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가혹한 멍에를 씌워 독일을 패전국의 나락으로 몰아넣는데 가장 앞장 선 프랑스에 대한 독일의 원한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독일의 폴란드 침공 직후인 1939년 9월에 프랑스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였으므로 이들은 이미 교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전을 최대한 삼가고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전쟁 당시 서부전선에서 겪었던 참혹한 경험 때문이었다. 양측 모두 1914년 기준으로 20~30세 사이 남성 중 무려 70퍼센트가 죽거나 다치는 악몽을 겪었다.

참호에 몸을 숨기고 전방을 관측하는 프랑스군 병사들의 모습. 이런 대치 끝에 승리한 프랑스는 방어가 최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Periscope_tranch%C3%A9e_fran%C3%A7aise.jpg>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워낙 비슷한 전력으로 팽팽히 맞서다 보니 벌어진 결과였다. 1940년 5월을 기준으로 상황은 그때와 비슷하였는데, 프랑스는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는 강력한 육군을 보유하였고 여기에 더해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영국이 힘을 보태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만큼 독일도 강했다. 이처럼 전면전 시 예상되는 엄청난 피해를 우려하여 정작 그들은 몸을 사리고 있었다.
1917년 이프르 전투 당시 직격 당하여 전사한 독일군 전사자들. 제1차 대전 서부전선에서 이런 참혹함은 일상처럼 반복되었고 이때 겪은 악몽은 전후 군사 전략을 수립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Battle_of_Messines_-_destroyed_German_trench.jpg>

독일 군부는 히틀러의 닦달에도 불구하고 9차례나 프랑스 침공을 이런 저런 이유로 기피하였다. 연합군도 먼저 공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래도 독일의 공세가 있다면 현 상태를 고수할 자신은 있었다. 이처럼 양측 모두 공격을 주저하였지만 연합군이 그나마 방어를 자신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독불국경을 따라 건설 된 마지노선(Maginot Line)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마지노선은 독일군이 대승을 거둔 이유가 되었다.


방어가 최고라는 믿음


제1차 대전, 특히 4년 간 쉼 없이 벌어진 지옥의 서부전선은 이후 군사 전략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14년 9월 마른에서 회심의 일격을 가한 프랑스의 반격으로 독일의 진격이 멈추었을 때만 해도 전선의 정체는 단지 일시적인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번 진격이 멈추자 그 자리에 참호가 파여지기 시작하였고 시일이 갈수록 더욱 깊고 단단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덧 양측 참호 사이는 끔찍한 살육의 장으로 바뀌었다.

거대한 방어막 건설을 주도한 국방장관 안드레 마지노. 그는 베르덩 전투에서 전투를 당하였던 관계로 참호전의 참상을 잘 알고 있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Andre_maginot_loc.jpg>

참호를 뛰어나와 앞으로 내달린 수많은 병사들이 난사하는 기관총탄과 포격에 사라져 가기를 반복하였다. 불과 몇 백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수년 동안 몇 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전쟁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렀다. 이를 극복하려 전차 같은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였지만 대세를 바꾸는데 소용이 없었고 그렇게 나폴레옹 전쟁 이후 계속되어온 공격 제일주의가 종언을 고하였다.


이제 프랑스의 군사 사상은 상대가 아무리 거세게 공격을 가해도 이를 막아낼 수 있으면 결국 승리한다는 방어 제일주의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전후 그들이 선택한 기본 국방 정책은 거대한 장벽으로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방어막을 더욱 깊게 파고 이를 더욱 단단히 하면 차후에도 승리를 얻게 된다고 맹신하였다.


이런 구상을 처음 제안한 인물은 프랑스군 총사령관이었던 조프르였고 페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하였다. 반면 장차전은 기갑부대와 공군이 주역이 될 것이므로 고착화 된 구조물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 이들도 있었는데 드골과 이후 수상이 되는 레이노가 그랬다. 하지만 끔찍한 경험을 겪었던 프랑스에서 이들의 의견은 소수로 취급되었고 국방장관 마지노(Andre Maginot)의 주도로 1927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다.


프랑스를 수호할 철벽


베르덩 전투 당시에 혈전의 무대였던 두오몽 요새처럼 국경 인근 주요 거점에 요새를 축성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었지만 마지노선은 차원이 달랐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은 도시처럼 외부와 단절되더라도 장기간 항전을 지속할 수 있는 거대한 요새를 주요 거점마다 만들고 이를 지하로 연결하는 것인데, 지형지물로 인해 일부 끊긴 부분도 있지만 스위스에서 북해까지 장장 750킬로미터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쇤넨부르크 요새의 각종 시설을 연결하던 지하 연결 통로와 전차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15-26-56-ouv-schoenenbourg.jpg>

엄청난 건설비 때문에 많은 부담이 가는 엄청난 역사였지만 지난 전쟁에서 한 세대가 사라지다시피 한 고통을 겪었던 프랑스에서 그다지 반대는 없었다. 나치의 등장과 더불어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건설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고, 1936년 프랑스와 독일이 직접 맞닿은 국경일대에 350킬로미터의 방어선이 먼저 완공이 되었다.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142개의 요새와 352개의 포대 그리고 5,000여 개가 넘는 벙커가 촘촘히 설치되었다.


암반을 뚫고 만들어진 요새는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병력들이 안전하도록 어지간한 포격이나 폭격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축성되었고 대구경 포를 비롯한 다양한 무기가 곳곳에 배치되었다. 마지노선 전방의 독일이 대규모 기동로로 이용할 수 있는 곳곳에는 대전차 장애물을 비롯한 각종 방어 시설을 설치하여 원거리에서부터 적을 순차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독일에게 이 곳으로의 진격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었다. 이후 사상 최대의 거포인 구스타프나 칼 자주 박격포 같은 괴물이 등장하게 된 이유도,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히틀러의 닦달에도 불구하고 독일 군부가 프랑스 침공전을 극도로 꺼렸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당연히 프랑스 국민들은 마지노선을 독일의 외침으로부터 안전하게 프랑스를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엄청난 반전


마지노선은 전투 공간뿐만 아니라 대규모 병력이 상주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완벽히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전력, 급수, 배수, 공조, 통신 및 요새 간 이동 시설은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되었다. 이를 위해 당시 화폐 기준으로 160억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되었는데 이 때문에 공군력을 비롯한 여타 전력의 확충에 실패하여 전쟁에 패하게 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원래 예정선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룩셈부르크에서 마지노선은 단절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에 같은 편이었던 프랑스와 벨기에 사이의 국경에 굳이 요새를 구축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비용이었다. 사실 당시는 정치적 혼란기에다가 대공황 여파로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축성에 내적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다. 결국 프랑스와 벨기에 사이는 진지 같은 비교적 단순한 방어선만 구축되었다.

(좌)공격을 방어해 내기 좋은 위치에 각종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Maginot3ix.jpg> (우)마지노선 북단이었던 로렌 지방에 위치한 로콘빌러한 요새의 제5블럭 벙커. 유사시 철문으로 봉인 된 전면의 포구를 통해 사격을 가할 수 있다.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GO_Rochonvillers_-_B5_-_2004-11-29.jpg>

그런데 마지노선에 의한 프랑스-독일 국경의 단절과 프랑스-벨기에 국경 사이의 공간은 전쟁이 재발된다면 독일이 진격할 루트가 이미 정하여져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제1차 대전 당시처럼 독불국경을 피해 북부의 벨기에를 통과하여 프랑스로 진격하여야 했다. 따라서 프랑스는 주력을 벨기에 앞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가 독일의 공격이 개시되면 벨기에로 진격하여 막아낼 전략을 수립하여 놓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독일은 1940년 5월 10일 전혀 예상도 못한 마지노선의 북쪽 끝인 아르덴 고원 지대로 대규모 기갑부대를 통과시켜 연합군 주력을 일거에 포위하는 엄청난 기동전을 선보였다. 100만의 연합군 주력이 꼼짝 없이 녹아 내릴 때, 포위망 밖의 마지노선에 주둔하던 80만의 프랑스 제2집단군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였다. 고정 된 진지다 보니 이곳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 쓰러져 가던 아군을 도울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는 단어의 상징


마지노선 정면에 위치한 독일 C집단군은 간헐적인 위협을 가하는 행동 이외에 계속 제자리에 머물고 있었기에 프랑스 제2집단군도 이를 의식하여 계속 그대로 있어야 했다. 약 한달 후인 1940년 6월 11일에 후방의 파리가 함락되던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앞 쪽의 독일 C집단군의 동태만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뒤에서 나타난 독일 A집단군에게 프랑스 제2집단군은 그저 그런 무의미한 저항을 해보다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좌)상하로 돌출과 회전이 가능한 포탑.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Metrich_B8_75.jpg> (우)포구에 장착된 81mm 박격포의 모습. 이처럼 병사들이 완벽하게 보호 된 상태로 전투를 치를 수 있다.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LigneMaginot81CasInt.jpg>
한마디로 악몽 같은 참호전이 재발되더라도 완벽하게 자국의 병사들을 보호 할 수 있다면 최종 승자가 된다는 고루한 교리에 집착하여 나타난 어이없는 결과였고 이 때문에 마지노선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마지노선 자체가 뚫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회피하여 승부수를 띄운 독일의 전략 때문에 순식간 무용지물이 되면서 이처럼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정작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좌)알사스 지방의 쇤넨부르크 요새 출입구. 대부분의 시설은 지하에 구축되어 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Maginot_line_1.jpg> (우)마지노선은 이제 폐기 시설로 남아 있거나 일부 관광 용도로 사용 중이다.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ort_de_Fermont_-_Ligne_Maginot_%C3%A1_Longuyon_%28F%29.JPG>
그런데 '오늘 국제유가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배럴당 OO달러를 넘어 섰습니다.', '여야는 올해 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원내 통과를 완료하기로 합의 하였습니다.'하는 예처럼 더 이상 양보하기 힘든, 또는 최후의 보루로 반드시 고수하여야 할 목표임을 의미하는 단어로 마지노선이 많이 쓰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마지노선의 황당한 역사를 반추한다면 이는 참으로 잘못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좌)전쟁 당시 마지노선 안에 있던 약 80만의 병사들은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 체 프랑스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다.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rench_soldiers_on_Maginot_Line.jpg> (우)일부 지역에서 간헐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무의미 했고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Bundesarchiv_Bild_121-0486,_Frankreich,_Maginotlinie.jpg>

실제로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적을 가장 앞에서 방어하는 최전선의 요새였다. 그러나 뚫릴 수 없다는, 또는 뚫려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되는 단어와는 달리 막상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너무나 허무하게 종말을 맞이하였다. 때문에 마지노선은 정작 필요할 때 자기 역할 못한 경우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