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이 전투기를 916기나 보유하였는데 작전 도중 모두 292기가 파괴되었고 그 와중에 115명의 귀중한 조종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30퍼센트가 넘는 엄청난 손실률인데 이 정도라면 대개 독일 공군이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던 제2차 대전 도중에 일어난 사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전 기록이 아니라 평시 운용도중 각종 사고로 추락하거나 파괴된 결과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마저도 평범한 사례에 속한다. 138기를 도입한 네덜란드가 43기를 잃었고 이웃한 벨기에도 113기를 운용하다가 41기가 각종 사고로 파괴되어 서독과 비슷한 손실률을 남겼다. 오히려 200기를 운용하다가 정확히 절반인 100기를 날려버린 캐나다에 비한다면 양호한 수준일 정도다. 사실 이 정도의 참담한 기록을 남긴 전투기라면 당장 사용 중지를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제작국인 미국도 연속 된 사고에 골머리를 앓다가 1960년대 초, 이미 도입한 200여기의 운용을 포기하고 주방위군으로 이전 배치하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1954년 실험기가 초도 비행에 성공한 이후 지난 2004년까지 이 전투기는 무려 50여 년 간 하늘을 날아다녔다. 더구나 총 2,578기라는 엄청난 물량이 생산되어 15개국에서 활약하여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결과다.

설령 전시라도 피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멍에로 남는 전과다. 그런데 교전도 치르지 않고 전투기가 각종 사고와 기체 결함으로 족족 곤두박질쳐서 가상 적들을 즐겁게 해주었다면 그야말로 대 망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베스트셀러였고 오랫동안 일선에서 사용되었다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바로 F-104 스타파이터(Star Fighter) 전투기가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의 주인공이다.

새로운 전투기에게 요구된 것

제2차 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쟁은 당연히 무기의 급격한 발전을 촉진시켰다. 전투기 분야도 마찬가지였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등장한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독일의 Me 262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투기가 진화하게 될지를 알려주는 시금석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처럼 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제트기가 계속하여 하늘의 제왕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속도에서 기존 프로펠러기는 제트기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이른바 독파이팅이라 부르는 근접 공중전으로 공대공 전투를 벌이던 당시에는 상대보다 빠른 속도가 승리를 담보하는 가장 큰 보증수표였다. 당연히 프로펠러기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은 제트기는 각광을 받았고 순식간 전투기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거대한 전쟁이 이제 막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무기의 개발은 더욱 촉진되어 곧바로 본격적인 제트 전투기 시대가 도래 하였다.

승전국인 미국은 이 분야를 선도하여 나갔다. 전쟁을 거치며 많은 기술을 축적한 수많은 군수 업체들이 앞 다투어 내놓은 최신 전투기들로 무장하여 계속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1950년 11월 한반도 하늘에 등장한 MiG-15는 미국의 자신감에 먹칠을 하였다. 경쟁 대상이었지만 은연 중 기술력을 무시하고 있던 소련이 만든 제트기의 성능이 상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한 F-86으로 MiG-15에 대항할 수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장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예상보다 소련의 기술력은 뛰어났고 이를 발판으로 더 좋은 전투기를 생산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조급해졌고 더 나은 신예기를 즉시 도입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개발을 의뢰하였다.

극단적인 선택

이때 록히드의 유명한 군용기 설계팀인 스컹크웍스를 이끌던 켈리 존슨이 한참 격전이 벌어지던 한국을 방문하여 조사에 착수하였다. MiG-15와 공중전을 벌인 조종사들을 직접 면담한 결과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전투기가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핵심은 빠른 속도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설령 다른 부분을 생략하더라도 가볍고 빠른 것이 최고라고 주장하였다. 즉, 여전히 속도가 공중전의 우세를 이끌 수 있던 시대였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여러 업체들이 다양한 신예기를 개발 중이었는데 최신 기술을 접목하다 보니 기체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그 만큼 제작비도 비싸지는 추세였다. 하지만 정작 여러 부가 장치나 미사일을 이용한 교전을 먼 훗날의 일로만 상상하던 일선의 조종사들은 이런 복잡함이 불필요하다고 느끼고 오로지 기본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록히드는 최대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경량의 전투기 제작에 돌입하였다.

록히드는 고속을 내기 위해 극단적으로 짧고 얇은 주익을 채택한 기체를 설계하였는데 팀 내부에서 조차 반발이 있었을 정도였다.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F-104가 과부제조기라는 악명을 얻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마치 엔진 앞에 조종석을 만들고 좌우에 작은 날개를 단 마치 로켓 형상이었는데, 비행 중 툭하면 실속에 빠져 회복 불능 상태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공군은 저렴한 가격에 고속 비행이 가능한 록히드의 경량 전투기 제안에 관심을 보였다. XF-104로 명명된 실험기는 일사천리로 개발에 들어가 1954년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최초 장착 된 J65엔진이 그리 좋은 성능이 아니었음에도 미사일 같은 형상의 기체 구조 덕분에 초음속 비행이 충분히 가능하였다. 이후 강력한 J79엔진을 장착하여 F-104는 세계 최초로 마하 2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전투기가 되었다.

상업적인 대성공

각종 실험 결과에 고무된 미 공군은 700여기를 획득할 계획을 세우고 1958년부터 도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작 운용에 들어가자 신기록을 수립한 속도와 상승력 외에 F-104가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항속 거리와 무장 능력이 형편없었고 툭하면 사고가 벌어졌다. 공군은 애초의 계획을 바꿔 200여기로 도입을 중단하고 리퍼블릭의 F-105를 주력기로 선택하였다.

사실 속도는 좋은 전투기가 되기 위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지 빠르다고 무조건 뛰어난 전투기가 될 수는 없다. 기동력, 선회력을 비롯한 여타 비행 능력도 당연히 좋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너무 간과 되었던 것이었다. 결국 기존 도입 물량은 고고도 상승 능력을 최대한 살려 본토 방공용 요격기 임무를 부여 받았지만 계속하여 안정성이 문제가 되자 얼마 가지 않아 주방위군으로 이전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하였지만 초라하게 막을 내릴 뻔 했던 F-104의 인생은 다른 곳에서 꽃을 피웠다. 미국도 그랬듯이 1960년대 초만 해도 많은 나라들 또한 고속 비행이 가능한 전투기를 최고로 생각하였다. 바로 그때 날렵한 모습에 마하 2의 속도를 내며 저렴하기까지 한 F-104는 많은 서방국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더구나 신예기 임에도 성능에 실망한 미국은 해외 판매에 제한을 두지도 않았다.

14개국에 약 2,300여기가 판매되었는데 이중 1,837기는 현지에서 면허 생산 되었다. 이는 미국이 야심만만하게 추진하였던 센추리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이었을 만큼 F-104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 네덜란드처럼 도입을 대가로 정치 뇌물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지 가격이 저렴하고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많이 팔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점보다 많았던 단점

대량 생산되고 여러 나라에서 사용한 만큼 F-104는 실전 기록도 많은 편이다. 월남전에서 미 공군의 F-104들이 총 5,206 소티의 작전을 벌여 14기를 작전 중 손실하였는데 그 중 4기가 비전투 손실이었다. 1965년 벌어졌던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 공군 소속의 F-104들이 공중전을 벌였고, 1967년 대만 해협 위기 당시에 대만 공군의 F-104가 중국의 MiG-19와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처음 언급한 것처럼 너무나 악명이 높았다. 미 공군에서 F-104는 가장 짧은 기간만 사용된 초음속 전투기라는 불명예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된 것은 일본의 록히드 사건처럼 냄새 나는 비리도 있지만 더불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저렴한 초음속 전투기라는 점은 가장 큰 매력이었는데 당시에는 충분히 어필할 만한 메리트였다.

거기에다가 최초로 20mm M61 발칸포를 탑재한 전투기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력이 강하였다. 폭장량이 작았지만 그렇다고 사용에 애를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최대 손실을 입었던 서독의 예를 들면 기체 결함도 있었지만 더불어 운용상의 문제도 컸다. 요격기 용도인 F-104를 대지상 작전 등에도 무리하게 투입하면서 사고가 많이 벌어진 것인데, 이것은 역으로 표현하면 F-104의 무장 능력이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핑계로 댈 수는 없다. 단 한 기의 손실도 없었던 스페인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일본 항공자위대의 17퍼센트의 손실률 조차도 대단히 양호한 수준이라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수치다. 개발국도 조기에 도태시켰을 만큼 문제가 많은 전투기가 대량으로 계속 만들어져 21세기 초반까지 일선에서 사용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F-104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원(F-111G 기준)
전장 16.66m / 전폭 6.362m / 전고 4.09m / 최대이륙중량 13,170kg / 최대속도 마하 2 / 항속거리 2,623km / 작전고도 15,000m / 무장 M61 발간포 1문, 5개 하드포인트에 6,400kg 무장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