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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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사연 많고 굴곡 많은 인생

B-1B 랜서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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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중인 B-1B 랜서 폭격기

지난 2005년 미 전략공군은 기존에 사용하던 B-52를 개량하여 2040년대 중반까지 계속 전력화할 것이라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것이 1952년이었으므로 탄생부터 따진다면 거의 100년이 가까이 활동하는 기록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는 군용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사용 환경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민간기에서도 보기 힘든 장수기록이다.

마지막 모델인 H형이 앞으로 계속 사용할 대상이지만 이 또한 지난 1963년 이전에 생산된 것이어서 이미 50년 넘게 날아다닌 노장들이다. 대개 개발 기간을 고려하여 신예기가 한참 활동하는 시기에 후속기 개발을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대체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B-52의 뒤를 이어 새로운 폭격기는 계속 등장하였다.

하지만 B-52가 이전에 활약하던 B-36을 일거에 대체하며 미 전략공군의 주력이 되었던 것과 달리 그 뒤에 등장한 폭격기들은 B-52의 후계자라기보다 임무를 나누어 맡는 동반자였을 뿐이었다. 물론 새로운 폭격기의 개발에 나섰을 당시에는 당연히 노후 된 B-52의 대체를 먼저 염두에 두었으므로 100년 가까이 활동하게 될 이런 경이로운 상황을 예상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치, 군사적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특히 한정 된 목적에 적합하도록 제작된 전략폭격기는 냉전 해체 같은 거대한 변화에 더욱 민감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B-52, B-2와 더불어 현재 미 전략공군의 삼대 축 중 하나를 담당하는 B-1B 랜서(Lancer)는 제작 단계부터 예상치 못한 외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사연 많은 폭격기라 할 수 있다.



제128폭격비행대 소속 B-1B의 편대 비행

최대 34톤의 각종 폭탄 및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내부 폭탄창의 모습

적진을 돌파하는 방법

앞서 언급한 것처럼 B-52가 이제 막 실전 배치되기 시작한 1950년대 말부터 후계기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트렌드는 속도였다. 제트시대가 본격 개시되면서 순식간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B-36을 B-52가 급속히 대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제트시대가 개막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초음속 시대가 열리면서 B-52도 과거의 유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 공군은 적기가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적진을 신속히 파고들어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적의 요격으로부터 안전한 고고도로 최대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XB-70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머지않아 이제는 속도가 느린 B-52도 물러나야 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1960년에 벌어진 U-2기 격추사건은 고고도 침투의 효용성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사실 레이더 포착이 쉬운 고고도 침투는 멀리서부터 적에게 나의 존재를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고속 비행도 적이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는 MiG-25 같은 요격기를 개발하면서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어차피 멀리 날아가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ICBM같은 미사일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였다. 결국 XB-70 프로젝트는 1972년에 이르러 완전히 취소되었다.



Mk82 스네이크아이 폭탄을 투하 중인 B-1B

하지만 미 공군의 폭격기에 대한 사랑까지 결코 바뀐 것은 아니었다. 고고도 고속 침투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자 반대로 적의 방공망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초저공으로 비행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어떠한 사유로도 전략폭격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였던 것이었다.


양산 전에 등장한 문제

사실 저고도 고속 폭격기의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XB-70의 구상 당시에도 있었다. 레이더를 피해 소련의 영공 깊숙이까지 침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동시에 연구되었던 것이었다. 1961년 고도에 따라 최적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주익을 가변형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고 야간에 저고도로 장거리를 비행하려면 그에 걸 맞는 항법 장치가 필요하다는 결론까지 이미 도출한 상태였다.

B-52를 대체하려던 XB-70의 폐기가 가시화되자 1969년 닉슨 행정부는 새로운 폭격기의 개발을 승인하였는데, 만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B-52가 이렇게 오래 사용될 줄 알았다면 아마도 다른 선택을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미 공군은 새롭게 제정된 미 군용기 제식번호 부여 방식에 따라 B-1로 명명된 새로운 폭격기의 개발 대상자로 1970년 록웰(Rockwell)을 선정하였다.


이륙하는 B-1B

당초 고고도에서 마하 2, 저고도에서 마하 1.2 정도의 비행 성능을 요구하였으나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여기에 더해 월남전에서 B-52가 전술폭격작전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던 점을 고려하여 전략폭격에만 특화 된 XB-70과 달리 다양한 작전에도 투입이 가능하여야 했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일사천리로 개발이 이루어져 1974년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B-52의 두 배 가까이 되는 폭장으로 더 빨리 비행할 수 있다는 점에 군부는 대체로 만족을 표하고 240기를 양산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바로 그때 B-1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76년 소련 공군의 벨렌코가 최신예 전투기인 MiG-25를 몰고 귀순하였는데 이를 조사한 미국은 여기에 장착된 룩다운/슛다운 레이더 때문에 저고도 비행도 결코 안전한 침투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우려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폐기 그리고 부활

이런 와중에 각종 미사일로 전략 타격은 충분히 가능하니 더 이상 운용에 제한이 많은 폭격기의 무용론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더해서 애초 4,000만 달러로 예정 된 도입가가 7,000만 달러까지 올라간 반면 제1차 오일쇼크 직후여서 경제 상황이 너무 나빴다. 결국 이런 환경 변화로 말미암아 1977년 6월 카터 행정부는 생산 계획을 전격 중단하였다. 이로써 B-1은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한 4기의 B-1A형으로 생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구식인 아날로그 방식 콕핏의 모습

하지만 이는 폭격기 무용론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B-1의 포기는 지금까지 폭격기를 개발하면서 겪었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폭격기의 탄생을 이끌었다. 1977년 카터 행정부는 B-1대신 ATB로 명명된 최신 폭격기의 개발 계획을 승인하였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걸작이 B-2 바로 스텔스 폭격기다. 대신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전력 공백은 일단 B-52의 성능을 개량하여 메우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이런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현재 미국의 전략공군은 B-52와 B-2로 구성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1981년 강력한 미국의 재건을 공약으로 집권한 레이건 행정부는 다시 한 번 B-1의 운명을 바꾸었다. B-2 개발과 별개로 당장 500여기가 넘는 B-52의 교체가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B-1의 생산 재개를 결정하였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B-1B다. 덕분에 이후 B-1은 B-52와 B-2 사이에 끼인 어정쩡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미 완성된 플랫폼이었기에 개발은 탄력을 더해 1984년에 초도 비행을 했으며 다음해 7월부터 미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장점에 더해서 공백 기간 동안의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성능이 향상 된 B-1B는 비행거리가 늘어났고 공중발사 순항미사일(ALCM)을 운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부분적인 스텔스 기능이 더해졌는데 RCS가 대략 B-52의 20퍼센트 정도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다.



1981년 시험 비행 중인 B-1A. 총 4기가 제작되었다.

그 속에 담긴 역사

B-1B는 최초 240기의 생산을 고려했으나 1985년 소련 고르바초프 정권의 등장으로 동서 간 긴장이 급격히 줄어들자 1988년 100기를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덕분에 B-2의 실전 배치 이전까지 수적 공백을 신속히 메우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었고 대신 또 다시 B-52의 수명 연장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 전략공군은 B-52, B-1, B-2를 함께 보유하여 운용하는 어정쩡한 모습이 되었다.


미 전략공군의 3총사인 B-52, B-1, B-2

B-1B는 1998년 ‘사막의 여우’작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실전에 투입되어 폭격작전을 수행하였는데, 특히 엄청난 폭장량을 바탕으로 하는 제압 폭격뿐만 아니라 공중발사 정밀유도무기의 사용에도 뛰어난 플랫폼임을 입증시켰다. 하지만 앞으로도 위상이 계속 같을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사실 이는 B-1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전략폭격기의 위상에 계속 의구심을 들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B-1은 개발부터 현재까지 상당히 굴곡이 많았던 일생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무기 자체보다 급격한 환경적 변수에 의해 변화가 많았는데 B-1이 원래 핵전쟁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전략무기였기에 그런 것이다. 만일 냉전의 골이 깊었다면 B-1의 생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처음 계획대로 순탄한 삶을 살아오지 못하였다는 것이 어쩌면 인류사에 긍정적 측면일지도 모른다.


고속 비행을 위해 주익을 뒤로 젖힌 모습

제원(B-1B)
전장 44.5m / 전폭 41.8m / 전고 10.4m / 최대이륙중량 216,400kg / 최대속도 마하 1.25 / 항속거리 12,000km / 작전고도 18,000m / 무장 외부 23,000kg 내부 34,000kg 폭장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