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성공적인 반자동소총이라 할 수 있는 M1 개런드(M1 Garand, 이하 M1)는 미국을 2차대전에서 승자가 되도록 만든 공신이었다. 전쟁 말기에 차원이 전혀 다른 StG44 같은 돌격소총을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전쟁 내내 독일군이 사용한 주력 소총은 볼트액션 방식의 Kar98k였다. 당연히 평균적인 개별 병사의 화력은 미군이 훨씬 우세했다. 하지만 이는 독일군과 비교하였을 때나 그러하였다.

적성국인 소련은 이미 다양한 종류의 반자동소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쟁 당시만 해도 나치라는 공적을 물리치기 위해 한배를 탔지만, 만일 앞으로 SKS같은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소련군과 교전을 벌인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전쟁말기 등장한 StG44는 장차전의 주역이 될 소총이 어떠하여야 할지 충분히 예고했다. 미군 당국은 1930년대 제작된 M1로 더 이상 질적 우세를 계속 담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당위성으로 말미암아 전후에 탄생한 소총이 바로 M14 전투소총(M14 Battle Rifle)이다. 신뢰성이 좋았던 M1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동소총이었는데, 미군의 주력 소총으로 제식화된 최초의 자동소총이기도 했다. 하지만 야심만만한 등장과 커다란 기대에도 불구하고 불과 10년도 안 되어 일선 제식화기에서 물러나야 했다. 차세대 소총의 자격으로 적합하지 않은 무겁고 반동이 심한 M1의 단점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총에 대한 생각

소부대간 교전 시에 M1918 BAR(이하 BAR)와 M1로 무장한 미군이 MG42와 Kar98k를 장비한 독일군과의 교전에서 그다지 밀리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자동소총, 즉 돌격소총으로만 무장한 소부대의 화력은 대단할 것이고 보급 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리라 예상되었다. 사실 그런 모습은 StG44를 사용한 독일군이 이미 보여주었다. 비록 적은 수량만 보급되어 전쟁의 양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StG44는 그야말로 경이적인 전투력을 선보였다.

이처럼 자동소총은 총기 개발자들이 오래 전부터 꿈꾸어온 물건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휴대하기 편리한 정확도가 높은 기관총의 개념인데, 막상 이를 구현하는 데는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다. 자동화된 총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휴대가 가능한 소총에 이를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반동과 더불어 발생하는 정확도 감소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힘들었고 그만큼 총이 커지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반동력이 작은 권총탄을 이용한 기관단총이 그 대안으로 일부 사용되었지만 오로지 근접전에서 연사만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사거리, 파괴력, 정확도는 철저히 희생되었다. 더불어 병사들의 기본 화기와 사용하는 탄이 이리저리 나뉘는 것은 보급이나 부대 유지상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새로운 소총은 BAR의 연사능력과 M1의 정확도를 함께 구비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역시 문제는 무게였다.

 

개발이 아닌 개량

자고로 총은 가벼울수록 좋지만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게 될 수밖에 없고 특히 연사가 가능한 자동화기일수록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미 BAR가 연사력과 파괴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10kg 가까이 나가는 무게는 주력 제식화기가 되기에는 결정적인 제약이었다. 이에 미군 당국은 그들이 워낙 신뢰하고 있는 M1을 완전 자동화한다면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미군은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 말, M1을 만든 개런드(John C. Garand)에게 M1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자동소총의 개발을 의뢰했다. 연구 끝에 개런드는 기존에 M1에 사용하던 7.62×63mm 스프링필드(Springfield)탄 대신 이를 조금 단축하여 장약량을 줄인 .308 윈체스터(.308 Winchester- 이후 7.62×51mm NATO탄의 기반이 된다)탄을 사용하여 반동을 줄였다. 이렇게 하여 1945년 기존 20발들이 BAR 탄창을 꽂을 수 있는 실험용 소총인 T20을 선보일 수 있었다.

T20은 사수의 선택에 따라 자동 혹은 반자동사격을 할 수 있었는데, 전반적인 모양은 M1과 상당히 흡사했다. 엄밀히 말해 M1 개량형, 혹은 확장 판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형태는 대대적인 개량이나 개선 없이 기존 M1에 탄환만 바뀐 것이어서 T20이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소총이 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이는 채용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력 화기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가 되었다.

M1의 장점인 강한 위력과 뛰어난 사거리는 그대로 살렸지만 조금 단축된 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자동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완벽하게 제어하기 힘들었다. 사실 .308 윈체스터탄도 자동소총에서 사용하기에 여전히 반동이 강한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연사 시 조준이 여전히 어려웠고 결국 총의 무게와 길이만 늘어난 형국이었다. 사실 M1도 동시대 여타 소총과 비교하여 크고 무거웠던 편이었다.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T20도 종전 후 불어 닥친 군비 감축의 여파로 1948년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양산에 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군부는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싶어하였지만 2차대전 동안 생산된 어마어마한 물량의 기존 소총과 탄이 재고로 쌓여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총과 이에 맞는 총탄을 생산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다가온 냉전과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직까지 M1은 쓸 만했지만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근거리에서 난사하는 PPSh-41에 곤혹을 치른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특히 중공군의 등장은 M1의 한계를 여실히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인해전술을 앞세워 공격해오는 엄청난 중공군을 저지하기에는 8발들이 클립으로 급탄을 하고 일일이 방아쇠를 당겨주어야 했던 M1은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다. 미군이 M1의 저지력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이때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재개한 자동소총 프로젝트에서 수많은 후보작이 경합을 벌였는데, 폐기되었던 T20을 새롭게 디자인 한 T44E4가 선정되어 1954년에 M14라는 이름을 부여 받고 제식 소총이 되었다. 경합 당시에 T48이라는 이름으로 출품된 벨기에 FN사의 FAL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외국산이어서 이를 채택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고, 기존에 M1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뢰감이 워낙 높아서 T44가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필연적인 퇴장, 계속되는 생명력

이처럼 폐기와 부활이라는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M14는 1959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가게 되었고 베트남전쟁에 미국이 전격 참전하면서 실전에 처음 투입되었다. 하지만 M14는 베트남의 밀림에서 AK-47로 무장한 월맹군과 교전을 벌일 때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일단 총이 커서 밀림 속에서 휴대와 사용이 불편했다. 태평양전쟁 당시에 해병대의 기본 화기가 휴대가 간편한 M1 카빈(Carbine)이었다는 점을 그새 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소총이 아니라 원론적으로 M1을 개량한 것이다 보니 M14는 고질적인 반동문제로 원성이 자자했고, 당연히 연사 시에 정확도가 떨어졌다. 이것은 AK-47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이런 고민을 안게 된 미군 당국에게 훨씬 작고 가벼우며 연사능력과 정확도가 뛰어난 M16의 등장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결국 M14는 150만 정만 생산되고 10년 만에 주력 소총의 지위에서 내려오는 수모를 겪었다.

M16은 5.56mm 탄을 사용하여 파괴력이 M14에 비해 뒤졌지만 실전에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7.62mm 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당국의 굳은 믿음과 이를 사용하는 소총이라는 이유 덕분에 M14는 완전히 도태되지 않고 저격수용으로 개량된 M21, M25 등으로 일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신형인 M14 EBR은 신소재를 채택하여 무게를 대폭 줄이고 다양한 레일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개량되어 지정사수용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흔히 총기를 분류할 때 7.62mm 탄을 사용하는 서방의 자동소총을 특별히 ‘전투소총’으로 분류하는데, 반자동소총과 자동소총의 중간자적 역할을 담당했던 M14가 가장 대표적이다. 정확하고 강하기 때문에 아직도 일선에서 일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존의 단점을 개선하지 못하면서 미군 주력 소총으로서의 역사는 상당히 짧았다. 한마디로 장점보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단점이 더 많아 아쉬움을 남겼던 소총이었다.

 

제원
탄약 7.62×51mm NATO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회전노리쇠 / 전장 1,118mm / 중량 4.5kg / 발사속도 분당 700발 / 유효사거리 460m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