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Falkland) 제도를 아르헨티나가 기습 점령하였다는 깜작 놀랄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포클랜드는 1832년부터 영국이 점유하고 있었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Malvinas)라고 부르며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는 분쟁지역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전쟁을 불사하고 아르헨티나가 강력하게 나올 것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는 못하였다.

 

포클랜드 전쟁, 역사의 영국에게는 해리어가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강력한 미국을 주창하던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으로 냉전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따라서 같은 진영에 속하였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혀 예상치 못한 충돌은 냉전의 한 축을 이끌던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확전을 막으려 미국이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먼저 칼을 뽑아 든 아르헨티나나 복수를 외치는 영국의 의지를 말릴 수는 없었고 결국 전쟁은 가시화되었다.

그러면서 전세계는 이 싸움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대체적으로 아르헨티나의 우세를 점쳤다.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본격화되어도 어차피 포클랜드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국지전이므로 지구를 반 바퀴나 달려와 싸워야 하는 영국이 불리할 것으로 본 것이었다. 더구나 영국은 1976년 IMF 구제 금융을 받았을 만큼 경제적으로 쇠락하여 대대적인 군비 감축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앞선 해군력을 내세워 근처까지 다가갈 수는 있지만 문제는 항공 전력이었다. 포클랜드 인근에는 공군이 전개할 곳이 없었고 해군도 F-4K 팬텀기의 운용이 가능한 항공모함 아크 로열(HMS Ark Royal R09)도 퇴역시킨 상황이었다. 제공권의 확보 없이 전쟁에서 이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분명히 이 점은 아르헨티나에게 절대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영국의 승리였다. 그들에게는 해리어(Harrier)라는 비책이 있었다.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1957년 영국의 항공기 명가인 호커(Hawker)社는 소속 엔지니어인 캠(Sydney Camm)과 후퍼(Ralph Hooper)의 주도로 P.1127로 명명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목표는 V/STOL(수직/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한 전투기의 개발이었는데, 굳이 전투기가 아니더라도 비행장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획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V/STOL이 가능한 비행체에 대한 다양한 도전은 이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있어왔었다.

핵심은 V/STOL이 가능할 수 있도록 기체의 균형을 유지하며 엔진의 출력 방향을 조절할 수 있어야 했다. 당시 호커의 기술진들은 브리스톨(Bristol)엔진社의 후커(Stanley Hooker)가 고안한 추력가변형 제트엔진 기술을 주목하였다. 당시 동일한 연구를 진행 중인 곳이 많았는데, 후커의 안이 여타 방식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파악되어 이를 그들이 연구하는 수직이착륙기의 심장으로 삼고자 하였다.

일사천리로 개발에 나서 프로젝트 착수 불과 3년만인 1960년 10월 21일 초도기가 수직으로 이착륙하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총 6기의 실험기가 제작되었는데, 1기가 실험도중 손실되었지만 여러 실험을 통해 추력가변형 제트엔진을 장착한 비행체가 전투기의 플랫폼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안정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호커의 신예기 개발에 대해서 영국 공군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지난 제2차대전 당시에 폭격으로 비행장 운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공군은 유사시 기지가 사용 불능이 될 때 도로, 주차장, 공터 등을 비행장으로 즉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들에게 V/STOL이 가능한 P.1127이 눈에 뜨인 것인 너무나 당연하였고 즉시 전투기로써 개량에 나섰다. 그 결과 1969년 4월 1일 수직이착륙 전투기가 세계 최초로 제식화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해리어 GR.1이다.

 

공군이 채택한 미지의 전력

수직으로 이륙을 하면 연료소비량이 많아지고 그만큼 작전 반경이 줄어들게 되므로 긴급시가 아니면 해리어도 통상적인 방법에 따라 지상에서 활주하여 이륙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특유의 추력가변형 엔진 덕분에 통상 이륙을 하더라도 다른 전투기에 비해 활주 거리가 매우 짧았고 그만큼 스크램블 시간이 단축되었다. 이착륙 거리는 짧으면 짧을수록 당연히 전술적으로 많은 이점을 제공해 주었다.

비행기와 비행장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아무리 작더라도 이착륙에 당연히 필요한 활주로는 비행기, 특히 군용기의 운용에 많은 제약 요소다. 유사시에 파괴된다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전투기가 날아보지도 못할 수도 있다. 사실 반드시 필요할 때 하늘에 떠 있지 않은 전투기는 적에게는 단지 취약한 목표물일 뿐이다. V/STOL기는 이러한 원초적인 약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었다.

그런데 해리어는 V/STOL 기능에 중점을 두다 보니 기체 구조에 상당히 제한이 많았다. 따라서 중무장이 불가능하고 작전 반경도 크지 않으며 목표로 했던 초음속까지는 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여타 전투기와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기동력은 공대공 전투 시 여러 약점을 커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실전에서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비행 중 공중에서 정지는 물론 경우에 따라 후진까지도 가능하였기 때문이었다.

영국 공군은 해리어가 장소의 구애됨 없이 최전선 가까이에서 운용이 가능한 플랫폼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V/STOL 능력이 매력적이라도 화력이나 여타 능력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미 당대 최강인 F-4M 팬텀을 주력으로 삼고 있던 영국 공군은 해리어를 보조 전술기로 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자국산 전투기 개발을 포기하고 마지못해 미국제 전투기를 도입하였던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고민에 빠진 해군의 대안

그런데 해리어의 등장은 감축을 강요 받던 영국 해군에게 희망을 주었다. 영국은 1960년대 이후 해외 식민지를 차례로 상실하면서 거대한 해군을 유지할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이빨 빠진 사자로 손가락질 받을 만큼 나락에 빠진 경제 상황 때문에 더 이상 거대한 해군을 유지하기 힘들도록 만들었다. 세계만방에 대영제국의 위용을 상징하던 이글(HMS Eagle)이나 아크로열 같은 중형 항모는 퇴출 대상 1순위에 올랐다.

이들의 퇴장과 동시에 운용하던 함재기들도 땅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역사를 선도한 전통의 영국 해군 항공대는 몰락하였다. 이처럼 상심에 빠져있던 영국 해군에게 해리어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영국 해군은 여러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퇴역시킨 중형 항모 대신에 경항공모함 체계를 갖추기로 결심하고 1975년 공군이 사용 중인 해리어를 개조하여 탑재하기로 발표하였다.

 

이를 공군 형과 분리하여 씨해리어(Sea Harrier)라고 부르는데 방공, 제해, 대함공격, 정찰 등의 다용도 임무에 투입되기 위하여 많은 세부 개량이 이루어졌다. 이전 F-4K 전투기와 버캐니어(Buccaneer) 공격기가 나누어 하던 역할을 모두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해리어가 경항공모함에서 사용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지만 이와 같은 다양한 임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지 그때까지 입증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군의 경우는 주력 전투기 개념이 아니었지만 해군형은 이전에 주력으로 사용하던 F-4K나 버캐니어 조합에 비한다면 객관적인 능력이 훨씬 뒤쳐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하지만 해군은 이런 불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이마저도 그저 감지덕지하여야 했다. 하지만 해리어가 수직이착륙 능력만을 보여주는 에어쇼 용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장 필요할 때 활약한 주인공

바로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당시 영국 원정군이 동원할 수 있는 항공 전력은 28기의 씨해리어가 전부여서 10기의 공군 해리어까지 긴급 충원되어야 했다. 하지만 영국 원정군은 90여기의 각종 전투기를 투입한 아르헨티나군을 몰아붙여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35기의 손실을 입었지만 영국의 해리어는 10기의 손실만 입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항속거리 제한 때문에 아르헨티나도 그다지 홈 코트 이점이 없었고 공대공 전투보다 영국 함정이 우선 목표여서 방어에 나선 해리어가 유리하였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전쟁은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므로 해리어가 승리의 일등 공신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결과는 이후 이탈리아, 스페인, 인도, 태국 등에서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한 경항공모함의 도입을 촉진시킨 기폭제가 되었다.

현재까지 해리어는 현역에서 제 역할을 다한 유일한 V/STOL기다. 소련이 항모탑재용으로 개발한 YAK-38이 있었지만 실전 투입도 없었고 성능이 너무 미흡하여 실패한 기종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한편으로 말하자면 쓸 만한 V/STOL기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존심 강한 미국도 국산기 개발을 포기하고 해병대용 근접지원 전술기로 해리어를 선택하였을 정도다.

 

현재 사용 중인 제2세대 해리어가 AV-8B인데 재미있게도 처음에는 미국과 영국이 공동 개발에 나서다가 여러 사정으로 미국이 개발을 주도하고 영국이 라이선스 생산하여 도입하는 아이러니한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하지만 외형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가장 기본적인 노하우는 영국의 기술에 의한 것이다. 현재 후계기인 F-35B가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고 있는 것만 보아도 1960년대 이전 기술로 개발 된 해리어가 얼마나 뛰어난 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V/STOL기의 효용성에 대해 많은 갑론을박이 있지만 포클랜드 전쟁 이후 코소보 내전이나 걸프전 등에서 해리어가 보여준 전과는 우려를 불식시켰을 만큼 대단하였다. 해리어는 스핏화이어(Spitfire)와 더불어 영국의 자부심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가장 절실히 필요로 했을 때 나타나 멋지게 활약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무기가 이 만큼 시기를 맞추어 적절하게 사용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해리어는 특히 인상적인 전투기라 할 수 있다.

 

제원(Sea Harrier FA2 기준)
전장 14.2m / 전폭 7.6m / 전고 3.71m / 최대이륙중량 11,900kg / 최대속도 1,182km/h / 항속거리 3,600km / 작전고도 16,000m / 무장 30mm ADEN 기관포 2문, 4개 하드포인트에 3,600kg 무장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