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우리 현대사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이 유달리 많은 도시다. 철도, 고속도로, 상수도, 갑문식 항구 같은 인프라와 공원, 커피숍, 클럽 같은 시설이 처음 설치된 곳이다. 짜장면, 쫄면을 비롯한 많은 음식의 고향이며 축구, 야구처럼 이제는 국민 스포츠가 된 다양한 외래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 온 출입구이기도 하다. 거기에다가 성냥공장, 사이다공장, 열차공장 같은 다양한 산업 시설도 최초로 설립되었다.

군사적 이슈와 관련해서도 그렇다. 각종 총기 및 소모품을 생산하던 한반도 최초의 시설이 인천에 있었다. 1930년대 말, 부평에 자리 잡았던 ‘조병창(造兵廠)’이 바로 그것인데, 현재도 군사 시설로 일부 사용 중이다. 이곳에서 각종 무기가 제작되어 주로 만주 및 중국에 주둔 중인 일본군에 공급되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수요가 급증하자 각지에서 수탈한 원자재가 이곳에 몰려들어 무기로 제작되었다.

99식 소총, 97식 경기관총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화기와 총포탄이 생산되었는데, 해방 후 국군과 경찰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비록 일제 강점기에 제국주의자들의 편의를 위해 우리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벌어진 행위였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탈과 착취도 함께 있어서 결코 유쾌한 기억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땅에서 현대식 무기가 제작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전혀 의외라고 생각되는 무기가 인천에서 최초로 제작되었는데, 바로 잠수함이다. 비록 전투용은 아니었지만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잠수정이 1940년대에 인천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 일본 육군이 수송 임무에 투입하였던 '3식수송잠항정 마루유(三式輸送潛航艇 まるゆ)'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는 일제의 어처구니없는 발악 그리고 수탈과 착취의 증거이기도 하다.

 

적보다 더 나쁜 사이? 일본의 해군과 육군

1942년 5월이 되었을 때 서태평양 전역을 석권한 일본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초반의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그들의 진격이 얼마나 엄청난 후속 조치를 강요당하는 일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1943년 3월 과달카날 전투에서 패하자 일본은 광대해진 점령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선을 축소하여야 했는데, 오랫동안 작은 섬나라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현재의 점령지를 계속 확보하려는 전략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오판은 더욱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그렇다 보니 태평양에 산재한 여러 섬들에 주둔하여,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보급을 의존해야 하는 육군의 고통은 극심하였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많지 않았는데, 구조적으로 보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여야 할 해군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런데 1943년 1월을 넘어서면서 정작 해군도 바다로 안전하게 나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해군은 이런 현실을 고백하지 못하고 보급품 수송에 관한 육군의 요청을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거부하였다. 이에 육군은 분노가 폭발하였고 결국 스스로 배를 건조하여 보급한다는 기상천외의 결정을 하였다. 그들은 어떠한 선박이 태평양 격오지까지 안전하게 보급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하였고 마침내 잠수함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러나 육군은 수송선이나 상륙함을 운용하였지만 잠수함에 대한 노하우는 전무 하다시피 하였다. 결국 조선업체를 찾아가 협력을 의뢰하였는데, 업체 전문가들이 육군의 제안을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립되어 말라 죽어가는 육군의 현실을 이야기하자 협력을 약속하였다. 육군은 이들의 도움으로 산호 채취 등에 사용하던 니시무라(西村) 급 소형 잠수정을 플랫폼 삼아 일사천리로 설계도를 만들었다.

 

육지에서 만들어진 잠수함

오로지 수송이 목적이었으므로 어뢰발사관 등을 제거하였고 동력으로 헤셀만(Hesselman) 엔진을 장착하였는데, 출력이 낮지만 콩기름까지 사용할 수 있어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육군은 '3식수송잠항정 마루유'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즉시 건조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일본에 조선소는 많았는데 예외 없이 해군의 물량을 소화해 내기도 벅찬 상황이었다.

조선소 확보가 힘들자 잠수정을 반드시 조선소에서 건조할 필요는 없다고 사고를 전환하여 육상에서 함체를 세 부분으로 나눠 제작한 후 바닷가로 옮겨 조립하기로 하였다. 이른바 요즘 많이 사용하는 조립 공법의 일종이었다. 육군이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생각부터가 어이없는 일이었고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패하였지만, 미시적으로는 일본 육군이 잠수정 건조에서 보여준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참신한 부분이 많았다.

육군이 처음 찾아간 곳은 도쿄 인근 쓰기시마(月島)에 자리 잡은 안도데고쇼(安藤鐵工所)였는데, 장소가 협소하여 곧바로 다른 생산처도 수배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최대의 철도 차량 제작자였던 히타치세이사쿠쇼(日立製作所)에게도 생산을 의뢰하였다. 1943년 4월 일사천리로 제작에 들어간 마루유는 그 해 10월 초도함이 진수되어 시험에 들어갔고 1944년 1월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인천의 조선기계제작소

400척으로 구성된 수송잠항대를 구상한 육군은 안도, 히타치 외에 히로시마의 니혼세이고쇼(日本製鋼所)와 인천에 있는 '조선기계제작소(朝鮮機械製作所)'에도 제작을 의뢰하였다. 1937년 요코야마고큐쇼(橫山工業所)의 출자로 인천 만석동에 설립된 조선기계는 무기 부품도 제작하며 이미 육군과 관계를 맺었던 사이였다. 조선기계는 해방 이후 한국기계, 현대양행, 대우중공업을 거쳐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으로 계속 가동 중이다.

이처럼 일본 본토 이외의 제작처도 섭외하였을 만큼 육군은 다급하였다. 그런데 조선기계는 기존 시설을 이용하여 그럭저럭 블록을 제작할 수 있었지만 원래 조선소가 아니다 보니 이를 진수시키기 위한 도크가 없었다. 조선기계는 지체 없이 도크 공사에 들어갔고 동시에 잠수정 제작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처럼 설비 증설과 더불어 건조도 동시에 하였을 만큼 전쟁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946년 말까지 계획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전차처럼 만들어 봤자 소용도 없는 장비의 생산을 중단시키고 물자를 잠수정 생산에 올인하였을 만큼 육군의 진행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초도 생산 목표를 할당하였는데 히타치에 24척(1급), 니혼세이고쇼에 9척(1001급), 안도에 2척(2001급), 그리고 유일하게 일본 본토가 아닌 인천의 조선기계에 3척(3001급)을 배정하였다.

조선기계에서 제작에 들어간 잠수정은 유(ゆ) 3001~3003호로 일련번호가 부여 되었고 이 때문에 마루유 3001급으로 불린다. 이들은 모두 같은 도면으로 제작되어 차이는 없었고 단지 생산처별로 분류를 따로 하였을 뿐이다. 다만 조선기계에서 제작된 3001급은 각종 원자재 및 부품의 조달을 최대한 현지에서 하였다. 이 때문에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전국에서 약탈된 원자재가 부평의 조병창에서 가공되어 조선기계에 공급되었다.

 

역사의 교훈

3001~3003호는 제작이 완료되어 실전에 투입까지 된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지만 전쟁 말기라서 그런지 정확한 날짜나 세세한 작전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자료에 3002호는 1945년에 풍랑을 만나 침몰되었고, 3001호와 3003호는 종전 당시까지 활동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납품 받은 초도 물량에 만족한 육군은 조선기계에 3010호까지 발주하였으나 종전으로 말미암아 건조가 중단되었다.

이처럼 일본과 인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건조되고 승조원들이 속성으로 양성된 수송잠항대는 1944년 5월 23일에 처음 실전 투입되었다. 필리핀 전선에 식량과 탄약을 보급하도록 3척의 마루유가 여타 수송선들과 선단을 이루어 출항하였는데, 도중에 공격을 받아 여러 척의 수상함들은 파괴되었지만 마루유 3척은 50여 일의 항해 끝에 마닐라에 입항하는데 간신히 성공하였다.

육군은 이런 결과에 감격하였지만 문제는 이들이 보급한 물자가 모두 합하여 필리핀 주둔군이 4~5시간이면 소모해 버릴 100여 톤에 불과하였다. 한마디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전쟁을 무조건 경제적인 효율성만 따지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4~5시간을 연명하기 위하여 육군이 수송잠항대를 만들어 운용하고 격침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십 일간 항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난 것이었다.

많은 마루유들이 대양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았다. 어쩌면 극심한 물자 부족으로 애당초 목표보다 생산량이 적었던 것이 무의미하게 죽어간 병사의 수를 줄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일본 자료에서는 '최후의 감투 정신' 운운하지만 마루유는 쓸데없는 헛발질이었고 우리에게는 수탈의 흔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잠수함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제원
전장 41.4m / 전폭 3.9m / 배수량 274톤(수상), 370톤(수중) / 속도 7.5노트(수상), 3.5노트(수중) / 항속 거리 1,600해리 / 무장 37mm 4식 함포 1문 / 승조원 23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