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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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홀연히 사라진 공포의 다리미

F-117A 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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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7A 나이트호크(Night Hawk). 실용화된 최초의 스텔스기다.

아직까지 냉전의 기운이 남아있던 1981년 7월경, 소련은 한 가지 정보를 포착하였다. 미국이 1970년대 말부터 개발하고 있었던 최신예 전투기가 최근 시험 비행에 성공하였다는 것이었다. 사실 새로운 전투기가 개발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던 중이었지만, 정작 그 모양이나 성능이 어떤지 그리고 어느 정도 제작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전무하였다.


 

(좌)F-117의 앞모습 (우)F-117의 뒷모습

모든 것이 비밀인 신예기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 모습도 기분 나쁠 정도로 기괴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지구상에 등장한 전투기 중 최고의 성능이라는 이야기도 나돌 정도였다. 일부에서는 미 군용기 제식번호 순서에 따라 이를 F-19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962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Robert McNamara)의 주도로 이뤄진 ‘미 군용기 제식번호 통합규칙’에 따르면 다음에 채택될 전투기(F)는 19번째 제식번호를 부여 받을 차례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말만 많고 추측만 무성할 뿐이지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전투기 개발 역사상 이례적이라 할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개발이 완료된 후 1983년 10월부터 미 공군에 공급되기 시작하였지만 당시에는 이런 사실조차도 몰랐고 1988년 11월이 돼서야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마치 우주전쟁에서나 볼 수 있는 시커멓게 생긴 기괴한 모습 때문에 이를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랐던 것은 단지 모습 때문이 아니라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는 세계 최초의 스텔스(Stealth)기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소련은 경악하였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실용화된 최초의 스텔스기인 F-117A 나이트호크(Night Hawk)는 이처럼 비밀리에 개발이 이루어졌고 충격적으로 데뷔하였다.


 

스텔스 실험기였던 해브블루(HaveBlue)

레이더를 피하라


1930년대부터 군사용으로 사용된 레이더(Radar)는, 그 동안 인간의 오감에만 의지하던 적기의 내습을 보다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위력을 알게 된 이상 당연히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스텔스 기술이 등장하였다. 사실 비행체의 소리나 모습까지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저관측성(LO)이 옳은 표현이지만 스텔스는 어느덧 5세대 전투기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스텔스 기술의 등장은 어쩌면 우연이었다. 초기에 레이더를 운용하다가 항공기의 추적을 놓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하였다. 그때만 해도 레이더에 기술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런 문제가 반복되자 원인 규명에 돌입하여 항공기가 레이더반사면적(RCS)이 작아지는 위치에 비행체가 우연히 위치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RCS가 작아지도록 항공기를 제작한다면 레이더에 탐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해브블루의 비행 모습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소련의 수학자였던 우피므체프(Pyotr Ufimtsev)의 연구였다. 1964년 그는 비행체의 크기가 아니라 표면 각도에 따라 RCS 수준이 달라진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F-117A의 특징적인 각진 모습도 바로 이러한 연구의 산물이다. 스텔스기의 등장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 만큼 극적이었지만 이처럼 이론적 토대나 연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었다.


자료에 따라서는 미국의 초고속 전략 정찰기였던 SR-71을 최초의 스텔스기로 보기도 하지만, 적성국 정찰 작전 당시에 수시로 지대공미사일에 의한 요격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완벽하게 레이더망을 회피하기는 어려웠던 기종이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고려할 때 미 공군이 운용하였던 F-117A를 최초의 스텔스라고 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즉 F-117A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도자였다.


1974년 미 공군이 군용기 제작 업체에 스텔스를 요구성능(ROC)으로 하는 새로운 전술기의 개발을 의뢰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당국이 원하였던 것은 적진 깊숙이 은밀히 침투하여 목표물을 타격하는 폭격기였다. 이에 록히드(Lockheed)가 제출한 안이 채택되었는데, 켈리 존슨(Kelly Johnson)이 이끄는 유명한 스컹크 웍스(Skunk Works)가 개발을 담당하였다. P-38, P-80, F-104, U-2 등을 제작한 개발팀은 비밀리에 F-117A의 절반 정도 크기의 실험기인 해브블루(Have Blue) 2기를 제작하였고 1977년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GBU-28 유도 폭탄을 투하하는 모습. F라는 제식부호와 달리 F-117A는 공대공 전투 능력이 없는 폭격 전용기다.

비밀리에 개발되다


그 동안 미국이 이러한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는 스텔스와 관련한 기술이 바로 기체 외관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F-117A의 특징적인 외관은 RCS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이 때문에 비행 능력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공대공 전투를 위한 무장이 전무하며 속도 또한 마하 1에도 못 미치는데다 기동력도 전투기로는 용납이 되지 않는 극악한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스텔스 성능을 극대화한 폭격기로 개발되었기에 비행 성능과 교전 능력은 우선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따라서 F(전투기)라는 부호는 이러한 고유의 기능을 감추기 위한 기만책이기도 하였다. 공공연히 F-19로 이름이 알려진 것도, 그리고 예상과 달리 F-111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구(舊) 제식부호를 일부러 택하였던 이유도 개발 과정 중 소련에게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좌)배치된 F-117 모습 (우)낙하산을 펴고 착륙하는 F-117

해브블루에 만족한 당국은 초도 실험기로 5기의 YF-117A를 발주하여 1981년 비행에 성공하였고 각종 실험을 거쳐 1988년까지 모두 59기를 제작하여 은밀히 실전에 배치하였다. 이처럼 F-117A는 탄생부터가 기만과 비밀이었다. 시작도 미스터리 하게 출발한 F-117A는 처음 사진이 공개된 그 해 12월에 있었던 파나마 침공 작전에 최초로 실전 투입되었다. 하지만 작전의 규모 등을 고려한다면 엄밀히 말해 실전 테스트에 가까웠다.


그런데 전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다 보니 무시무시한 모습처럼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작전을 완수하였다는 미확인 통신만 난무하였고 적성국들은 당장 이놈을 상대할 카운터펀치가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그 차체만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1991년 1월 발발한 걸프전은 F-117A의 위력을 만천하에 두루 입증시켜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좌)F-117은 실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조종석 아래 16개의 전투 미션 마크를 붙인 F-117
(우)코소보 전투 당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당한 F-117A 잔해

갑자기 사라지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방공망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던 이라크의 심장 바그다드를 일거에 무너뜨린 전위대가 바로 F-117A이었다. 이때 42기가 투입되었는데, 총 1,271회의 단독 야간 출격으로 2,000톤 이상의 레이저유도폭탄(LGB)을 투하하여 85퍼센트 이상의 명중률을 기록한 반면 단 한기의 손실도 보지 않았다. 만일 F-117A가 없었다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기경보기, 전자전기, SEAD(적 방공제압)기, 제공기, 공격기 등으로 이루어진 7~10배 규모의 스트라이크 패키지(Strike Package)가 요구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1999년 3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코소보 작전 때 1기가 대공미사일에 격추되면서 커다란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스텔스 성능과는 별개로 속도가 느린 F-117A는 한 번 식별이 이뤄지면 꼼작 없이 당하는, 천하무적 괴물은 아니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2차 걸프전에도 투입되어 위력을 선보였지만 B-2 폭격기와 본격적인 5세대 전투기인 F-22의 등장으로 점차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성조기를 그리고 기념 비행하는 모습. 특유의 모양 때문에 다리미라고 불리기도 했다.

사실 이를 운용하던 미군 당국도 출격에 준비가 많이 필요하고 유지비용도 많이 드는 F-117A에 부담을 느끼던 중이었다. 결국 전격적으로 퇴역이 결정되었고 2008년에 보관용 기체를 제외한 전량이 철저한 감시 속에 폐기되었다. 타국에 기술이 유출되지 않기 위한 의도였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등으로 스텔스 기술은 퍼져나갔다. 중국, 러시아가 1999년 코소보에서 격추된 잔해를 사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F-117A는 우리나라의 안보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인연이 많았다. 전개와 배치에 관한 사항은 철저히 비밀이었지만 종종 한반도에서 훈련을 벌이거나 작전을 펼친 사례가 언론을 통해서 일부 알려지기도 했다.


많은 마니아들이 그 특유의 모습을 빗대어 다리미라고 부르는 F-117A는 탄생부터 온갖 비밀 속에 이루어졌고 그 동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후, 홀연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무기사의 이단아 같다. 만일 탄생 초기에 어느 전투기 조종사가 레이더에 관측이 되지 않던 F-117A를 하늘에서 갑자기 마주쳤다면 광선총을 쏘는 UFO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제원
길이 20.09m/ 전폭 13.20m/ 높이 3.78m/ 최대이륙중량 23,814kg/ 최대속도 993km/h(Mach 0.92)/ 항속거리 1,720km/ 실용상승한도: 13,716m/ 무장 내부폭탄창에 6,800kg 장착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