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은 전쟁의 방법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려준 역사적인 날이었다. 천재지변을 제외한다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파괴력은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무서운 수준이었다. 덕분에 엄청난 희생이 예상되었던 일본 본토에 대한 상륙 없이 전쟁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결될 수 있었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던 제2차 대전이 막을 내림과 동시에 핵무기 시대가 도래 하였다.

 

핵무기 시대의 도래

미국은 유일 핵무기 보유국으로써 전후 질서를 좌우하고 싶었지만 1949년 소련이 핵폭탄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전략적 이점은 곧바로 사라졌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다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한 무한 경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핵폭탄은 적의 핵심 목표를 일거에 타격하는 전략적 목적으로 개발 된 무기지만 이를 목표지점까지 옮길 수 있는 운반체, 즉 투발 수단이 필요하다는 제약이 있었다.

1960년대 이전에는 중폭격기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B-29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좋은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이 분야에서 기술력이 부족하였던 소련은 B-29를 데드카피 한 Tu-4로 서서히 미국을 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한발자국 더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사상 최초의 대륙 간 횡단 전략폭격기인 B-36 피스메이커(Peace Maker)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국과 독일이 전쟁을 벌인다면?

1940년 독일이 서부 유럽을 석권하고 마지막 남은 영국과 한창 일전을 펼치고 있을 때,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유럽에서의 전쟁에 미국이 뛰어들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독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영국과는 외상으로 무기를 공급하여 줄 만큼 호의적인 관계였지만, 지금까지 대내외에 중립 정책을 표명하여 왔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이런 생각을 표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독일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 미국과 유럽 사이에 놓여있는 대서양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적어도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과 독일이 전쟁을 개시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지상군 간에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따라서 교전이 일어난다면 해군과 공군이 전투의 주역이 될 것은 명확하였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으로 대서양을 차단시키면 해군력이 약한 독일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리고 1차대전 이후 새롭게 떠오른 주요 전쟁 무기인 비행기로 독일 본토를 타격하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거나 점령할 수 없는 극히 제한적인 전략이지만, 유사 이래 남이 나를 때리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 대신 나는 남을 골라서 때리는 것만큼 좋은 공격 방법도 없기 때문이었다.

 

제시된 난제

1940년 기준으로 독일 공군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였지만 모든 분야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장거리 폭격기 분야는 미국이 앞서고 있었다. 독일은 실험 중이던 4발의 Do-19 개발을 중단한 것처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반면 미국은 보다 강력하고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다양한 폭격기를 열심히 개발하여 도입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미국은 유럽에 군사 기지를 운용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독일을 타격하려면 적어도 북미 서부 뉴펀들랜드의 갠더(Gander)에서 독일의 베를린까지 왕복할 수 있는 약 10,000km의 비행이 가능한 폭격기가 필요하였다. 즉 대륙 간 횡단 폭격기의 필요성이 제기 된 것이었다. 비록 이미 제식화 된 B-17, B-24나 한참 제작중인 B-29도 좋은 폭격기였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조건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하였다.

미 육군 항공대는 1941년 4월 1일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이런 조건에 걸 맞는 새로운 폭격기의 개발을 요구하였다. 최소 요건인 10,000km의 비행이 가능하고 1회 출격으로도 많은 타격을 입힐 수 있을 만큼 폭탄을 적재할 수 있어야 했으며 적진까지 홀로 날아가 작전을 펼쳐야 하므로 방어력도 좋아야 했다. 노스럽과 더글라스가 당시의 기술로 이러한 요구 조건을 맞출 수 없다고 입찰을 포기했을 만큼 난제였다.

 

뒤늦은 탐생 하지만 새로운 임무

이때 콘솔리데이트(Consolidated Aircraft-후에 Convair)는 1940년 9월부터 모델 35로 명명한 장거리 폭격기를 연구 중에 있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제출한 시안이 전격 채택되면서 정식으로 제식번호 XB-36가 부여 되었다. 콘솔리데이트가 제시한 XB-36은 당시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그 어떤 항공기도 범접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크기였다. 큰 동체에 걸맞게 6연발의 엔진을 장착하였는데, 특이하게도 프로펠러를 후방으로 부착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차세대 폭격기로 개발 중에 있던 B-29 조차도 제식화는커녕, 제작도중 발생한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로 말미암아 개발에 애를 먹던 중이었다. 당연히 이보다 고성능이고 대형인 XB-36의 개발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험 제작을 마치고 초도 비행에 성공한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이었다. 애초 목표대로 대서양을 횡단하여 독일을 폭격할 일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 후 새로운 적인 소련의 위협이 증가하고 핵무기 경쟁이 가속화되자 B-36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았다. 비록 B-29가 핵무기 운반 능력이 입증된 최초의 전략 폭격기이기는 했지만 미국 본토에서 발진하여 소련의 깊숙한 곳까지 날아가 작전을 펼치기에는 항속거리가 짧았다. 따라서 B-29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작전을 펼치려면 태평양 전쟁 당시처럼 목표에 근접한 해외 기지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러나 핵폭탄이나 중폭격기 같은 전략 무기를 미국 본토 이외에 전진 배치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때 B-36이 새로운 장거리 핵무기 투발 수단의 임무를 부여 받고 세계 최초의 대륙 간 폭격기로써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세계의 수호자라는 의미에서 피스메이커라는 멋진 애칭으로 불리며 1949년부터 미 전략공군사령부(SAC-Strategic Air Command) 소속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빨랐던 은퇴

이렇게 프로젝트가 폐기될 수도 운명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본격 양산된 B-36은 현재도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거대한 피스톤 엔진 항공기라는 점이고 현재까지 등장한 전투용 항공기로는 최장의 주익을 가졌다. 거기에다가 30여 톤의 폭탄을 탑재하고 무급유로 대서양을 왕복할 수 있는 최초의 항공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뛰어난 성능과 멋진 데뷔에도 불구하고 B-36의 생애는 얼마 가지 않아 막을 내렸다.

왜냐하면 B-36이 본격 배치되기 시작한 1950년대는 고속의 제트기가 하늘의 제왕이 되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거대한 폭격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F-86의 심장이었던 J47-GE-19 제트 엔진을 4기를 추가로 장착하여 속도를 높이는 시도도 하였지만 결국 후발 제트 추진 폭격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배치 된지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1958년부터 조기 퇴역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었다.

모두 384기가 제작 된 B-36은 정찰기나 각종 실험용 플랫폼으로 개조된 일부를 제외하고 1959년 현역에서 모두 물러났다. 특히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B-52의 등장은 치명타였다. 미 공군 입장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두 가지 기종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1960년대가 되었을 때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수단이 다양화되었는데 그 중에는 ICBM 같은 장거리 미사일도 있었다.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까지 날아가 핵폭탄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었다.

사실 이후 등장한 B-52, B-1, B-2도 종국적으로 적진까지 침투하여야 하므로 장거리 미사일에 비한다면 전략 핵폭탄의 운반 수단으로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였을 때 속도가 느린 폭격기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B-36의 생애는 유별나게 짧았다. 한마디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아라 할 것 같다. 개발된 지 60여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선에서 활동하는 B-52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