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2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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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최고의 전리품으로 대접받은

권총 루거 P08(Luger 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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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P08 권총. 연합군 사이에서 전리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출처: © www.adamsguns.com>

전쟁 영화를 보면 교전 직후 점령지를 수색하여 전리품을 챙기는 장면이 종종 그려진다. 가끔 고가의 귀중품을 습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의 무기 노획이 주목적이다. 그 이유는 차후에 적들이 무기를 재사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필요할 경우 아군이 활용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아군이 사용하기 곤란한 노획 무기는 추후 적들이 재사용하지 못하도록 즉시 파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적의 무기나 장비라면 일단 보유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 중 모든 사병들에게 지급되지 않지만 휴대가 편리하며, 가지고 있다고 특별히 손해 볼 것이 없는 권총이 대표적이다. 원래 노획무기는 부대가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전에 투입된 많은 병사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는 힘든 법이다. 더구나 권총의 경우는 참전 기념물로 습득하려는 경우도 많다.


‘뭐 굳이 무기를 기념물로 가지려 할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전쟁이라는 시공간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다. 어쩌면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를 원하고 이를 기념하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제2차 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 투입되었던 미군들이 전리품으로 갖고 싶었던 독일군 무기라면 단연코 루거(Luger) P08 권총이었다.


 

(좌)루거P08의 토글이 접힌 모습 (우)루거P08의 내부 구조도

뭔가 특징적이었던 루거의 모습


P08이 최고의 전리품으로 대접받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생각보다 고장이나 오발이 자주 발생하여 독일군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던 점을 생각한다면 굳이 무기로 재사용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실화를 바탕으로 2001년 제작된 유명한 TV시리즈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 Band of Brothers]에서 이를 노획하여 자랑하고 다녔던 병사가 어이없게 오발로 목숨을 잃는 모습이 나왔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무기라는 측면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P08의 인기의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많은 자료에는 독일군 고급 장교들만이 착용하였던 무기라서 그랬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이 권총을 노획하였다면 독일군 장교를 사살 혹은 포로로 잡았다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의미하므로 많은 미군 병사들이 가지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총을 잡았을 때의 그립(grip)감이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한마디로 폼 나는 모양새였다.


우리와 달리 총기의 보유와 사용이 자유로운 미국인들에게 권총은 하나의 문화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군 중에는 군대에 오기 전에 이미 여러 종류의 총을 잡아보았던 이들이 많았고 따라서 새롭거나 쉽게 접하지 못했던 권총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비록 모든 독일군 장교들이 P08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외형적인 면에서 독일군을 상징할 만한 독특한 점이 있어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루거 08의 개발자인 게오르그 루거

미군도 사용을 검토했던 권총


제2차 대전을 상징하는 권총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P08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1898년 독일의 총기 제작사인 루드비히 뢰베사(Ludwig Loewe & Co)의 게오르그 루거(Georg Luger)가 만들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기존의 권총을 계량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893년 후고 보어하르트(Hugo Borchardt)가 반자동 보어하르트 C-93(Borchardt C-93) 권총을 개발했는데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무거웠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여 탄생한 권총이 바로 P08으로 토글 액션(Toggle action)이라 불리는 특수한 쇼트 리코일(Short recoil)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이 새로운 권총에 대해 처음 관심을 보였던 곳은 독일이 아니었다. 1900년 스위스 육군이 7.65mm 파라블럼 탄을 사용하는 P1900 모델을 3,000정 구입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납품 사례다. 비슷한 시기에 불가리아에도 1만정이 판매되었는데 민수용이었다고 알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후에 미군들이 혈안이 되어 수집하러 다녔지만 미군용으로 채택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1903년 미 육군 당국은 차기 권총 후보들로 P1900과 9mm 파라블럼 탄을 사용하는 P1902 모델을 각각 구매하여 테스트하였다. 심사 끝에 자국산 콜트(Colt)를 채택하면서 미군 납품은 무산되었지만, 이후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재미있었던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된다.


 

7.65mm 파라블럼 탄을 사용하는 P1900 형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전에 특화된 무기로


이처럼 해외에서의 호평과 달리 정작 독일에서는 1904년 해군에 의하여 겨우 제식화되었다. 해군용 모델은 105mm 총신을 가졌는데 1905년 독일의 식민지였던 동아프리카와 서남아프리카에서의 저항 진압에 사용되면서 처음으로 실전에 데뷔하였다. 그렇지만 독일군의 핵심인 육군에서는 1908년에서야 채택하였고 이때 비로소 P08이라는 제식 부호를 얻게 되었다. 명성에 비한다면 자국 내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아 시작은 이처럼 상당히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대량 생산되어 독일군에 납품된 P08은 제1차 대전 당시에 참호전에 적합한 무기로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명성을 떨쳤다. 참호전이 일상화되자 보병들이 적진까지 들고 뛰어간 소총들은 검이나 몽둥이 용도밖에 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속사가 가능한 권총은 좁은 곳에서 적과 근접하였을 때 사용하기 편리한 무기로 등장하였다. 막연히 고급 장교용 무기로 생각하던 P08이 이처럼 최전선의 사병들도 애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P08용으로 32발을 탑재할 수 있는 트롬멜(Trommel) 탄창이 등장하였고 이를 장착한 P08은 마치 기관단총처럼 사용되었다. 이후 최초로 전선에 투입된 기관단총인 MP18이 P08과 같은 9mm탄을 사용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재미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기관단총처럼 자동 연사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수의 능력에 따라 속사가 가능하였고 30발이 넘는 장탄량은 상대보다 많은 이점을 제공하여 주었다.


 

근접전을 위해 트롬멜 탄창과 개머리판을 장착한 P08 <출처 : (cc) Kar98 at Wikimedia.org>

P08은 발사 후 복좌 장치가 후방으로 접히면서 탄피를 배출시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탄환을 장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이물질의 총기내 유입을 불러와 툭하면 고장을 내는 원인이 되었고,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더불어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22년 9mm탄의 사용이 금지되며 7.65mm탄용으로 P08이 일부 생산되었으나 고가의 제작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양산이 되지 않았다.


 

루거P08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권총 발터(Walter) P-38 <출처 :© www.adamsguns.com>

성능보다 모양으로 얻은 유명세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독일군은 재무장하면서 새롭게 개발된 발터(Walter) P38을 표준 권총으로 채택하였다. 이처럼 P08은 도태될 운명이었지만 전쟁이 거대해지고 무기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부족한 수량을 보충하며 전쟁 말까지 사용되었다.일부 자료에는 1945년까지 P08이 생산되었다고는 하는데, 제2차 대전 당시에 사용된 대부분이 1922년 이전 생산된 재고물량이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구시대의 무기가 되어버린 P08이 최일선에서 활약하기는 어려웠다. 형식적으로 무장을 하는 고급 장교, 해군 승조원, 공군 조종사 그리고 점령지를 관리하는 후위 부대에서 주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적에게 포위된 고급 장교들이 명예를 지키려 자살하는 데 사용하는 무기로 인식되면서 연합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P08이 본의 아니게 독일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P08은 명중률이 높고 장탄수가 많다는 장점을 갖추지만, 툭하면 작동이 불량일 만큼 신뢰성에 너무 문제가 많아 오래 전에 사라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시대 상황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로인해 성능에 비해 명성을 얻은 권총이 되었다. 덕분에 종전 후에는 군경용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였음에도 콜렉터들에게 골동품으로 인기가 많다. 어쩌면 이처럼 눈요기 감으로나마 볼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멋진 외형이 P08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생각된다.


 

제원
탄약 9×19mm 파라블럼 외 / 작동방식 토글액션, 쇼트 리코일 / 전장 222mm / 중량 871g / 유효사거리 50m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