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7일 오후 2시 23분, 큐슈(九州) 남서쪽 약 200km해상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고 동시에 하늘과 바다가 무섭게 불타올랐다. 폭음과 연기가 바다 건너 큐슈에서도 관측되었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었다. 폭발과 함께 한 척의 군함이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쓰러져가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비참한 말로와 같았다. 역사상 최대의 전함으로 자타가 공인하던 거함 야마토(大和)의 최후였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시작된 거함거포주의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욕망 해군력을 키우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후 일본은 서구 열강들을 교과서 삼아 군사력 증강에 나섰는데 특히 강력한 해군을 발판으로 세계 제패에 성공한 영국을 본받아 대대적인 해군력 확충에 진력하였다. 도발 욕구를 표출하고 싶었던 제국주의 일본은 그 동안 구축한 군사력을 발판으로 1895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연거푸 승리하면서 당당히 군사 강국의 위치에 올랐고 제1차 대전이 끝났을 때 어느덧 세계 3위의 해군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한 해군력을 앞세워 대외 도발을 촉진하고 싶어도 그들 앞을 가로 막는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세계 1위의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었다. 이들 국가의 해군력 모두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것은 아니었지만, 해군력은 이동과 배치가 손쉬운 전략적 유연성으로 말미암아 지역에서의 일본의 전력 우세는 일시적인 효과만 나타낼 수 있을 뿐이었다.

일본은 대등한 수준의 해군력을 원하였지만 1922년 체결 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등으로 인하여 전력 확충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20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거함거포주의가 대두되면서 각국은 상대를 압도할 전함의 보유에 박차를 가하였지만 이는 국력을 올인하여야 할 만큼 부담이 컸던 경쟁이었다. 따라서 제1차 대전 이후 군축이 논의 되었고, 이때 중점 감축 대상이 되었던 것이 해군력의 주력이던 전함이었다.

못마땅하였지만 일본은 강제적으로 자국의 해군력을 3위 수준에 계속 묶어두는 이러한 제한을 마지못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 대외 침략 야욕을 더욱 노골화하면서 이런 제약이 거추장스러웠던 일본은 1937년 ‘2차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을 거부하며 군비 확충에 열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1934년부터 비밀리에 추진하던 초거대 전함들의 건조에 전격 착수하여 초도함이 1941년 취역하였다.

 

모습을 드러낸 사상 최대의 전함

애당초 일본은 5척의 신예 전함의 취득을 계획하였고 이들은 이후 초도함의 이름을 따서 야마토 급 전함으로 불리게 되었다. 2번 함 무사시(武蔵)는 1938년 건조에 착수하여 야마토 취역 이듬해인 1942년에 실전 배치되었지만 3번 함 시나노(信濃)는 건조 도중 항공모함으로 용도가 바뀌었고 나머지는 계획이 취소되었다. 이들 야마토 급 전함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사거리 40여 Km를 자랑하는 주포의 구경은 무려 460mm(18.1인치) 이었는데, 최후의 전함으로 명성이 드높은 아이오와(Iowa) 급  전함의 16인치 주포보다 컸던 역사상 최대의 함포였다. 포탄 한발의 무게만도 1.36톤으로, 발사 시 엄청난 여운이 발생하여 주변 대공포탑에 일일이 덮개를 씌워야 했다. 야마토 급 전함은 이러한 무시무시한 거포를 3연장으로 조합한 포탑을 3개나 장착하였고 포탑 하나의 무게만도 당시 중형 구축함과 맞먹는 약 3000톤 이었다.

대공포 용도로 155mm 12문(개장 후 9문)과 127mm 12문의 부포가 선체 좌우에 촘촘히 배치되었는데,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곤란하지만, 현대 구축함의 주포로 많이 사용하는 Mk45의 구경이 127mm 인 점을 생각한다면 이 새로운 전함의 화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 공격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선체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장갑으로 둘러야 했으므로 263m 선체에 만재배수량이 71,659톤에 이르렀다.

군축 조약으로 말미암아 일본을 비롯한 해군 열강들이 당시에 보유한 대부분의 전함들은 35,000톤 이하였다. 재군비를 선언한 독일이 1년 먼저 야심만만하게 건조에 착수한 비스마르크(Bismarck)가 55,400톤, 일본의 시도에 놀라 대응에 나선 미국의 아이오와가 52,000톤인 점을 고려한다면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알 수 있다. 이는 1950년대 등장한 항공모함 USS 포레스탈(Forrestal) 등장이전까지 사상 최대의 군함이기도 했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거대 항공모함을 흔히 슈퍼캐리어(Super Carrier)라고 칭하는데, 포레스탈은 바로 슈퍼캐리어 시대를 개막한 역사적인 항공모함이었다. 미국의 항공모함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최대 항공모함이 만재배수량 58,000톤 규모인 러시아의 쿠즈네쵸프(Admiral Kuznetsov)라는 사실만 생각해 보아도 1940년대 초에 실전에 배치된 야마토 급 전함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바뀌어 버린 패러다임

야마토의 엄청난 크기 그리고 무시무시한 공격력과 관련하여 많은 반론들도 있다. 요점은 당시 일본의 철강, 조선, 기계 공업의 능력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철강의 품질이 좋지 않아 장갑이 두꺼워야 했고 함포도 구경을 크게 만들 수밖에 없어 결국 초대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사실 운항 속도와 작전 반경 등의 이유 때문에 무턱대고 군함의 크기가 커지는 것을 반기지는 않는다.

특히, 야마토와 무사시가 별다른 전과도 기록하지 못하고 피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겉으로 드러난 스펙만으로 야마토 급 전함은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초도함인 야마토는 진주만공습 열흘 후인 1941년 12월 16일 배치되었는데, 이때는 해군의 패러다임이 바뀐 상황이었고 어쩌면 이것이 야마토가 덩치만 커다란 애물단지로 전락한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해전의 사상을 바꾼 이들이 바로 일본 해군이었다. 항공모함 함대를 이용한 진주만 기습은 그동안 바다의 주역 노릇을 하던 전함이 정상에서 내려오고 항공모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일종의 사변이었다. 서로를 향해 마주하고 포격을 날리던 함대함 대결이 제2차 대전 당시에도 있었지만 이미 시대에 뒤진 전술이 되었다. 하늘을 통해 보다 멀리서 때릴 수 있는 자가 승리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본 스스로 야마토의 출전을 유보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야마토는 공격 목표가 되기 쉬운 표적인데다가 엄청난 국부를 투입하며 건조한 전력이었으므로 최대한 안전하게 보존해야 했다. 더불어 전쟁 내내 물자 부족에 시달렸던 관계로 엄청난 유류를 소비하는 야마토의 출격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군항에 박혀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야마토 호텔'이라 수병들이 비하하였을 정도였다.

 

거함의 최후

하지만 아무리 보존하여야 할 전력이라도 일본의 최후가 다가 온 순간까지 부두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들어 항공모함 전력이 바닥난 일본은 수상함 전력을 긁어 모아 전선에 투입하였고 야마토와 무사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공권 확보는 고사하고 하늘에서 이들을 보호해줄 최소한의 전력에도 턱없이 부족한 채로 전함들이 출동하는 것은 미친 짓거리와 같았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가미카제(神風)와 같은 모습이었다.

1944년 10월 레이테만 전투(Battle of Leyte Gulf)에서 무사시가 격침되었고, 이듬해 4월 야마토도 텐고작전(天一号作戦)에 무모하게 참가하였다가 400여 기의 미군 함재기들로부터 1시간 40여분에 걸친 맹폭을 받고 침몰하여 현재까지 격침된 최대의 전투함이 되었다. 사실 이 시점이라면 더 이상 저항이 불가함을 깨닫고 항복을 선택했어야 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전 국민을 옥쇄(玉碎)시켜서라도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무모하고도 악랄한 모습을 보였다.

 

전함 시대의 상징적인 종지부

야마토의 최후는 전함시대의 상징적인 종지부였다. 엄밀히 말해 전함을 앞세운 거함거포주의 시대는 제2차 대전 시작과 동시에 종언을 고한 명제와 다름없었다. 전쟁이 낭만적일 수는 없지만 고전적이고 장쾌하였던 전함간의 포격전과 맷집 대결은 더 이상 재현되기 힘들었다. 비록 아이오와 급 전함이 20세기 말까지 살아남아 수시로 얼굴을 들이 밀었지만 상륙전이나 지상 목표에 대한 화력지원 용도였다.

아이오와와 야마토를 비교하는 자료가 많고 특히 승리한 미국 측 자료는 아이오와 급 전함의 일방적 우위를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오와도 야마토처럼 전쟁 중에 제대로 된 함대함 대결을 벌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아이오와와 야마토가 같은 조건에서 포격전을 벌였을 경우 누가 승리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물론 세계가 경악했을 정도로 야마토는 최강의 전함으로 결코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괴물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점은 우리에게 반가울 뿐이다.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