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국가가 있다. 건국 이래 주변 아랍 국가들과, 네 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의 압력에 강대국들이 무기금수 조치를 취하자, 자국의 전장 환경에 맞는 독특한 무기들을 독자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무기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무기로 메르카바 전차가 있다. 이스라엘 육군의 주력 전차인 메르카바는, 전차의 고정 관념을 바꾼 독특한 형상의 전차이다.

 

중고전차가 주력이었던 이스라엘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전쟁은, 전차간의 전투가 지상전의 승패를 결정 지었다. 이에 따라 수적으로 불리한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 보다 우수한 성능의 전차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육군이 보유한 전차의 대부분은, 미국과 영국의 중고 전차들뿐이었다. 반면 아랍 국가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 소련의 최신형 전차인 T-62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구형 전차들만 보유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T-62 전차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매우 심각한 위협이었다.

 

불발로 끝난 치프틴 전차의 면허생산

고민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에게, 영국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영국은 당시 최신형 전차인 치프틴(Chieftain) 전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 개발 단계에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영국은 부족한 예산을 해결하고자 이스라엘이 치프틴 전차의 개발비를 일부 부담 하는 조건으로, 치프틴 전차의 이스라엘 국내 면허 생산을 허가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스라엘은 영국의 제안을 환영했고, 수 백대의 영국제 중고 전차를 구매해야 하는 반대급부가 있었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영국은 아랍 국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1969년 치프틴 전차의 이스라엘 국내 면허 생산을 돌연 취소하게 된다.

 

전차 만능주의에 빠진 이스라엘 군

결국 이스라엘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지만 1967년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육군의 전차들은 아랍 국가들의 T-62 전차를 격파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차 운용 요원들의 숙련도에서 한 수 아래였던, 아랍 국가들은 수많은 전차들을 잃고 퇴각한다.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육군은 전차를 지상전의 해결사로 보는 환상에 빠져 버렸다. 반면 아랍 국가 가운데 이집트는 이스라엘 육군과 전차간의 교전에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전차 대신 대전차 미사일을 사용하는 새로운 전술을 연구하게 된다.

 

3분만에 궤멸 당한 이스라엘 육군의 전차들

이집트의 새로운 전술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의 발발과 함께, 주요 격전지였던 수에즈 운하에서 사용된다. 이스라엘 육군은 침공해 오는 이집트 육군에 맞서 전차로만 구성된 기갑여단을 신속하게 파견 한다. 그러나 이집트 육군은 이스라엘 육군의 전술을 간파하고 구 소련제 AT-3 대전차 미사일과 RPG-7 대전차 로켓포로, 촘촘히 구성된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이집트 육군의 방어진지에 맞닥뜨린 이스라엘 육군의 전차는 3분만에, 전차 110대 중 85대가 파괴되는 참패를 겪는다. 비록 제4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이때의 뼈아픈 실전경험은 신형 전차 개발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메르카바 전차의 개발

치프틴 전차의 이스라엘 면허 생산이 불발로 끝나고, 1970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육군이 운용 중이던 센츄리온 전차(Centurion)를 기반으로 신형 전차 개발에 나선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쟁의 실전경험을 통해 새로운 위협인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포의 성형작약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신형 전차가 필요 했다. 이에 따라 신형 전차는 성형작약탄에 대한 방어력을 최우선으로 설계 했다. 1973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신형 전차는 메르카바로 알려 졌다. 메르카바는 히브리어로 전차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메르카바 전차의 개발에는 이스라엘 국내의 국영 및 민영 기업 시설이 최대한 이용되었고, 기술이 부족한 부분은 해외에서 도입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1974년 최초의 메르카바 시제 전차가 완성되었다.

 

방어력이 우선시 된 전차

메르카바 전차는 기존의 전차와 완전히 차별화된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전차의 엔진을 일종의 장갑으로 생각해 엔진을 차체 앞에 장착했고 전차의 엔진이 장착될 차체 뒤에는, 기존의 전차와 달리 보병이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차체와 포탑에는 성형장약탄을 방어할 수 있게 공간장갑을 대폭 사용하였다. 공간장갑이란 장갑판을 이중으로 만들고, 장갑판 사이에 공간을 만든 장갑을 말한다. 공간장갑은 성형작약탄의 먼로 효과를 감쇄시키는데, 탁월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공간장갑은 이후 비어 있는 공간 사이에 세라믹과 복합재료를 채워 넣어, 보다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복합장갑으로 발전한다. 또한 메르카바 전차의 차체 밑은 장갑판을 구부려 “V”자형으로 제작하여 지뢰에 대한 방어력이 우수했다. 메르카바 전차의 주포는 미국의 M68 105mm 포를 면허 생산해 장착했다. 이밖에 무장으로 기관총과 기관포 외에도 60mm 박격포를 탑재하여, 보병과 대전차 미사일 진지 공격용으로 사용한다.

 

실전을 통해 개량된 전차

1979년 4월부터 이스라엘 육군에 배치된 메르카바 전차는 메르카바 Mk1 전차로 표기된다. 메르카바 Mk1 전차는 1982년 레바논 내전에 처음으로 실전에 참가하게 된다. 레바논 내전에서 메르카바 Mk1 전차는 시리아 육군의 최신예 전차인 구 소련제 T-72 전차를 파괴하며, 우수한 성능을 입증했다. 1983년 부터는 레바논 내전의 전훈을 반영해, 방어력을 한층 개선시킨 메르카바 Mk2 전차가 등장한다. 1990년에는 주포를 120mm 활강포로 업-건(UP-GUN)하고, 포탑을 재설계한 후 모듈장갑(Module Armor)을 장착한 메르카바 Mk3가 생산된다.

 

메르카바 Mk 4 전차

2001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메르카바 Mk 4 전차는 차세대 메르카바 전차로 방어력 향상과 함께 1500 마력의 엔진이 장착되어, 기동성이 이전의 메르카바 전차들에 비해 현저히 향상 되었다. 또한 비트로닉스(Vetronics) 개념이 도입되어, 전차에 장착된 사격통제장치, 통신장비, 그리고 각종 센서등이 네트워크로 통합되어 운용 된다. 메르카바 Mk 4 전차는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 종전 이후, 전차를 위협하는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포를 요격하는 트로피(Trophy) 능동 방어 체계를 장착했다. 메르카바 전차는 비록 다른 나라에 수출되지는 못했지만, 전차 기술을 선도하는 이스라엘의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메르카바 전차에 사용된 각종 장비들과 제작기술은, 해외 여러 나라의 전차개량사업이나 전차 제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글 김대영 /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 인텔엣지(주) 국방조사팀 팀장, 디펜스 타임즈 코리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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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