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7일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693> - 전후(戰後)에 남은것

전사상자(戰死傷者) 모두가 원호(援護)혜택 못받아

일부대원(隊員)만은 포장(襃章)·기장(記章)받고 자위(自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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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中共軍) 반공(反共)포로들이 풀려난 것은 휴전 이틀째인 54년 1월 23일 북한(北韓)출신 반공(反共)포로 7천 5백여명과 함께였다. 2만 2천여명의 중공군(中共軍) 포로중 중공(中共)으로 송환되기를 희망한 사람은 8천여명뿐, 나머지1만 4천2백27명의 반공(反共)포로들은 자유중국(自由中國)으로 갈것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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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개개인으로 볼 때 그것은 사실 쉽지않은 결심이었다. 중공(中共)치하의 본토엔 가족들이 남아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自由)에의 의지는 정(情)보다 강했다. 또 53년 휴전직전 단행된 한국(韓國)정부의 반공(反共)포로석방조치도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자유중국(自由中國)정부도 이들을 맞기 위한 준비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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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께는 126명의 반공(反共) 중국포로(中國捕虜) 인수반(引受班)을 파한(派韓)했으며 연예인과 사회인사로 구성된 환영반도 내한(來韓)했다. 이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주(朱) 모양이라고 당시의 자유중국(自由中國) 인기 여배우도 함께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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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화교(在韓華僑) 들의 환영행사도 대단했다. 본국 대표들이 참석한 환영식은 물론, 기념‘아치’도 세우고 華僑학교 초중고생 전원이 참가한 시가행진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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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인도관리군(印度管理軍)으로부터 ‘유엔’군(軍)으로 넘겨진 이들 반공중국(反共中國)군 포로들은 성대한 환영행사를 마친 후, 곧 인천항(仁川港)에서 미 LST 수송선을 타고 자유중국(自由中國)으로 향했다. 이후 대만(臺灣)에서는 이들을 주제로 ‘1만4천명의 증인(證人)’이란 반공영화도 만들어 크게 인기를 얻었다. 또 1월 23일을 ‘자유일(自由日)’로 정해 기념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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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포로 중 한국(韓國)에 남아 살게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원래 한국(韓國)에서 살다 중공군(中共軍)에 끌려갔던 화교(華僑) 몇몇은 수를 써서 다시 남기도 했다. 내가 알던 소(邵)씨란 화교도 그런 경우였다. 용산(龍山)에서 목수일을 하던 그는 전쟁직전 본토에 들어갔다가 중공군(中共軍)에 징발돼 한국군(韓國戰)에 참전,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한국인(韓國人) 부인 등 가족들은 그대로 이곳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도 송환포로들 틈에 끼어 그냥 자유중국(自由中國)으로 보내지게 됐다. 본인은 남으려고 애썼지만 절차가 그리 안된 모양이었다. 인천(仁川)에서 배에 실려질 무렵 부둣가에 따라온 부인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인천항(仁川港)에 나가 송환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동료들과 상의, 손을 써서 배에 오르기 직전 소(邵)씨를 빼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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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中國人) 반공(反共) 포로들의 송환은 화교(華僑)들에게 6·25의 마지막 ‘이벤트’였다. 한국인(韓國人)에게와 마찬가지로 수만의 화교(華僑)들에게도 한국(韓國)전쟁은 길고 지루한 참화(慘禍)의 기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재산을 잃고, 피난을 다녔고, 총탄에 희생되기도 했다. 해방 후 한때 번성기를 누리던 화교(華僑)경제는 전쟁통에 완전히 무녀져 이후 다시는 원상을 회복하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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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에서도 조그만 보람이랄까, 긍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적은 수나마 청년화교(華僑)들이 참전해 한국군(韓國軍)과 나란히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화교(華僑)가 단순한 ‘외국인(外國人)집단’만은 아니란 점을 증명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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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華僑)들의 종군(從軍)과 공적에 대한 한국(韓國)정부의 인정은 전후 20여년간 연차적으로 조금씩 이뤄졌다. 57년 위서방(魏緖舫)씨 등 1사단 수색대원들에게 훈장이 수여됐고, 71년엔 다시 종군기장(從軍記章)이 주어졌다. 왕세유(王世有)·유국화(劉國華)씨를 비롯한 SC지대원(支隊員) 등 47명의 참전사에겐 한중문화(韓中文化)협회의 소청 끝에 71년 12월에 정식 종군기장이 나왔고, 73년 9월에 보국포장(保國襃章)이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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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문제가 있은 것은 전사상자(戰死傷者)나 유가족에 대한 원호대책이었다. 참전동지들은 한국(韓國)원호당국에서 이들에 대한 배려를 해줄 것을 바랐다. 그러나 원호처에선 외국인이기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또 중국(中國) 대사관측에서는 당초 본국의 지시로 정식 참전한 것도 아닌 만큼 공적(公的)으로 한국(韓國)정부에 건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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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상을 입은 일부 참전동지가 가난과 곤경속에 살아야 했다. SC지대(支隊) 공작과장이던 장귀화(張貴和)씨 같은 이는 전쟁때 입은 복부(腹部)관통상의 후유증으로 71년 사망했으며 사후(死後) 국립묘지(國立墓地)에 묻히고 싶어한 소망도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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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왕세유(王世有)·유국화(劉國華) 씨등 참전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전후(戰後) 한때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일부 전사자나 행방불명자 가족들이 “멀쩡한 젊은이를 죽게했다”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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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유(劉)·왕(王)씨등은 한국(韓國)육군본부에서 대공(對共)심리전에 참여한 후 한화일보(韓華日報)등 언론사업을 펴다가 한때는 여러 지방의 화교(華僑)학교 교사로 전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버는 수입으론 SC지대(支隊)당시의 빚도 갚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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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이후 참전자들은 재한화교참전동지회(在韓華僑參戰同志會)를 조직해 어려운 일은 함께 협의하고 있다. 또 해마다 현충일(顯忠日)이면 국립묘지 강혜림(姜惠霖)씨의 묘 앞에 모여 고인의 넋을 기린다. 이 자리엔 김안일(金安一)씨등 옛 한국군(韓國軍) 전우들도 함께 자리해 참전화교(華僑)의 얘기를 되새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