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

동동구리무 | 2010-04-01 18: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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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개요>

1998년 12월 17일 밤 11시15분 질흙같이 어두운 밤바다는 조용했으나, 이곳 여수시 돌산읍 임포리 초소에 비치된 야간감시장비 (TOD)에 괴물체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당일 근무 관측병 김태완(당시21세)이병과 임승환(당시22세) 병장은 괴물체의 형태가 안테나와 비슷한 물체와 두 개의 뚜껑이 달린 것으로 보아 반잠수정임을 직감하고 즉각 상황실에 괴선박 출현을 보고하면서 발견되었다.
북한 반잠수정은 자체 연료통의 크기로 보아 북한 기항지에서 단독 침입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아 공작모선에 실려 침투지역으로 이동뒤 모선에서 이탈, 승조원 및 공작원을 태우고 침투 예정지역인 남해상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침투의 목적은 '고정간첩 대동복귀', '간첩 침투', '드보크(무인함)'설치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발견 15분 후 우리의 육군과 경비정이 즉각 현장으로 출동 수색작전을 폈으나, 괴선박은 벌써 도주한 뒤였다. 그러나 2시간 25분후, 18일 새벽 1시 40분경, 야간 감시장비가 임포초소 전방 8㎞ 떨어진 괴선박을 정확히 잡아내면서 우리군은 육.해.공 합동작전 체계로 전환하여 치열한 추격전이 전개되었다.
3시07분 해군 소리도 레이저 기지에서 도주중이 괴선박이 포착되고 해군은 2개 고속정 편대 (6정)을 현장에 급파하여 공해상으로 빠져나가려는 괴선박을 차단해 포위망을 구성했다. 4시경 이번에는 욕지도 남방 22마일 해상에서 또 다시 괴선박이 우리 레이다에 포착되었고, 4시38분 800ton급 초계함인 광명함이 76㎜ 함포와 40㎜ 함포로 위협사격과 경고 사격을 가하여 정선을 요구했으나 괴선박은 7.62㎜ 기관총을 발사하며 전속력(35노트)으로 달아났다. 

우리군의 계속되는 위협. 경고사격에도 불구, 대응사격하며 도주하는 괴선박이 투항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우리 군은 5시48분부터 10여분에 걸쳐 76㎜, 40㎜, 20㎜ 함포사격을 가했으며 반잠수정도 격렬히 저항했다.
이윽고 5시 58분 남원함이 발사한 함포3발이 괴선박의 옆구리에 명중하였고 계속되는 우리군의 함포사격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반잠수정은 6시20분 침몰하기 시작했고, 우리군은 폭뢰 4발을 발사해 6시50분 북한 반잠수정은 거제도 남방 100㎞ 해상 남해의 찬 바닷물 속으로 격침 시켰다. 최초 발견시부터 7시간35분에 걸친 숨막힌 긴 추격전이 비로소 끝났다. 

<반잠수정 제원>

- 길 이 : 12.53m
  - 넓 이 : 2.95m
  - 높 이 : 1.4m
  - 탑승인원 : 6 - 8 명
  - 속 도 : 40 - 50노트 (엔진 3대, 수면하 20m까지 잠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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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

  • 강철통신이 아니라 강철서신입니다. 강철서신이 전국 대학가에 뿌려지기 시작하면서 당시 ND그룹내 이탈자들이 초기 NL을 형성하고 향후 80년 중후반에 ND와 CA그룹 다수가 NL에 흡수되며 기존의 그룹들이 해체 그 후 남한 학생운동은 NL vs PD 의 양대산맥으로 갈라져 노선경쟁을 시작하죠.
    반김일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주체사상을 잡사상으로 이북은 스탈린식 사회주의 또는 김일성식 번형 사회주의라 하여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던 PD는 NL을 좌파내의 적인 민족주의자, 주사운동가들로 부르기 시작하다 90년대에는 "우파"로 규정지었습니다.
    김일성을 찬양하는 NL은 우익에서나 좌파로 불릴 뿐 실제 좌파들 내 또는 학운에서는 "좌파"라 단 한번도 불리어진 적 없습니다.
    한국의 "좌파"는 PD가 90년대 초중반 기존의 PDR론을 포기하고 고려대와 연세대를 중심으로 대장정, 공동체 등으로 재편되면서 PD라는 외부 명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좌파대오" 라 칭하고 또 NL을 비롯한 운동권내 다른 계파들이 그들의 노선을 인정하게 되면서 정립되게 됩니다.
    김영환이는 NL내 근본주의 주체사상가들의 선생님이었고 노동당 서열은 있었으나 국내 운동세력내에서는 이론가였을 뿐 지휘계통에서 실력을 행사한 적은 없습니다.
    속칭 그저 뽕 맞은 기계들을 양산한 주체뽕 제조가였죠.
  • 김영환은 단순히 북에 가보고 정신차린 것이 아니라 김일성을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이인간은 아니구나! 하였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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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철통신이 아니라 강철서신입니다. 강철서신이 전국 대학가에 뿌려지기 시작하면서 당시 ND그룹내 이탈자들이 초기 NL을 형성하고 향후 80년 중후반에 ND와 CA그룹 다수가 NL에 흡수되며 기존의 그룹들이 해체 그 후 남한 학생운동은 NL vs PD 의 양대산맥으로 갈라져 노선경쟁을 시작하죠.
    반김일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주체사상을 잡사상으로 이북은 스탈린식 사회주의 또는 김일성식 번형 사회주의라 하여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던 PD는 NL을 좌파내의 적인 민족주의자, 주사운동가들로 부르기 시작하다 90년대에는 "우파"로 규정지었습니다.
    김일성을 찬양하는 NL은 우익에서나 좌파로 불릴 뿐 실제 좌파들 내 또는 학운에서는 "좌파"라 단 한번도 불리어진 적 없습니다.
    한국의 "좌파"는 PD가 90년대 초중반 기존의 PDR론을 포기하고 고려대와 연세대를 중심으로 대장정, 공동체 등으로 재편되면서 PD라는 외부 명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좌파대오" 라 칭하고 또 NL을 비롯한 운동권내 다른 계파들이 그들의 노선을 인정하게 되면서 정립되게 됩니다.
    김영환이는 NL내 근본주의 주체사상가들의 선생님이었고 노동당 서열은 있었으나 국내 운동세력내에서는 이론가였을 뿐 지휘계통에서 실력을 행사한 적은 없습니다.
    속칭 그저 뽕 맞은 기계들을 양산한 주체뽕 제조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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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수수수염티 님 강철통신 김영환씨(씨를 붙이는 것은 개심했기 때문에 예우 차원에서)는 좌파 서열중에서 꽤 높았습니다. 자세한 재료를 올릴려면 자료를 보고 올려야 하기 때문에... 유시민이 같은 종자들은 당연히 김영환씨를 배신자로 부르겠죠. 믿었든 동지였으니까요. 남한의 좌파들 평양 가서 자기눈으로 직접 보고 나면 우리가 떠받들 것이 이거였나 하면서 바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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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오래전 Pcc로 군근무중 제주도 앞바다 상 새벽에 실전으로 최대속역으로 40~50노트 고속함을 추적한이 일이있습니다.저는 다른 담당이라 나중에 함교당직자에게 물으니 달도없어 칠흑같아서 사통카메라에도 항적이나 불빛 그냥 아무것도 안나왔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실격파사격을 하려면 목표물에 대한 보고와 작사의 정식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결국 1시간 추적후 목표를 소실 했습니다. 나중에 새때라고 합참에 보고했겠지만 천천히 이동하던 목표물이 본함과 반대방향으로 갑자기 속력을 높이며 공해상으로 직선으로 이동했다는 전탐의 이야길 들은 저로서는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끓어오릅니다. 사람은 여러가지를 종합해 판단하는 감이란 것이 있죠. 날으는 새때에 6단 기어와 GPS가 달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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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함의 격침일화를 보면 (당시 광양함장수기) 반잠수정의 속력이 워낙 빨라서 거진 놓치기 일보직전이였습니다 다행이 기관의 상태가 좋아 지속적으로 속력을 내주었고 반잠수정이 지그재그로 미친듯이 도망가서 함포를 엄청나게 소비한후 격침시켰습니다 그런데 인양해보니 명중탕은 이쩜칠오인치라켓이였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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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철통신 김영환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유시민 팬까페 가니 그사람이 배신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던데요. 자유와 평등을 배신했다나 어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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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고아제 님.. 반잠수정이 단독으로 온게 아니라.. 모선에 실려서 내려와선 인근 공해상에서 분리해서 침투한것입니다.. 저런 쪼매난 반잠수정으로는 지 혼자 못내려 와요..
    도를아심니까 님... 그 둔덕동에 제가 근무했었다는 사실,,,,화양면 백야도 앞에 있는 초소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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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 잠수정이 남해까지 갈 정도면 배령도까지 오는 것은 따뜻한 죽 앉아서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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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철통신 김영환씨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네요. 그분 평양 다뎌와서 개심했죠. 하옇튼 남한내 친북 좌빨들 죄다 평양 견학 좀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99%는 개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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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작 해군에서는 광명함이 격침시켰다고 공식적인 인정을 합니다 에스투는 01년 퇴역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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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기억으론 침투 정보가 어느정도 있어 경계태세 유지한 상태였습니다. 다만 어디로 오느냐였는데.. 초병이 tod로 잘 잡아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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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d의 위력이 잘 보여졌던 사건이죠. 당시 공개된 tod화면 보면 무슨 영화의 장면처럼 반잠수정과 승조원들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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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당시 강원함에서 근무할때이군요.
    반잠수정 침투하기 며칠전에 첩보가 잇엇던걸로 알고잇습니다
    강원함에 1함대에서 작전사까지 내려가서 거기서 다시 5일인가 대마도 부근까지
    작전 구역이엇던걸로생각댑니다. (정확한거는 모르고 부근섬이 대마도라고해서 추정)
    제가 1직(12시부터 4시당직) 당직서고 취침 얼마후 5시정도에 전투배치가 붙엇던걸로 기억이....
    이병5호봉(이병도 호봉이 잇나?????) 이엇을땐대 진짜 긴장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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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기간중 정말 헬기는 징그럽게 본 기억이.. 학교위로 헬기 2대씩 짝지어서 60으로 기억하는데 치누크가 105mm 포 가지고서 이동하는것도 보고... 군함들도 많이보고 ``;; 해경정도 정말 많이본 ㄱ-..

    섬에 근무하는 해양경찰 소속 소초장님과 군인형 2분이서 군화신고 완전무장상태로 대기하시던...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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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 저역시 저때 여수 월호도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학생이였는데.. 대학생활중에 둔덕(여수에 본대는 둔덕)에 근무했던 형이 저랑 대학동기로 공부를 했는데... 저당시 일병이었는데. 일화가 있더군요.
    저날 전군에 비상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갓들어온 이병과 이제 내일 모래하는 병장하나와 같이 tod 초소를 지키는데... 병장이 옥상가서 취침하는 도중에 이등병은 이리 저리 돌리다가 걸렸다는군요(발견)... 결국에 이등병이 상병때까지 들어오자마자 나갓다고 옆에서 들었습니다. 정말 헬기타고 집에갔다는 말이 사실로 밝혀진 일화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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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영화화 하거나 기록화로 그림그린다면 정말 스펙터클한 구도가 나오겠네요. 야간에 해상에서 불뿜는 수많은 예광탄의 궤적과 조명탄의 비 속에서 로켓을 쏘는 F-5와 S-2 (당시라면 NVG도 없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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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2E 는 사통장치가 전혀없고 조종석 글라스의 표시선과 가늠자로 조준합니다
    대단하죠 전직 S-2 조종사분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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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ㄴ 대단한 S-2 조종사셨네요. 전투기도 아닌 프롭기로 그것도 야간에 이렇다할 사통장비라고 할것도 없는 기종일텐데(자이로 연동되는 광학조준기는 있겠죠?) 미사일도 아니고 로켓으로 길이 12.5 미터짜리를 명중시키다니 대단한 기량과 배짱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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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 안 드나들까나....?

    얼마전 우리 특수해군이 저런류의 정으로 훈련하다 침몰되어 몇명이 죽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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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 90년대까지 북괴 반잠수정이 서해뿐 아니라 남해, 부산까지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지금도 간첩들 실어나르고 있을 지도 모르죠. 지금은 전향했지만, 당시 강철통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씨도 반잠수정타고 북한 가서 노동당 입당하고 김일성 만나고 왔었죠.
    한마디로 옆집 놀러가듯이 들락날락 했다는 얘기... 과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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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당시 군생활했는데 반잠수정을 발견한 TOD병이 이등병이었다능....
    전부 국방일보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군생활 시작하자마자..
    쫑냈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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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사건 때 현장에 있었죠.
    지금은 퇴역한 751 동해함 ESM 요원으로 근무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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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뻘소리이긴 하지만 저 지역 지도를 보면 정말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대단한 지략가였는지가 정말 여실히 느낄 수 있더군요... 정말 완벽하게 틀어막고 앉아있었으니 왜군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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