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1월 20일 이산들와나(Isandlwana) 고지, 영국군과 줄루군간의 최초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창과 총의 싸움이었습니다. 현대적 무기체계도, 통일된 지휘 조직도 필수적인 병참 시스템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줄루 군대였지만 민족의 독립을 지키려는 의지만큼은 확고 했습니다. 영국군의 압도적 화력은 처음에는 줄루 전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지만 전우들의 목숨을 댓가로 영국군들에게 다가간 줄루 전사들은 근접전에서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든 줄루 전사들의 공격으로 24연대는 괘멸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이산들와나에 주둔하고 있던 24연대 예하 6개 중대 가운데 불과 10여명만 살아서 도망쳤고 스물한명의 장교들이 현장에서 전사했습니다. 1,800여명의 영국군 병력이 전멸하고 극소수의 생존자만 뿔뿔히 전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승리를 거둔 줄루군의 피해도 막대했습니다. 2천명의 줄루 전사가 목숨을 잃었고 또다른 2천명이 상처로 죽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숫자는 전체 줄루 군대의 10%에 달하는 규모였죠. 줄루의 왕 케츠와요는 이산들와나 전투의 승리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민족의 가슴에 아세가이(줄루족의 짧은 창) 한 자루가 꽂혔습니다. 전사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1월 22일 로크스드리프트(Rorke's Drift), 영국 24연대 2대대 B중대 병사들과 이들을 포위한 4천의 줄루 전사들 사이에 전투가 벌어집니다. 상황은 영국군에게 불리했습니다. 요리사와 행정병, 마부를 모두 끌어 모아도 병력은 139명뿐이었고 이밖에 35명의 부상병들이 영국군의 전부였죠. 로크스드리프트의 지형도 수비군에게 불리했습니다. 영국군이 방어 거점으로 삼고 있는 농장 건물은 삼면을 차지한 줄루군이 내려다 볼 수 있었고 풀을 엮어 만든 건물 지붕은 쉽게 불이 붙을 것이 뻔했습니다. 농장 주변의 여러가지 장애물들도 줄루 전사들의 몸을 숨겨주어 영국군의 사격을 방해했습니다. 환자들을 데리고 후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영국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방어전을 결심합니다. 창고에 있던 비스켓 상자와 옥수수 자루를 쌓아 방어선을 만들고 병원벽에 구멍을 뚫어 환자들도 수비에 가담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16시간의 전투는 영국군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줄루군 전사자의 숫자는 최소 800여명에 이르렀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기어가다 숨져간 전사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영국군의 피해는 열 다섯명 전사에 열두명 부상이었습니다. 병력에서는 열세지만 압도적인 화력과 현대적인 병참 지원을 받는 제국주의 군대가 승리한 로크스드리프트 전투는 19세기 후반의 식민지 전쟁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곧 크게 증강된 병력으로 피비린내나는 보복전을 감행합니다. 캄볼라(3월 29일), 깅긴돌부(4월 2일), 그리고 줄루족의 수도 울룬디(7월 4일)에서 세 차례의 정면 대결을 벌인 후 영국은 마침내 줄루 왕국을 정복하고 열 세개의 작은 나라로 분할 합니다. 6개월 남짓한 전쟁 기간동안 1만명 이상의 줄루 전사가 죽어 갔고 그 이상의 전사들이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축들은 죽거나 흩어지거나 약탈 당했습니다. 영국의 침략은 마침내 하나의 독립 왕국을 지도상에서 지워 버렸고 하나의 생활방식 전체를 완전히 말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