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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모델 비핵화’와 북한식 핵사찰 검증 [KIMS PERISCOPE 141호]

  작성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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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03 14:13:29



‘김정은 모델 비핵화’와 북한식 핵사찰 검증






해 군 중 령


최 정 현






최근 비록 연기되긴 했으나 이미 합의된 북미 고위급 회담과 그에 이어질 실무회담, 그리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 등 북한의 비핵화 협상 일정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북미 간 비핵화 협상들을 통해 충분한 수준의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북한이 추구하는 비핵화의 모습이 점차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이 추구하는 비핵화 방식은 ‘김정은 모델’로 불려지기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북한의 협상방식이나 주장들에서 과거 이라크∙리비아∙ 우크라이나 등의 비핵화 방식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현격한 차이가 다수 발견되기 때문이다.

  첫째, 합의방식 자체가 이전의 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간 비핵화 합의들에서는 합의사항의 범위와 수준, 그리고 이에 따른 신고 및 통보, 검증과 사찰 방식 등 핵심사항들에 대한 합의가 먼저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먼저 부분적인 사항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이행, 이후 점진적으로 높은 수준의 합의로 이행해가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북한이 그간 주장했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조치를 구현할 수 있는 협상 방식인 셈이다.

  둘째, 북한은 타국에 의한 ‘강제성’보다는 ‘자발성’을, 상대방의 요구에 순응하는 ‘신고’보다는 자국의 결정에 따른 ‘통고’의 형태대로 진행되는 사찰여건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사례들과는 달리 사찰과 검증의 조건과 방식을 사찰을 받는 국가가 규정하는 방식이다. 북한은 비핵화의 개념적 실체에 대해서는 합의를 회피함으로써 검증방식과 사찰유형에 얽매이는 상황을 피하고 있다. 한편, 비핵화의 부분적 쟁점들을 부각하며 협상이슈들을 파편화하여 협상테이블로 올리고 있다. 사찰과 검증에 대해서는 “이번에 우리가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사찰을 받을 용의가 있으니 사찰을 원하면 이러이러한 조건을 수용하고 그러한 조건에서 사찰하라”는 일방적 통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찰과 검증에 대해 피사찰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셋째, 검증과 신뢰의 관계에 대해서도 피사찰국의 인식과 입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수 많은 군비통제·신뢰구축 레짐들을 통해 ‘검증을 거쳐 신뢰가 확인되는 기제’(先검증 後신뢰)를 규범화 하였고 이에 맞게 제도적 절차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북한은 ‘신뢰가 있어야 사찰과 검증에 응할 수 있다’(先신뢰 後검증)는 입장을 고수하며 신뢰를 사찰과 검증 이전 또는 중간 단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서구에서는 검증을 통해 ’confidence’(확신)가 확인되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trust’(신뢰)가 얻어지는 것으로 인식하므로 ‘confidence’와 ‘trust’는 상이한 개념이다. 반면, 북한은 이를 모두 ’신뢰‘라는 단어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어 북미 간 개념 불일치가 발생한다.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협상의 기저에는 ’신뢰‘와 ’검증‘에 대해 이와 같은 ’닭과 달걀 논쟁‘이 깔려있다.

  넷째,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 검증에 있어 강제력 있는 검증방식인 침투성이 있는 현장사찰을 시행하고자 할 경우, 매우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검증의 목적은 피사찰국이 신고한 내용들에 대해 상대방이 완전성 (completeness)과 정확성(correctness)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검증은 상황과 여건에 맞도록 적절해야 하면서도(adequateness) 검증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적(effectiveness)이어야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 최대수준∙적정수준∙최소수준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수준을 판단하여 검증을 시행하게 된다. 그런데 효과적인 검증을 위해서는 강제성(침투성)을 동반한 사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지역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높은 강제성이 동반된 침투성 있는 사찰을 강행하고자 할 경우 그 반대급부로 북한이 핵무기를 은닉할 개연성이 증대됨으로써 핵무기의 안정적 관리가 더욱 취약해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아울러, 침투성과 강제성 높은 사찰이 시행될 경우, 사찰을 받는 북한의 임의지역·시설에서는 담당자(대부분 군인)들이 현장사찰에 대한 대비가 미처 되어 있지 않아 사찰 간 고도의 긴장상황 조성과 우발적인 사건(예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할 위험성 또한 높아진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과 이해당사국들의 첨예한 입장 차이를 고려하면 이번 북한의 비핵화에는 기존 사례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수한 비핵화 협상방식과 북한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한 다음과 같은 사찰과 검증 방식이 논의될 가능성이 많다. 첫째, 사찰 대상 시설의 종류∙ 대상 지역의 지리적 범위∙사찰기간과 방식 등을 북한이 먼저 제시하고 사찰단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그간 사찰팀이 임의로 사찰일자와 대상을 정하고 피사찰국 영토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던 ‘기초사찰’(Baseline Inspection)이 생략되거나 대폭 변형된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다. 둘째, 북한이 신고한 시설과 기지에 대한 ‘신고기지 현장사찰’(Declared Site Inspection)도 다른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기존 방식은 피사찰국의 신고내용을 바탕으로 ‘사찰국의 사찰의도통보(사찰 수일전)→피사찰국 입국→피사찰국 호송팀 상봉→사찰방식 협의 및 사찰대상 지역 지정→사찰대상지역 이동→현장사찰 실시→사찰 보고서 작성→복귀‘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와는 달리, 북한은 사찰을 수용할 준비를 마친 기지와 시설들에 대해 ’사찰 개방 의도 통고→사찰단 입국→현장사찰(지정된 지역에 대해 지정된 시간 내)→사찰보고서 작성 → 복귀‘의 형태로 진행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셋째, 북한은 미국이 보유한 ‘국가기술수단’(National Technical Means) ―즉, 북한 핵능력과 시설 전반에 대해 미국이 자체적으로 축적한 정보와 이를 위한 기술적 수단을 검증에서 배제할 것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미국은 순전히 북한이 제공한 신고목록만을 갖고 북한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북한이 주도하는 사찰과 검증에 ’참관‘하고 ’확인‘하는 정도의 검증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들은 요약하건대, 북한 자신이 통제 가능한 형태 ―그러므로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의 비핵화 신고와 검증방식이다. 미국은 이와 같은 ‘김정은 모델’의 비핵화 방식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충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원칙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 미국의 INF 조약 파기 우려로 인해 국제 군비통제 동향마저도 불길한 기운을 형성하고 있다. 북한입장에서 볼때에는 이미 합의된 군축조약에 대한 이행에 대해 미국의 신뢰가 더욱 추락하는 한편, INF 조약의 폐기로 유럽지역에서 미-러 갈등심화, 아태지역에서 미-중 군사력 경쟁 노골화와 중국→인도→파키스탄의 도미노적 안보딜레마 상황이 강화되어 역내 핵전력 증가와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의 군비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 이는 북한 비핵화에 매우 해로운 안보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북미 고위급 회담 연기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검증과 사찰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신경전은 새삼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이미 뒤늦은 그림이다. 과거 이란 비핵화 사례는 비핵화 과정에서 상대방을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었지만 과거와 현재의 북한이 보여준 협상행태는 효과적인 검증기제가 북한과의 합의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을 또한 훈계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약력

최정현 중령(jounghyun_choi@hotmail.com)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석사와 영국 레딩대에서 박사학위(전략학 전공)를 취득했다.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에서 국제군비통제협력담당과 해상무기검증담당 업무를 수행한바 있다. 현재 해군본부에서 국제연락담당으로 근무중이며 국제기구 및 국제안보∙군비통제와 해양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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