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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몹시 좋아했지만 독일을 패망으로 이끈 '소련의 여성 스파이'

1boon 작성자: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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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4-28 17:41:56


히틀러가 몹시 좋아했지만 독일을 패망으로 이끈

'소련의 여성 스파이'


히틀러가 죽을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소련 스파이 '올가 체코바'










히틀러가 오랫동안 공들이며
독일의 승리를 확신했던
쿠르스크 전투



하지만 독일의 쿠르스크 침공 계획을


미리 소련에 알린


여성 스파이가 있었습니다.






독일 여배우 '올가 체코바'




독일을 패망의 길로 이끈 여인
아돌프 히틀러의 신임을 받았던 독일 여배우


'올가 체코바'입니다.



독일 남성들의 우상이자 독일 영화계의 스타였던


올가 체코바의 진짜 정체는
소련 스파이였습니다.








올가 체코바와 그녀의 딸




- 그녀가 스파이가 된 이유



1897년 소련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올가 체코바는 처음부터 스파이로 활동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에겐 딸이 하나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희귀병을 가진 아이를 포기하자는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혼해 홀로 아이를 돌보고 있던 올가에게 한 남자가 접근합니다.


그는 바로 소련의 군사정보국장 '라브렌티 베리야'






스탈린의 심복 라브렌티 베리야




라브렌티는 올가에게 "딸의 모든 치료를 지원하겠다" 약속하고 그 대가로 나치의 기밀을 빼오는 스파이 임무를 제안합니다.


그는 올가의 부모가 게르만족인 것을 알고 독일 스파이 임무에 적합하다 판단했던 것이죠.


결국 올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1922년 소련 정보국 첩보요원으로 독일에 투입됩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를 앞세워 독일 영화계에 진출한다.




- 독일 영화계 스타가 된 올가 체코바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를 앞세워 독일 영화계에 진출합니다.


탁월한 연기력과 대중을 사로잡는 외모로 올가 체코바는 독일 남성들의 우상이 됩니다.


미국의 마릴린 먼로가 있다면 독일에는 올가 체코바가 있었습니다.


영화배우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올가 체코바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었고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눈에도 들어오게 됩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올가 체코바




- 아돌프 히틀러와의 만남



1933년 선전장관 괴벨스의 소개로 아돌프 히틀러와 첫 만남을 가집니다.


히틀러 역시 독일 영화계의 스타였던 올가의 팬이었습니다.


더불어 히틀러는 부모가 게르만족이었던 올가를 신뢰했습니다.


히틀러와 올가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히틀러는 최고급 연회에 올가와 대동하는 등 올가를 신임하고 아꼈습니다.






연회에 참석한 히틀러와 올가




- 히틀러의 신임을 얻은 그녀



히틀러의 일부 측근들은 소련 출신인 올가를 의심했지만 히틀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와 더욱 가깝게 지냅니다.


올가는 히틀러와 가까워질수록 스파이 임무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딸의 치료를 위해 첩보활동을 이어갑니다.






독일 폭격기 부대를 방문한 올가 체코바




- 독일을 패망의 길로 이끈 그녀의 결정적 첩보



히틀러와의 관계를 이어가던 중 올가 체코바는 히틀러에게 엄청난 정보를 듣게 됩니다.


이른바 치타델레(Zitadelle, 성채) 작전, 쿠르스크 침공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입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더불어 독소전쟁 최장의 싸움터였던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계속되자


독일은 어떤 식으로든 독소전쟁의 주도권을 빼앗아와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히틀러는 1943년


야심 찬 반격 계획을 세우고
은밀하게 대규모 전차전을 준비합니다.



이 전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전차전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쿠르스크 전투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했던 독일이었지만

 

소련에게 패하고 맙니다. 



쿠르스크 침공 계획을 첩보를 통해 미리 알고 있던
소련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독일군은 벌어지는 전투마다 수세에 몰리며
급격히 패망의 길로 빠집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한 독일군

 

 

 

1945년 5월, 독일이 패망하며
전쟁은 완전히 종식됐습니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1938년의 아돌프 히틀러 초상사진 


 

 

전쟁이 끝난 후 올가 체코바는
1945년 딸이 있는 소련으로 돌아갔고



히틀러는 죽는 순간까지



올가 체코바의 배신을

 

알아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가 체코바와 그녀의 딸
 


 

[ 히틀러가 자살한 베를린의 지하벙커 ] 

 



< 희대의 대전차전, 쿠르스크 전투 사진 보러 가기 >

 

< 대(大)전쟁 최장의 싸움터, 레닌그라드 전투 >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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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best 밤늑대아홍 2017-05-13 추천 5

    현재도 한국 정부기관이나 사업체에 암약하는 북한과 중국의 간첩들을 주의해야할텐데요.
    최소 5년간은 무리겠죠?

  • 노래 2017-07-12 추천 0

    우리나라 현실을 보는것 같습니다. 북한에 올라간 남성들이 미인계에 포섭된 경우도 있다하니 북한 입장에서 남한에 북한의 휴민트가 있다면 상당히 골치아플겁니다. 게다가 중국인들의 스파이 능력은 알아줘야 하니....

    국정원을 강화해도 모자를판에 트럼프가 중국과 외교를 단절 시키는 생각가지 가고 있다면 남북한의 대화는 오히려 트럼프가 남한을 배척할 좋은 먹이감인지도 모릅니다.

    거꾸로 생각을 해보았어요. 전시작전권이 환수되면 오히려 미국이 북한을 단독으로 치고 갈수 있는 명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전에도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려했지만 남한 정부에서 반대를 한 기억을 미국인들은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시 작전권이 환수되면 남한의 눈치 안보고 단독으로 북한을 칠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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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죠니 2017-05-13 추천 0

    히틀러가 동성애자라느니 하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헛소문이었군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긴 하지만,,, 경국지색(傾國之色) 정도는 아닌거 같은데...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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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늑대아홍 2017-05-13 추천 5

    현재도 한국 정부기관이나 사업체에 암약하는 북한과 중국의 간첩들을 주의해야할텐데요.
    최소 5년간은 무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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