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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전투기의 충격적인 한국 민간 여객기 공격 사건들

작성자: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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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3-20 09:22:01


소련 전투기의 충격적인 한국 민간 여객기 공격 사건들


5년 새 소련 전투기들이 두 차례나 우리 민간 여객기에 미사일 공격을 했다는데






1978년 4월 20일


파리 → 서울행 대한항공 902편은


승무원, 승객 110명을 태우고 경유지인 미국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 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출처 : 위키미디어 / 대한항공의 보잉 707기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을 출발해 미국 앵커리지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KE902편은


북극에서 400마일 떨어져 있는 캐나다 공군 기지를 통과 후 무슨 이유에서 인지 갑자기 항로를 바꿔 소련령 무르만스크로 향했다.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한 KE902편은 소련 레이더에 포착됐고 소련 공군은 미 공군 정찰기로 오인해 즉각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KE902편의 예정된 비행 루트(파란색)과 급선회한 비행 루트(빨간색)





소련 전투기 수호이 SU-15와 KE902편 / 출처 : 위키미디어




소련 측에 따르면 수호이 전투기가 KE902편에 비상신호와 유도 착륙 사인을 보냈지만 이를 무시하였고 결국 상부 명령에 따라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두 발 중 한 발이 비행기 왼쪽 날개에 맞으면서 KE902편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기내는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당시 KE902편 기장, 故 김창규 기장은 가까스로 얼음이 언 호수에 비상 착륙했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다. 미사일이 날개 아닌 동체에 명중했다면 전원이 사망했을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한국인 1명, 일본인 1명이 사망했다.






무르만스크 인근 호수에 불시착한 KE902편










< KE902편 사고 사진 더보기 >




GPS가 보급되기 이전으로 당시 여객기는 관성 항법 장치로 항로를 계산하였다.


하지만 KE902편은 이 장치가 고장나 나침반에 의존해 운행하다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자 2명이 발생했지만 큰 화를 면했던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이었다.



. . .



그리고 5년 후...


데자뷰처럼 똑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 → 서울행 대한항공 007편은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을 출발, 앵커리지를 경유해 김포공항으로 오고 있었다.





출처 : 위키미디어 / 대한항공 HL7442 사고기




5년 전과 비슷하게 KE007편은 세 대의 관성 항법 장치 중 한 대가 고장 나면서 정상 항로를 이탈했고 또 소련 영공을 침범하고 말았다.


1978년 사건이 있은 이후로 소련은 대공 방어력을 강화한 상태였고 레이더에서 KE007편을 발견한 소련은 곧바로 전투기를 출격시킨다.






점선이 원 항로, 실선은 실제 운항 항로다. KE007편은 사할린에 추락했다.





소련 전투기 수호이 SU-15 / 출처 : 위키미디어




당시 출동한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유도 착륙시키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여객기에 300m까지 근접, KE007편과 같은 고도로 날아가면서 수차례 유도착륙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KE007편은 비행을 계속했고 경고 사격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조종사는 정찰기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결국 KE007기는 소련 영공인 사할린 상공에서 SU-15 전투기에서 발사된 열 추적 미사일에 격추됐다.








출처 : 유튜브 TV조선 동영상 캡쳐





출처 : 위키미디어




1983년 9월 1일, KAL 007편 점보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추락, 타고 있던 승객 269명 전원 사망하였다.


이 소식을 보고받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며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비난하였다. 더불어 반소련 감정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 출처 : 위키미디어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계속되자 소련은 사건 발생 5일 만에 KAL기 격추를 인정했다.


이 사고로 비행기에 탑승했던 269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지만 조종사 과실이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족들은 제대로된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많은 희생자를 낳았지만 소련은 해명은 커녕 사고 책임도 회피했다.






일본 소야곶의 KE007 사고 위령탑 / 출처 : 위키미디어




소련의 만행에 분노한 레이건 대통령은 군사용이었던 GPS 민간 개방을 선언했고 GPS가 도입되자 자동항법장치의 성능도 크게 향상됐다.


1992년, 러시아 정부가 블랙박스 원본을 공개하면서 재조사가 이루어졌고 사고 발생 10년 만인 1993년 6월,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하지만 모든 의혹이 깔끔하게 풀리지 않았으며 탑승객 생존설부터 소련 영공 밖 격추설까지 수많은 가설이 떠돌고 있다.



아직도 정확한 사고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출처 : 유튜브 ReaganFoundation 동영상 캡쳐



로널드 레이건 / 전 미국 대통령


"소련은 269명의 죄없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가 탄 비무장 여객기를 공격했습니다. 비인간적인 이 범죄를 전 세계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 한국과 악연이 깊은 소련 전투기, 수호이-15 >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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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mactruck 16:20:59 추천 0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 자위대 감청기지의 능력이 새삼 밝혀졌고 (소련이 발뺌하자 감청 내용 자체를 공개) 이 때문에 또다른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죠

    소련이 이 감청기지의 능력을 알아보고자 알면서 칼기를 공격했다는....(미,일의 여객기는 차마 노릴수없고 만만한 한국의 여객기를)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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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inze2 2017-03-21 추천 0

    호프만 저서 '데드 핸드'에 보시면........
    우랄 산맥에서 탄도 미사일 시험하면 목적지가 캄차카 반도 되는데..........
    그거 알아볼려고 미군 정찰기가 들어와 요격 전투기 조종사들이 상부로 부터 시달리고.....
    걍 보이는 대로 쏴버린거 같기도 하고......저 사건으로 인해 GPS를 민간에 보급하는 계기가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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