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방

북한의 무력통일이 가능했던 시점과 현재

  작성자: 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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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8-20 13:31:47


박정희는 김일성보고 누가 더 난 사회인지 경쟁하자며 실력배양만이 통일이라고 했다. 

실사구시적인 통일예안이다. 

그게 현실로 이룩된지 오래지만 아직도 북한에 먹힌다고 쩔쩔매는 정신들이 적지않다. 

살아보건데 무력통일가능성은 1975년까지이다. 

당시도 625때처럼 남한이 한심한 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북에 점수를 높게주어서 그렇다. 

또 역사환경상 가능한 시기였다. 결정적인 남북한 힘의 균형추였던 미군은 

닉슨톡트린으로 철수한다고 했고 실제로 인도지나에서는 철수했다. 그리고 공산화되었다. 

이를 본 박정희는 핵개발을 준비했다. 죽지 않기 위해서이다. 

북한도 핵개발본격화는 1991년 소련과 동구권붕괴때부터이다. 

역시 죽지 않기위해서이다. 

둘 다 공격이 아니라 살아남기위한 방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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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무력통일야욕은 죽을 때까지 있었지만 

야욕을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것이 1976년 판문점도끼사건부터이다. 

자존심을 목숨처럼 중시한 그가처음으로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유감표명). 

인도지나에서 분산되었던 미국의 힘이 북한 하나에 집중되면 작살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한편 북한에 비한 남한의 경제력이 이때벌써 확실하게 앞서나가 있었다. 
정리하면 - 
1976년 이전까지 무력통일은 가능하였다고 보며 즉 공격적이었으나 
그 후에는 주춤하다가 
1990년부터는 확실한 방어로 이전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선전의 왕수들이니 겉으로는 끊임없이 전쟁한다고 
소리높혔고 그렇게 믿도록 도발을 연이어 해왔던 것이다. 
이 선전과 위협에 많은 이들이 세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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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한마디로 거짓이념이다. 
특히 북한공산당이 가장 톱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정답은 그 반대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속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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