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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독자개발 소화기 K-1 기관단총 read:165 vote:2

기타 작성자: 양욱
조회: 10777 추천: 1 글자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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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10-28 20:28:25

K-1의 탄생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DD(Agency of Defense Development; 국방과학연구소)는 '군의 기본화기인 소총을 한국 자체 기술로 개발하여 국내 방위산업의 기반 기술을 확보하라.'는 지시에 따라 XB소총(프로젝트명)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로서 M16을 대체할 국내독자기술의 차세대 제식소총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특히 육군 특전사령부가 1976년 5월 M3 그리스건(2차대전과 한국전에서 사용하던 그 기관단총)을 대체할 신형기관단총을 요구함에 따라, 1977년부터 6년에 걸쳐 ADD와 부산조병창을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45 ACP탄의 위력부족과 군수지원상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 5.56mm 구경의 탄을 사용하는 안이 채택되었고, 미국의 XM-177E2와 비슷한 성능과 MP-5정도의 간편한 휴대성을 지닌 K-1이 탄생하게 되었다. 소위 CAR-15로 대표되던 '5.56mm 기관단총'이라는 무기체계를 우리 한국군도 채용한 것이다.

1980년 시제품의 생산에 성공한 K-1은 1981년, 대한민국 국군의 제식무기체계로 채택되면서 양산에 돌입하게 되었고 단축형 자동화기가 절실하던 특전사 각 여단 등의 특수부대를 우선 순위로 보급이 시작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이 최초로 독자개발한 개인용 소화기라는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초기형의 K-1에서는 M3A1의 영향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원추형의 소염기와 접철식의 개머리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2가지는 K-1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우선 원추형의 소염기(나팔 소염기)는 사격시 섬광과 소음이 너무 심해, 위치가 너무 쉽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총구의 반동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접철식 개머리판 역시 M3A1과 거의 비슷한 굵기의 철심으로 제작되어 있어 45 ACP탄의 반동에서는 무리가 없던 것이 5.56mm탄을 사용할 때에는 강도가 부족했다.

이에 따라 K-1 기관단총의 단점을 보완한 K-1A기관단총이 생산되었다. 즉 K-1A 기관단총은 총구앙등억제 소염기를 채택, 소염기의 구멍을 우상방으로 3개만을 만들어 사격시 우상방으로 들리는 총의 반동을 효율적으로 억제시키고 사격시 생기는 화염을 1/3 이하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K-1A는 연발명중율을 향상시키고 탄약 소비절감을 위하여 3점사 기구까지 채택하여, 현대적인 총기로 거듭났다. K-1A 기관단총은 1982년부터 보급이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현재 일선에 배치된 총기이다. 물론 기존의 K-1들도 K-1A로 재개조되었다.

매우 훌륭한 총기이지만 철선의 개머리판은 연발사격시 든든한 지지대가 되지는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미군이 채용한 M4A1 기관단총처럼 다양한 조준경 및 부가장비를 장착할 수 있도록 피카트니 레일과 같은 기구들을 장착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노련한 특수부대원들은 실전에서 총구의 앞부분에 사제 권총 손잡이(대부분은 대걸레자루를 활용한 것)를 붙여서 사격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K-1 기관단총은 특수부대 이외에도 군 간부, 전차탑승원 등 컴팩트한 총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지급되며, 또한 현재 지방경찰특공대에서도 주력화기로 쓰이고 있다. 한편 K-1의 우수한 성능을 바탕으로 K-7 소음기관단총이 개발되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제원]
제작사 : 대우정밀 / 구경 5.56mm NATO탄 (KM193) / 전장 : 653mm (확장시 838mm) / 총신 : 232mm, 6조우선 / 중량 : 2.87kg / 장탄 : 20발 or 30발들이 탄창 / 발사율 : 분당 700-900발 / 사진해설 : 수중침투중인 해병 특수수색대원이 수면으로 튀어올라 K-1A 기관단총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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