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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땀·모래범벅의 알라메인 격전지 (13)

전사적지_답사기 작성자: 부국강병조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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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2-11 11:07:01

·땀·모래범벅의 알라메인 격전지 (13)




1942년 11월 1일, 지중해 연안 엘 알라메인 사막은 피빛으로 물들었다.


7월부터 연합군ㆍ추축군(독일ㆍ이탈리아)간

밀고 당기는 처절한 전투가 4달 동안 계속되었다.


이날 새벽 영국공군 조종사 '멋진남' 중위는 전선상공을 초계비행 중 이었다.


이때 갑자기 사하라사막의 시커먼 모래폭풍이 몰려 왔다.

급하게 조종간을 꺽으며 회피기동을 시도했으나 항공기는 폭풍에 휘말렸다.






콕피트를 모래알이 우박처럼 때리는 순간 엔진이 멈추었다.


P-40(Shark mouth) 미국산 전투기 동체ㆍ엔진은 튼튼했지만

트럭을 뒤집는 거센 모래폭풍 앞에는 추풍낙엽이었다.


'멋진남'은 최후수단으로 불시착을 결심했다.

그러나 바퀴까지 말을 듣지않아 일말의 행운을 기대하며 동체착륙을 시도하였다.


"쿵!" 소리와 함께 항공기는 스키장 고난도코스에서

미끌어지듯 모래바닥 위를 달렸다.


조종간을 꽉 잡아 수평을 유지하며 브레이크를 힘껏 밟는 순간
깊은 모래구덩이에 쳐박히고 말았다.






조종석에 꺼꾸로 매달린 '멋진남' 중위의 희미한 의식속에는

런던 템즈 강변에서 미래를 약속했던 약혼녀 얼굴이 스쳐갔다.


뒤이어 거대한 해일처럼 몰려온 모래더미가

뒤집힌 항공기를 사정없이 덮어 버렸다.


25세 꽂다운 영국청년의 인생은 이렇게 사하라사막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7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2017년 이 사연과 관련해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집트정유회사가 사막탐사작업 중

우연히 모래더미에 파묻힌 '멋진남' 전투기 동체를 발견했다.

사막기후로 항공기는 녹슬지 않았고 원형 그대로였다.


곧바로 이집트공군 정비창의 복원작업을 거쳐

2017년 알라메인전투 75주년 기념행사 시

이곳 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정확하게 '멋진남'은 100세 되는 해에 환생했다.


물론 전투기 추락과정은 아무도 몰라
필자가 상상한 시나리오다.






알렉산드리아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알라메인은

제2차 세계대전 시 '이집트의 낙동강방어선'이었다.


1940년 9윌 18일, 뭇솔리니는 이집트침공을 명령했다.


당시 국경을 접한 리비아는 이탈리아식민지였다.

뭇솔리니 군대의 진격은 초전에는 순조로왔으나 영국군을 만나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다급한 지원요청에 독일군이 건너왔다.


1941년 3월 24일, '사막의 여우' 롬멜의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알렉산드리아ㆍ수에즈운하를 향해 진격했다.


이집트를 점령하면 영국은 인도양 보급선이 차단된다.

'사막의 생쥐' 영국군 몽고메리 장군은 결사적으로 독일군을 저지했다.


이집트~ 리비아~튀니지에 이르는 1000Km 이상의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치열한 전투가 10개월 간 벌어졌다.


결과는 연합군 승리.






롬멜의 결정적인 패배요인은 군수지원부족이었다.


기갑전투의 생명수 유류와 수리부속은 이탈리아ㆍ그리스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면서 연합군 해ㆍ공군에 의해 거의 수장되었다.

 

이 지역전투 사상자는 연합군ㆍ추축군을 모두 합쳐 무려 84만명.

물론 북사하라ㆍ지중해전투 전부를 합친 통계일 것이다.


북아프리카전투에서 이집트는 리비아국경 초기전쟁외 전투부대참전은 없었다.
군사박물관의 이집트군전시실은 후방지원내용만 언급되어 있다.






알라메인 전장터는 처참했다.


불볕 더위의 사막전투에서 식수공급이 중단되자 대부분 병사들이 발작상태에 이르렀다.
땀과 때에 찌든 군복은 모래에 비벼 세탁했다.


지역풍토병까지 만연했고 신선한 야채의 절대부족으로

롬멜 장군까지 위장병과 황달에 걸렸다.


뜨겁게 달구어진 전차안 주포사격 시 실내공기는 섭씨 80도까지 치솟으며

탈진한 병사들이 졸도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영국ㆍ영연방국가. 독일, 이태리, 리비아 등 각 국가별 전시관은

전투실상ㆍ참전 및 피해규모ㆍ장비ㆍ복장 등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피아 혼전간 의료진은 적ㆍ아군부상병들을 가리지 않고 치료했다.

심지어 쌍방전사자들이 같은 묘역에 안장되기도 했다.


지중해연안 알라메인 군사박물관은 한산했다.

알렉산드리아~마트흐르 도속도로 중간에 내려 도보로 박물관까지 가야 한다.

근처에는 영연방ㆍ독일군ㆍ이태리군 전사자묘역이 있다.


이 박물관은 해마다 참전국 정상들이 모여 그날의 참상을 반성하고

우호친선을 다짐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물관 주변벽면에는 50ㆍ60ㆍ70 ㆍ75주년 기념비각과 VIP어록들이 새겨져 있다.

의외로 벽면에 "평화!"라는 한글도 표기되어 있었다.


인류역사나 개인인생 역시 끊임없는 반성과 참회로 조금씩 발전해 간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다.


어느 국가나 5ㆍ10년 같이 정주년이 되는 역사적 사건은

대대적인 행사로 그 의미를 되새긴다.


한국전쟁(6ㆍ25전쟁)도 70주년행사를 통해 명확하게

전쟁책임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어설픈 내전론(Civil war)으로 남북 500만 사상자를 낸 전쟁참화의 책임을

쌍방과실로 돌리려는 황당한 주장을 뿌리뽑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는 누구보다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음에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각별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생존 참전용사 평균연령은 89세.

휴전 후 북한에 강제억류된 국군포로 6만 중 현재 생존자는 500명 내외(추정)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적에게 포로가 된 군인을

70년이 지나도록 자국으로 송환하지 못한 국가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황량했던 알레메인 사막은 최근 거대한 "뉴 알레메인" 도시건설이 한창이다.
지중해 해변에는 40~50층 높이의 빌딩까지 신축되고 인근에는 신공항까지 완성되었다.






알렉산드리아~알라메인 100Km 해변에는 리조트ㆍ콘도가 줄지어 있다.
여름 2~3개월만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은 텅텅 비어 있단다.

짧은 기간의 수익으로 이 엄청난 휴양시설이 유지 가능한지가 정말 궁금했다.


박물관장은 현역 대령이고 행정장교는 중위였다.

관장은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약 200Km정도 떨어진

마트르흐(Matruh)의 롬멜장군 지휘소벙커 답사를 권유한다.


관심을 표하자 버스정류소로 가는 택시를 불러준다.
한참 후 달려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인원ㆍ화물적재용 경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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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Million 2020-02-17 추천 0

    부국강병조국통일'님은 현재 우리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보입니다.

    남북한은 휴전중입니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게 아닙니다.
    전쟁책임에 대한 부분은 종전이후에나 가능한 것입니다.

    님과 같은 인식을 가진분들은 종전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던데...
    혹시... 님도 종전을 반대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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