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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사라진 장갑차들

안승범의_군사자료실 작성자: 안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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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7-08 20:03:10

(출처 - 월간 디펜스 타임즈 에서 )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국의 차륜형 장갑차들


글 이치헌




현대의 장갑차량은 빠른 기동력과 시가지 운용성이 중요시 되며 이 두 가지에 최적화된 차륜형 장갑차는


현대 전장에서 필수 요소이다.


이에 우리 군도 현대 전장 환경에 맞는 차륜형 장갑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70년대에 처음으로 개발에 착수하였다.


국내 최초의 차륜형 장갑차 - M8 그레이하운드


대한민국 최초의 차륜형 장갑차는 해방 후 미국의 원조로 도입한 M8 그레이하운드 경장갑차이다.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는 6×6 형태로 110마력 휘발유 엔진에 최고 속도 90km/h의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여 주로 보병 지원 및 수색정찰용으로, 오픈탑형 포탑에 M6 37mm 대전차포와 7.62mm 동축기관총, M2 50구경 중기관총을 장비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M3 반궤도차와 함께 미군의 장갑차 전력으로 전장을 누볐다.


37mm 대전차포는 구 일본군의 주력 전차였던 97식 치하 정도는 격파할 수 있었지만 독일군 주력 전차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애초에 수색정찰용으로 개발된 차량으로 장갑 방호력 역시 치하와 동급이었다.


미국은 한국군에 장기적으로 기갑부대를 창설할 필요가 있고 기갑 승무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공감하고 있었으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북진통일 주장으로 인한 전쟁 위험을 우려하여 공세용 무기인 전차를 공여하지 않고 외관과 탑승 인원 수 및 위치 등이 전차와 비슷하나 화력과 방호력이 떨어지는 M8 장갑차를 공여하였다.


당시 공여된 27대의 M8 장갑차는 6·25 전쟁에서 유일한 한국군의 기갑 전력으로, 육군본부 직할 독립기갑연대에 배치, 운용하였고, 육군은 도입 후부터 M8 장갑차는 38도선 지역을 순회하면서 아군이 보유한 전차라 선전하기도 했다.


전차와 비슷한 외형 외에도 서울 남산 기갑연대 통신소와 강원도 강릉 8사단에 배속된 M8 장갑차가 통신이 가능했던 정도로 무전기 성능이 뛰어나서 통신 중계용으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독립기갑연대의 M8 장갑차들은 여러 전선으로 흩어져 투입되었으며, 당시 국군을 상대로 사실상 무적이었던 북한군의 주력 전차 T-34/85를 상대로 대전차전을 벌여 격파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격파 기록은 M8 장갑차 1대가 37mm 주포로 T-34 전차의 궤도를 사격하여 기동 불능으로 만든 뒤, 끊어진 궤도를 수리하기 위해 조종수가 전면 조종수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오면 다른 M8 장갑차가 열린 조종수 해치로 주포를 사격하여 격파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운용 기록은 1950년 11월 청진 전투이지만 흥남 철수 당시 적재 목록에 없었던 점으로 인하여 당시를 전후로 전량 소진된 것으로 한때 판단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M8 장갑차는 이후에도 미국의 원조로 도입되어 1952년 광복절 사열식에도 등장하였으나, 무포탑 형태의 파생형인 M20 경장갑차가 4·19 혁명 당시 경찰의 진압용 장갑차로 등장한 것 외에는 정전 이후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




본격 차륜형 장갑차 시대를 열다 - KM900


정전 이후 우리 군은 미국의 군사원조로 유지되는 형편이었고 1960년대까지의 한반도 도로 사정을 고려하여 주로 전차와 견인포 전력을 증강하는 데 주력하였다.


당시만 해도 한반도의 주된 교통로는 국도, 지방도와 철도였으며 도로가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 전차와 견인포 전력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고, 보병의 이동은 군용트럭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기 때문에 차륜형과 궤도형을 막론하고 보병 수송용 장갑차가 존재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베트남 참전의 교훈으로 미군의 M113 장갑차를 도입하여 기계화보병사단을 창설하면서 병력 수송용 장갑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68년 이후 북한 특작부대 침투에 대비한 대침투작전의 중요성이 커지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도로에서 운용이 용이한 차륜형 장갑차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침투작전>은 An-2 등으로 저고도 공중침투하는 적 특작부대를 500MD 헬기 및 발칸 대공포로 우선 저지하고 지상에 내린 적은 경장갑차를 앞세워 섬멸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하여 도입하게 될 경장갑차는 1개 분대분 병력에 최고 속도 100km/h, 항속거리 700km, 종경사 등판 능력 60%, 하천 도하 능력, 소총탄/수류탄에 대한 방호력, 50구경 또는 7.62mm 기관총과 소총 사격 포트 등의 ROC(Requirement for Operational Capabilities ; 작전 요구 성능)가 요구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외에서 후보 차량을 일단 도입한 후 라이선스 생산을 거쳐 자체 생산으로 결정되었고, 군 당국은 1970년대 중반 경 독일 Mercedez-Benz사의 UR416 장갑차와 이탈리아 Fiat + Oto Melara사의 CM6614 장갑차 중 한 가지를 선정하여 차륜형 경장갑차로 도입하기로 한다.


당시 독일(서독)은 전범국이라 국내법에 의하여 NATO 회원국 외 분쟁지역에 무기 수출이 제한되어 UR416 장갑차를 들여오는 데에는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CM6614와 비교 평가한 결과 두 후보 차량의 성능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합법적으로 쉽게 도입이 가능한 CM6614가 선정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KM900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하여 기아자동차 군수공장(당시 아시아자동차)에서 라이선스 생산하게 되었다.




이 당시 비교용으로 도입된 UR416 장갑차는 일부 KM900 장갑차와 함께 산업단지 직장예비군용으로 배치, 운용하기도 하였다.


1977년부터 양산이 시작된 KM900 장갑차는 160마력 디젤엔진에 2+9명이 탑승할 수 있었고 삼미종합특수강에서 장갑판을, 대한유리에서 방탄 유리를, 금호타이어에서 방탄 타이어를 국산화하는 등 주요 부품을 국산화 생산하여 이탈리아에서 직도입한 일부 차량을 포함, 약 450여대가 도입되었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 등 후방 부대의 대침투작전용과 공군, 해병대의 부대 방어용으로 운용 하였으나, 당시 대부분의 국산 무기체계가 그러했듯 무리한 국산화 과정에서의 기술력 부족으로 인한 잦은 고장과 철판 균열 등으로 품질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게 된데다,


북한의 대남 전략이 기계화부대 위주로 변화하고 미국의 군사원조가 유상화되어감에 따라 한국군도 보병전투장갑차를 자체 개발, 생산하여 기계화부대를 증설해야 할 필요성이 커져 KM900의 입지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KM900은 1981년부터 양산이 중지되었고 바로 궤도형 장갑차 K200의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KM900/901 장갑차는 차량 노후화로 <수도방위사령부>에서 2018년 중후반까지 운용하다 도태했다. 퇴역한 것이다.


2019년 현재 더 이상의 운용부대는 없다.




수방사는 KM900을 대침투작전용 외에 시위 및 소요사태 진압용으로도 운용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전방 장애물 제거용 도저와 경고방송장치, 연막탄 및 CS가스탄 투발을 위한 연막탄 발사기 등을 장착하는 개조를 거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개조된 차량은 KM901로 명명되었다.


 2015년에 장애물 제거용 도저는 모두 탈거되었으며 차량들이 한계점까지 노후화되고 부품 수급이 어려워


현재 신형 차륜형 장갑차로 교체되었다.


공군 기지방어용 KM900 장갑차는 1995년부터 궤도식인 K200A1 공군형으로 교체되었다.


역설적이게도 KM900 장갑차가 처음 치른 실전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 시기 광주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시민군이 4대의 KM900과 다수의 군용차량을 접수하여 계엄군과 실전을 치르게 되었으며, 7.62mm 실탄 1발이 관통된 것(이마저도 승차자에게 피해를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외에는 꽤 괜찮은 성능을 보였고 타이어 역시도 피탄되었지만 주행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경찰의 1세대 차륜형 장갑차 퇴역

 



1997년 말 경찰청이 경찰특공대 대테러작전용으로 독일 Thyssen-Henschel제(당시 대우종합기계에서 라이선스 생산) TM170 4×4 차륜형 장갑차를 도입하면서 군에서도 다시 차륜형 장갑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여러 방산업체가 차륜형 장갑차 시제품을 내놓게 된다.


군 당국이 차륜형 장갑차에 본격적으로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3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면서 파병지에서 소규모 병력을 태우고 빠른 기동력으로 수색정찰임무를 수행할 차륜형 장갑차가 필요했고,


이에 TM170 장갑차를 베이스로 대우종합기계에서 자체 개발한 바라쿠다 4×4 차륜형 장갑차가 선정되어 10여대를 도입하였다.


흔히 바라쿠다는 TM170을 라이선스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TM170을 기본 바탕으로 한 것은 맞지만 대우종합기계에서 자체 설계한 것이므로 라이선스는 아니다(실제 생산은 특장차량 업체인 신정개발이 담당).


TM170과 바라쿠다는 모두 차대가 Mercedes-Benz UNIMOG 4×4 트럭이고 외형도 유사하지만 엔진은 물론 전장/전폭/전고 등 규격과 세세한 사양들이 다르며 외형 역시 차이가 있다.


차체 전면 장갑은 7.62mm AP탄을 방호할 수 있고 런플랫(Run-Flat)타이어를 장착하여 피탄시에도 약 30km/h 속도로 70km 거리를 주행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연막탄 발사기, 큐폴라 방탄판 등의 옵션이 추가되었으며 RPG-7 방어용으로 펜스형의 슬랫 아머(Slat Armour)를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차폭이 넓어져 운용에 지장을 주게 되어 자이툰부대 운용시에는 탈거했다.


자이툰부대의 임무가 종료된 이후 레바논 파병 동명부대에서 쓰이기도 했다.


자이툰부대에 도입되던 2004년 1월 인도네시아 경찰용으로 20대를 수출하기도 했다.




그 후 바라쿠다의 실제 생산을 담당했던 신정개발에서는 생산 기술력을 기반으로 S5 장갑차를 자체 개발하였고, 2010년 경찰청에서 특공대 대테러장비 보강 및 G20 정상회의 경호경비용으로 2대를 도입, 2019년 현재 1대는 대형 고물상으로 넘어가고 1대는 지방을 전전하며 조만간 도태를 기다리고 있다.


TM170과 바라쿠다, S5는 모두 트럭 차대를 기반으로 하여 치안유지나 도로가 발달된 시가지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갑차라는 공통점이 있다.


트럭 차대 기반 장갑차는 도로상에서의 기동력은 좋으나 야지 기동력이나 방호력, 화력 등에서 한계가 있으며, 차체 하부에 엔진과 구동 계통이 위치하고 수직장애물 돌파력 향상을 위해 지상고가 높게 설계되는데 이는 곧 피탄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말이 되겠다.

 

그리고 이 높은 지상고 때문에 출입용 도어가 높게 위치해 있고 후방 램프도어도 계단식으로 신속한 병력 승하차가 어려운데


이는 공군기지 방어용이나 시가지 작전용으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도로가 발달된 지역에서 주로 작전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가 노후 장비임에도 KM900을 2018년까지 운용한 것은 지상고가 낮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IED 방호 능력도 취약한 편이라 국외 파병부대도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은 자이툰부대나 동명부대에서만 운용하였고,


위험성이 높은 편인 아프가니스탄 오쉬노부대는 미군에서 Maxx Pro Dash MRAP 10대를 지원받아 운용하였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앞으로도 4×4 차륜형 장갑차 전망은 없어 보인다.



댓글 1

  • best isslab 2019-07-17 추천 1

    KM900 90년대 중반 군생활하면서 자주 보던 친구였는데..
    다른 건 몰라도 제동 성능 하나는 정말 인상적이었죠...
    세월에는 장사가 없네요 더 좋은 녀석들로 교체하고있겠죠.

  • isslab 2019-07-17 추천 1

    KM900 90년대 중반 군생활하면서 자주 보던 친구였는데..
    다른 건 몰라도 제동 성능 하나는 정말 인상적이었죠...
    세월에는 장사가 없네요 더 좋은 녀석들로 교체하고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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