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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있던 프라하 Nuclear Bunker! (15)

전사적지_답사기 작성자: 부국강병조국통일
조회: 6998 추천: 1 글자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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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4 15:16:58

체코 프라하에는 Nuclear Bunker, Communism museum 등 다소 이색적인 역사유적이 있다.


1945년 5월 8일, 독일군이 지배했던 프라하에 T-34탱크를 앞세운 소련군들이 들어왔다.


독일 압제에서 시달리던 시민들은 체코를 해방시킨 붉은 군대를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보았다.



프라하시내로 들어오는 소련군


1938년 9월, 체코의 주덴텐 지역은 뮌헨 평화협정으로 독일에 강제합병 되었다.


강대국들이 체코영토문제를 논의하면서도 체코대표를 이 회담에 부르지도 않았다.


단지 이 지역에 독일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남의 영토를 히틀러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 이어 나중에는 결국 체코 전국토를 집어 삼켜 버린다.


뻔뻔스럽게도 그 독재자는 더 이상 독일은 영토 확장에 대한 야심은 없노라고 프랑스 달라시에 수상과 영국 체임벌린 수상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불과 1년 후인 939년 9월,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사기극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폴란드 저항세력을 처형하는 독일군


특히 유약하고 무능한 영국 체임벌린은 히틀러 서명이 든 평화협정문을 히드로 공항에서 흔들며 "이 협정문에 유럽의 항구적 평화가 들어있다!"라고 외쳤다.


영국인들은 열광했고 전쟁회피를 가져온 이 평화협정을 위대한 외교적 성과로 평가했다.


어느 누구도 독일군 군화발에 짓밟힌 체코인들의 비극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흡사 남북평화무드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20만 주민인권문제를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게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입에 게거품을 물고 외쳤던 무리들도 유독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킨다.


약소국 체코는 그렇게 해서 1939년 조용히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 후 6년 뒤에 나타난 소련군은 체코인들에게 "해방군이었을까? 점령군이었을까?"


1945년 5월, 유럽전쟁은 끝났지만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은 치열하게 계속 되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절실했던 미국은 스탈린에게 대폭적인 양보가 필요했다.


특히 동유럽에서 폴란드ㆍ체코ㆍ 형가리 등 많은 국가들이 소련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자연스럽게 소련 영향권에서 다시 태동한 체코 공산정권은 1955년 바르샤바 조약국으로 가입한다.


1960년대 교조적이고 경직된 공산주의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려는 체코국민들의 열망은 더 뜨거워졌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체코인들의 이런 움직임을 오랫동안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1968년 8월 20일 아침, 소련군을 주축으로 한 폴란드ㆍ헝가리ㆍ루마니아 등 바르샤바 조약국의 대규모 탱크부대들이 프라하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자유화 봉기를 짓밟았다.



1968년 체코를 침공한 소련군 탱크부대


이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프라하의 봄"이라고 부른다.


그 이후 약 20여 년 동안 체코인들은 철의 장막 속에서 또다시 "자유"라는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공동노동과 평등분배"를 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공산체제에서 숨 막히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추가하여 언론통제, 해외교류제한, 조직을 통한 상호감시 등 개인자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미ㆍ소 냉전시대 서방국가의 핵공격을 빙자하여 체코 전국 곳곳에 비밀리 대규모 지하대피소를 만들었다.


일명 "Nuclear Bunker"라고 불리는 이곳은 지하 수십m 아래 화생방 방호장치, 주거 공간, 병원, 식당 등 전시대비 각종 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다.



프라하 핵벙커 입구



핵벙커 내부의 각종 전시물


체코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보다 외부 위협을 빙자하여 엄청난 국가자원을 군비확충에 쏟아부었다.


결국 1990년 소련 붕괴와 더불어 공산체제는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소련몰락과 체코자유화에 열광하는 프라하 시민들


현재 이 지하시설은 외부인들에게 부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특히 화학전을 전술의 일부로 당연시하는 공산국가들의 특성으로 화생방관련 시설ㆍ물자ㆍ 방호장비들이 유독 강조되고 있었다.



지하시설내의 화생방전 전시물


소련군의 전략ㆍ전술을 그대로 답습한 북한군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대규모의 북한화학무기들이 전방지역에 추진되어 있다.


체코 공산주의의 몰락과정과 1968년 프라하 봉기사건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Communisum Museum"도 시내중심부에 있다.



공산주의박물관 전시실 입구


크지 않은 전시관에는 공산치하 45년 간 체코인 고통과 비극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꽉 차 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진 프라하(Praha)!


이 도시는 1930년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전쟁, 공산주의 압제, 자유를 위한 피눈물 나는 투쟁의 역사가 반복된 곳이다.


그러나 이런 비극적인 역사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중요하지 남의 고뿔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인간본성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정: 오후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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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best 아크투르스 2018-09-17 추천 1

    공산권 국가들이 도시 화생방 방호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가

    역설적으로 자기들이 적국의 도시 민간인에게 그런 공격을 가할

    작전이 준비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지막지한 자들이

    아직 우리 바로 옆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텐데요.....

  • Million 2018-09-17 추천 1

    '부국강병조국통일'님~

    체코인들의 "자유를 위한 피눈물 나는 투쟁의 역사"도 대단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를 위해 피 흘려 싸워 투쟁하고 쟁취한 역사'가 있습니다.
    우린 피눈물 정도가 아니라 피흘려 독재와 목숨걸고 싸워 오늘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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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크투르스 2018-09-17 추천 1

    공산권 국가들이 도시 화생방 방호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가

    역설적으로 자기들이 적국의 도시 민간인에게 그런 공격을 가할

    작전이 준비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지막지한 자들이

    아직 우리 바로 옆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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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빛앙마 2018-09-16 추천 0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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