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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본토 결전용 비장의 무기였던 고류 잠수정

슈트름의_War_and_History 작성자: 슈트름게슈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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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1 19:06:22

WW2 Japanese Mainland defence Battle Secret Weapon Ko Ryu midget




종전후 일본 요코스카 해군 기지에서 발견된 본토 결전용 고류 잠수정 - 1945년 9월 8일 





종전후 일본 나가사키의 미쯔비시 조선소에서 발견된 본토 결전용 고류 잠수정 - 1945년 9월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거의 완성된 15대의 잠수정과  수많은 고류 잠수정의 조립부분이 발견되었다. 





일본 쿠레 해군 기지 드라이 도크에서 발견된 115대의 HA시리즈 D형 

본토 결전용  고류(교룡) 잠수정들을 시찰하는 미국 조사단 - 1945년 





일본 쿠레 해군 기지 드라이 도크에서 발견된 본토 결전용 HA 시리즈 D형

고류(교룡) 잠수정들의 번호들이 붙여져 있는 코닝 타워 전망탑







태평양전쟁 종전 2개월 후 미군 사찰단에 의해 발견된 폭격 당한 후 침수된 일본 쿠레 해군 기지 

드라이 독의 본토 결전용 D형 고류(蛟龍 : 교룡) 잠수정들  - 1945년 10월 19일 




고류는 구 일본 해군 특수 잠항정의 일종으로 문헌에 따라 교룡(蛟竜)으로 표기된다.

 개발 당시의 명칭은 갑 표적 정 형이지었만 

1945 년 5월 28일자로 교룡(고류)이라는 이름의 무기로 표기된다.

또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육군에는 같은 이름의 병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1942년 제작되었던 전차 상륙함 기동정의 시제형 이름이기도 했다.




일본 해군은 태평양전쟁 말기 까지의 전훈에서 지적된 주행 능력 부족을 

개선시키기 위해 고류 잠수정을 제작하게 된다.

그 잠수정은 초기형 잠수정 보다 선체를 대형화시키고 내부에 

발전용 엔진을 탑재하여 항속 거리와 승무원의 인원수를 늘렸다. 

고류(교룡)는 일본 해군의 파도호 잠수함보다 더 작은 최소형의 일반 동력 잠수정이다.

고류(교룡)잠수정의 연속 행동 일수는 5 일이지만, 잠수정 내부의 협소한 조종실의 

배터리가 장착된 상단의 베니어판에 교대로 휴식을 취하는 등 거주성이 열악했으며, 

승무원의 체력 소모 등으로 3 일 정도가 한계였다.


일본은 결정호 작전이라고 지칭한 소위 본토 결전에서 '비장의 카드'

즉 수중의 특공 병기 (공격 수단은 기뢰가 아닌 어뢰)를 

 우 조병창과 마이즈 루 조병창과 요코스카 조병창및 미쯔비시 조선소, 

하리마, 히타치 무 코지마 미쓰이 타마 가와사키 고베,

 니가타 철공소에서 월 총 80 척을 제작 목표로 예정됐다. 

그 후에 잠수정 생산 공장으로 고베 미쯔비시 조선소와 요코하마 미쯔비시 조선소가 추가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전쟁준비 계획으로 1945년 4 ~ 6 월에 110 척, 7 ~ 9 월에 430척 

10 월 이후에 1,000 척의 생산량을 맞추는 정책이 입안되고 있었다.

 후일 가이류우(해룡)과 자살공격용 인간 어뢰 카이텐(회천)의 증산이 이루어 졌는지

교룡 잠수정의 생산 댓수는 억제되었다.

그것은 일본 관동 지역에서의 양산 우선 순위는 고류(교룡)보다 

가이류(해룡)를 우선적으로 취했기 때문이었다.

고류(교룡)의 개발에는 일본 해군 소속의 쿠로키 히로시 중위의 참여도가 컷다.

그는 1942년 12 월부터 대포 곶 P 기지로 전근되어

 이후 초기형 잠수정 갑 표적 · Y 표적 · 카미카제 자살공격용 인간어뢰 카이텐(회천) 및

 갑 표적 잠수정 형의 개인적인 연구를 실시했다. 

그러한 무기 개발에 그의 연구 성과와 발명품등이 매우 깊게 관련되어 있다.

1944년 고류(교룡)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 시점에서 초기형 잠수정인 갑 표적 모함은 전몰 또는 항공모함화 되어 모함 운용을 전제로 사라졌다.

 그리고 고류(교룡)은 갑 표적보다 선체가 대형화되었다. 

쿠로키 중위의 아이디어로 고안된 잠수정의 형태는 고류(교룡)에 갑 표적 정 형의 사령탑 모양, 

조종식 유리 바람막이와 실내의 레이아웃, 기관실의 배치등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였다. 

1944년 5월 갑 표적 정 형의 시제형 1 호 잠수정이 완성되었다.

그후 고류 잠수정은 실험이 마칠때까지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양산이 시작되었다. 

그 시기 이미 쿠로키 중위는 인간어뢰 카이텐(회천)의 개발과 실험에 전념하고 있엇다.

그러나 그는 1944년 9월 6일에 자살공격용 인간 어뢰 카이텐(회천)의 실험 중에 사고가 발생라여 사망했다. 

그것은 갑 표적 정 형에 대한 그의 노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개발 관계자는 모두 갑 표적 정 형을 "쿠로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발언했다.

1945년 5월 2일 갑 표적 D 형은 무기로 채택되었고 고류(교룡)이라고 명명되었다. 

그날 일본 해군은 자살공격용 인간 어뢰 카이텐(회천)  잠수정 가이류(해룡)도 투입 무기로 책정했다.

고류의 성능은 선회 능력, 항속 성능, 연속 동작 시간의 측면에서 갑 표적보다 개선되었다. 

 고류 잠수정의 의 최고 속력은 18 ~ 16 노트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평균 속도는 6에서 10노트였던것으로 보인다.

갑 표적 병 형의 항속 거리는 300 해리 였지만 고류(교룡)는 1,000 해리로 향상되었다.

 고류(교룡)의 장거리 항해의 예로는 일본 본토 오우 곶 P 기지에서 

오키나와 운텐까지 수백 마일의 장거리 항해를 시도했던 사례였다.

그 장거리 ㅜ항해에서 고류(교룡)은 겨울 날씨의 거친 먼바다 

 항해에 상당한 무리가 따랐으며 기관에 손상을 입었다.

그것으로 보아 고류(교룡)의 수중 작전 시간은 

10시간 정도가 한계였을것으로  보인다.

고류(고룡)은 선체 앞부분에  2 개의 450mm 어뢰 발사관을 갖추고 있다.

 갑 표적은 과달카날 전까지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 잠수함에서 

 사용했던 형태의 구형 어뢰로 발사후 수면에 어뢰의 이동시 흰 기포 궤적을 남기며 

적에게 발각이 잘되는 산소 봄베의 추진력을 사용하는 97식 어뢰를 사용했고 

 이후에는 2식 어뢰 또는 항공용의 91식 어뢰를 사용했다. 

97식 어뢰는 발사  속도 50노트에  사거리는 5000m였다. 

2식 어뢰및  91식 어뢰의 발사 속도는 39노트였고 사거리 3,900m였다. 

어뢰에 내장된 폭약의 작약량은 모두 350kg이었다.











구 일본 해군 D형 고류 잠수정의 내부 



일본의 진주만 기습전 하와이 해변에 좌초되었다 미군에 나포된 

초기형 잠수정 갑 표적의 승무원이 2,3 명이었던 반면,

 고류 잠수정의 승무원은 5명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인원은 전문 통신원을 태운 것으로 고류 잠수정의 통신 능력은 향상되었다.

고류 잠수정은 기지 운용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해상에서는 수송용 잠수함 HA-101에서 450mm 어뢰를 보급 받을수 있는 구조였다.

고류 잠수정의 선체 구조는 갑 표적과 마찬가지로 

잠수정 센체를 정면 중부 후방 섹션으로 분할하고, 플랜지 부분에 볼트로 결합시킨 형태였다

잠수정은 전방에서 어뢰 발사관 구획으로 하고 정면 전지실, 조종실, 기관실, 후방 전지실 

센체 꼬리 부분에는 전동기와 가로 세로 방향타 장비 구획으로 구성된다. 

선체 본체는 원통형으로 상부에 3 구획의 메인 탱크를 설치했다 .

길이는 26.25m. 직경은 2.04m. 배의 도색은 암갈색 색깔이었다.

선체를 짙은 녹색 상부 구조를 무광택 검정색 페인트로 바르는 조합도 몇대 보였다.

 사령탑 정면에 쿠스이 마크, 선체 전후에 흘수 표시를 기입했다.

맨 앞부분에 2 식 어뢰를 장전 한 45㎝ 어뢰 발사관 2기를 수직으로 장착하고 

 발사관의 후방 좌우로 조향용 축기를 갖춘다.

 발사기의 정면 좌우에는 첫번째 연료 탱크가 있었다.

또한 정면 트리밍 탱크가 발사기의 하부에 놓여 있고 격벽을 통해 후방 정면 전지실이 있다.

정면 배터리는 약간의 상부 공간이 통로가 되고

 측벽 중앙 랙에 특 H 형 축전지가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고류 잠수정에 탑재 된 배터리의 수는 200개 였다.

내부에는 수소 가스 감지기, 배기용 전동 송풍기, 전성관 배기관이 장착되어 있었고

 배터리의 바닥에는 콘크리트로 메워져 있었다.

그리고 측면 벽의 남은 공간을 이용하여 두 번째 연료 탱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지 취출구와 기밀 문이 설치된 격벽을 통해 후방에 조종실이 배치되었다.

 내부에는 5 명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종실 전방 왼쪽에는 주로 정 부자리, 오른쪽에 부 정부석, 후방 중앙에 함장 자리가 있었다.

함장석 앞에 사령탑에 오르는 발판이 놓여 있었다.

함장실의 후방 왼쪽에는 전기 승무원의 자리였고 오른쪽은 통신기기 승무원의 자리였다.

바닥은 보조 탱크와 응급 탱크가 있었다.


 승무원 자리 옆의내부 벽면에는 각종 장비가 장착되어져 있었다.

 주 정부석 앞에는 97식 전륜 나침을 갖추고 격벽에 150m까지의 심도계와 좌우 경사계가 붙여져 있었다. 

부 정부석 앞에 격벽에 60m 깊이 측정기 및 내압 진도계를 갖추고 있었다.

전기 승무원 자리 왼쪽 벽에는 발전기 관제반, 등화 개폐기와 후 군 원동 배전반이 설치되었다. 

기계 전신 위원 석의 통신기기 승무원의 자리 앞에는 横舵 조향 유압등 통이 놓여졌다. 

다른 산소병과 빌지 펌프가 장착 된 조종실 위쪽에는 바람막이가 특징인 사령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타원 모양의 사령탑에 해치와 97식 특 잠망경 디바이스와 두 승강식 흡기통 무선 마스트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둘째 비밀 문과 보기 창이 붙은 조종실 후단 격벽을 통해 기관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기관실 정면 중앙에는 윤활유 탱크와 150 마력의 오일 호 정 형 내연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뒤에 특 G 형 발전기가 연결되어있다. 

바닥에는 세번째 연료 탱크가 배치되어 있었다.

엔진의 왼쪽에 팔라듐을 촉매와 수소 가스 흡수 장치와  

발전기의 왼쪽에는 주로 전동기 계자 조정기가 놓여져 있었다.

 발전기에 의해 고류 잠수정은 충전이 가능하며, 소요 시간은 9 시간이었다.

기밀 문이있는 격벽을 통해 후방 배터리 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후면 배터리 실도 정면 밧데리와 같은 레이아웃이 있지만, 정면에 냉매 압축기가 장착되었다. 

바닥면에는 4번 연료 탱크, 후방 트리밍 탱크가 놓여 있었다.

또한 고류 잠수정은 프레온 가스를 이용한 소형 냉각 장치가 탑재되어 있었다.

밧데리 뒤쪽은 배 꼬리이며, 여기에 비밀 문이 있는

격벽을 통해 500 마력 모터와 감속기 윤활유 냉각 순환 펌프가 배치되어 있었다.

감속기 바닥에 윤활유 탱크가 놓여져 있었다.

정 형은 직류 600 마력 전동기가 탑재되었지만, 전 지수의 제약에서 출력은 500 마력에 그쳤다.

자료에 따라 최대 속도는 18노트 ~16노트 정도였다. 

잠수정의 마지막 꼬리 부분은 縦舵과 옆 방향타가 배치되엇다.

고류 잠수정의 양산형의 경우에는 뒤에 1.6m 지름의 싱글 프로펠러가 설치되었다.

고류 잠수정의 초기형은 갑 표적뿐만 아니라 프로펠러가 이중 반전식이다. 

싱글 프로펠러에서 발생하는 토크의 흡수를 위해 좌우 옆 지느러미를 

비행기의 보조 날개처럼 거꾸로 움직여 기울기를 막았다.

 그러나 저속에서는 효과가 작았다.


고류 잠수정의 실전 참가는 저조했다.

1945년 3월 8일 갑 표적 정 형 29번과 100번 잠수정 두척이 수송선에 견인되어 오키나와에 진출했다. 

또한 24번 27번 ,28번 잠수정이 자력으로 오키나와 까지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악천후에 의해 항해는 곤란했고 24번과 27번 잠수정은 

구치노에라부섬에 충돌하여 좌초했다. 

이 2척의 잠수정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1945년 3월 10일, 엔진 과열이 발생했지만 28번 잠수정은 오키나와에 진출했다. 

3월 25일 20시부 터 24시 29번 잠수정과 100번 잠수정은  

다른 갑 표적 병 형과 함께 출격했지만 3월 26일에 2척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이 전투에서 갑 표적 병 형 67번 잠수정이 미 해군 구축함 해리건을 격침시켰다. 

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이 손실을 기뢰에 의한 것으로 판정하고 있다. 

또한 3월 26일 18 시경부터 24시 걸쳐 28번 잠수정에 출격 명령이 내려했지만

 고장으로 출격 할 수 없는 곳에서 급습당하여 격침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고류 잠수정들은 

 일본 본토의 각 기지에 배치돼 훈련을 실시하면서 본토 결전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1945 년 7월말의 상황에서는 쿠레 진수부에 48 척, 사세보 진수부에 4 척, 

마이즈루 진수부에 3 척, 오시마 방비대 1 척 다른 연합 함대의 제 특공 전대에 18 척이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부대들은 8월 5일 쿠레 진수부 휘하 돌격대에 편입되었다.



패전 후 일본에서 요시다 에이자부로 등이 구상한 일본의 '새로운 해군'은 전 해군 함정 내지 

그 준동형 함의 건조가 몇대 기획되고 있었는데 고류 잠수정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류 잠수정은 준 특공 병기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일본은 "특수 잠항정 '이라는 함종 이름을 피하고

"국지적 방비정'이라는 함종 이름을 새롭게 부여하여  

교룡대(蛟龍隊)를 60척씩 10 부대로 정비할 계획이었다



고류 초기형 : 배의 상부에 마련된 메인 탱크및 부력 탱크의 천장 부분이 

배 목을 향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있는 것이 외형상의 특징이다. 

초기형이 몇 척 완성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갑 표적의 이중 반전 프로펠러를 이어 갖추고있다 


고류 잠수정 양산형은  선체 상단의 메인 탱크인 부력 탱크의 천장 부분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추진기가 이중 반전식의 싱글 프로펠러에 대신하여 채택되었다.

이것은 고류 잠수정 계획안에서 끝낸 속도 향상 형이다. 

배터리를 8 개 증설시키고 ​​후방 배터리와 발전기 실의 위치를 ​​

전후 반대로 배치 디젤 항해가 가능한 디젤 전기 동력으로 개선했다. 

또한 사령탑의 방향을 반전 무선 마스트 흡기통의 위치도 변경되었다.




고류 잠수정의 제원 

전장 : 26.25m

전폭 : 2.04m

깊이 : 3.81m

전체 몰 배수량 : 59.3t

내압 심도 : 100m

최대 속도 : 수상 8노트  수중 16노트 ~ 18노트 (문헌 기록)

수중 항속 거리 : 16노트(10.6 마일) 2.5노트(125 해리)

수상 항속 거리 : 8노트(1000 해리, 1850km)

회전 직경 : 가장 미속, 3노트에서 150m. 반 속도 12 ~ 9.5노트에서 190m

무장45cm 어뢰 발사관 × 2  2식 어뢰 × 2

엔진 : 오일 호 정 형 내연 기관 150 마력, 무게 1500kg

발전기 : 특 G 형 직류 발전기 발전량 75 ~ 100kW, 무게 1380kg

전동기 : 반 폐쇄 자기 통풍 형 다른 励複 권 직류 600 마력, 무게 2160kg

축전지 : 특 H 형 200 개

승무원 : 5 명

작전 행동 일수 : 5 일, 그러나 실제로는 3 일이 초과되는 경우가 없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에게 전세가 밀려 패색이 완연해진 일본인들이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두려워하여 본토 결전용으로 제작했던  D형 잠수정은

 150톤 이하의 중량에 선체 앞부분에  17.7인치 어뢰 2발을 장착시킨 잠수정이었다.

이 잠수정의 이름은 고류(蛟龍 : 교룡))였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잠수정의 이름으로 붙여진 고류(蛟龍)라는 

동물은 일본에서는 상상의 동물인 미즈치이다.

교룡(蛟龍)은 예로 부터 한국에서는 용이 되지 못한 500년 묶은 뱀인 이무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교룡(蛟龍)을  미즈치라고 부른다.

미즈치는 수많은 잡신의 천국인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지어낸 환상의 동물들 이름중의 하나이다.

미즈치는 환상의 동물로 산이나 강의 정령이 뱀으로 변하여 영력을 발휘하게 된 것을 지칭한다.

미즈치는 논농사가 발달되었던 일본 야요이(彌生) 시대에는 물을 관리하는 수신(水神)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일본에 불교의 전래 이후 미즈치는 산이나 강에 사는 사악한 괴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닌토쿠(仁德) 천황 시대(313년 즉위)에 오카야마 현 가와시마(川島) 강에 

거대한 미즈치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용감한 남자를 보고 누가 “영력이 있으면 강에 떠오른 표주박을 잠기게 해봐라”라는 

말을 하니 그말을 듣고 남자는 강에서 그것을 실행하다 실패하여 미즈치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교룡(蛟龍)은 중국 서진의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왜인전에도 등장하는 동물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인전 (中)에서 


男子無大小皆 面文身. 自古以來, 其使詣中國, 皆自稱大夫. 

<夏后><少康>之子封於<會稽>, 斷髮文身以避蛟龍之害. 

今<倭>水人好沈沒捕魚蛤, 文身亦以厭大魚水禽, 

後稍以爲飾. 諸國文身各異, 或左或右, 或大或小, 

尊卑有差. 計其道里, 當在<會稽>·<東冶>之東.

 其風俗不淫, 男子皆露 , 以木 招頭. 其衣橫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髮屈 ,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其地無牛馬虎豹羊鵲.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竹箭或鐵鏃或骨鏃, 所有無與< 耳>·<朱崖>同.   



남자들은 애 어른 없이 모두 얼굴에 문신을 하는데, 예로 내려온 것이다. 

사신이 중국에 이르러 스스로를 대부라 칭하였다. 

'하후 소강'의 아들을 '회계'에 봉하였는데, 머리를 깍고 문신을 함으로써 교룡의 해를 피하였다. 

이제 '왜'의 사람들이 자맥질하여 물고기와 조개잡기를 좋아하니 

문신으로 큰 물고기와 바닷짐승이 싫어하게 하여 후에 점점 꾸미게 된 것이다. 

여러 나라의 문신은 각각 다르다. 

혹은 왼쪽에 있고, 혹은 오른쪽에, 크고 자고, 신분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다. 

그 길을 계산하는데 마땅히 '회계'와 '동치'의 동쪽에 있다.

 그 풍속은 음란하지 않고, 남자들은 모두 상투를 틀고 무명으로 머리를 감싼다. 

그 옷은 다만 가로로 하여 서로 연결하여 동여메는데 바느질 하지 않는다. 

부인들도 머리를 올려 묶고, 통채로 옷을 지어 중앙에 구멍을 뚫고 머리부터 옷을 입는다. 

벼가 있고, 모시 삼 양잠이 있어 길쌈하고, 가는 모시와 비단이 있고, 

그 땅에 소와 말, 호랑이, 돼지, 양, 까치가 없다. 

병기로 창과 방패, 나무활을 쓰고, 목궁은 아래는 짧고 위가 길다. 

대나무로 화살에 쇠나 혹은 뼈로 화살촉을 하기도 하는데, '

담이'와 '주애'와 같이 있고 없음에 있는 것이다. 





댓글 2

  • best 아크투르스 2018-09-17 추천 1

    항상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부탁 말씀이 한가지 있다면 가운데 정렬 하지면 읽기가 너무 불편합니다.... ㅠㅠ

    일반 좌측 정령 부탁 드리겠습니다.

  • VITRUVIUS 2018-09-22 추천 0

    죄송한데, 저걸 보니까 부산 어뢰공장얘기가 생각나는 건 뭘까요 ^^;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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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크투르스 2018-09-17 추천 1

    항상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부탁 말씀이 한가지 있다면 가운데 정렬 하지면 읽기가 너무 불편합니다.... ㅠㅠ

    일반 좌측 정령 부탁 드리겠습니다.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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