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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니언섬과 원자폭탄 보관소

전사적지_답사기 작성자: 부국강병조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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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7-09 06:32:42

티니언섬과 원자폭탄 보관소
사이판 남부해안에서 6Km 떨어진 티니언 섬! 태평양전쟁 중 수천 명의 한국인이 억울하게 숨져간 한 맺힌 섬이기도 하다. 또한 전쟁을 조기 종결지은 원자폭탄을 탑재한 미국 B-29폭격기가 출격한 비행장도 이곳에 있다. 
 

 

티니언-사이판 경비행기로 10분 거리
티니언은 사이판공항에서 소형 경비행기를 이용해서 바다를 건너간다. 체중과 가방무게를 측정하고 좁은 대합실에서 대기했다. 작은 항공기의 균형을 고려해서 개인좌석을 정해준다. 장난감 같은 비행기들이 활주로에 쉴 새 없이 뜨고 내린다. 흡사 복권 당첨자 발표처럼 승객이름을 호명하면 우르르 나가 비행기 날갯죽지를 밟고 올라가 좌석에 앉는다. 한 사람씩 탈 때마다 동체가 휘청댄다. 다들 불안한 기색이다.
눈치 빠른 조종사의 말 한마디. “걱정 말라! 공중에서 시동이 꺼져도 활공으로 티니언, 사이판 어느 곳이든 불시착이 가능하다.” 그 말이 사실인 듯 이륙 하자마자 비행기는 착륙준비를 한다. 하늘에서 본 티니언 섬은 큼직하고 편편한 빈대떡 한 개가 바다에 떠 있는 형상이다. 
 


사이판-티니언 간 운행하는 경비행기 



▶미군 네이팜탄과 사탕수수밭의 일본군
일본은 1930년대 한국인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를 데려와 티니언 섬 전체를 사탕수수밭으로 개간했다. 또한 동양 2위의 제당공장 건설로 일본 설탕의 12%를 이 섬에서 생산하였다. 전쟁 중에는 민간인 18,000명, 일본군 8,000여명이 이곳에 있었다. 높은 산이 없는 티니언에서 일본군은 해안에 주 병력을 두었고 사탕수수밭에 예비부대를 배치했다. 드디어 1944년 7월 24일, 미군 상륙으로 이 섬은 처절한 전쟁터로 변했다.
“해안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일본군은 섬 안으로 내몰렸다. 이때 미군은 최초로 만든 네이팜(Napalm)탄을 전투기에서 투하했다. 순간 섭씨 800도의 가공할 만한 열을 내면서 사탕수수밭은 불구덩이가 되었다. 더구나 주변 산소까지 결핍시켜 일본군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죽어갔다. 수 일 간의 대량살육전으로 일본군은 전멸 당했다.” 이 폭탄은 야자열매에서 추출한 겔과 휘발유를 섞어 만든 대형소이탄이었다.
 


▶전쟁 종결자 원자폭탄 보관기념관
티니언 북쪽 해안에는 최초 일본군이 만든 ‘우지(Ushi)곶’ 비행장이 폐기된 채로 방치되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는 군데군데 깨져있고 잡초까지 솟아있다. 미군들은 섬을 점령하자마자 이곳을 중폭격기용 비행장으로 확장했다. 미 해군공병대가 불도저 등 현대 장비를 이용하여 7개월 만에 6개의 대형 활주로를 만들었다.
바로 이곳 비행장 끝부분에 태평양전쟁을 종결시킨 원자폭탄 보관소가 있다. 튼튼한 유리관 속에는 “리틀 보이(꼬마)와  팻맨(뚱보)”으로 불리는 두 형제폭탄이 조용히 누워 있다. 사실 이들의 활약으로 전쟁은 빨리 끝났고 수백 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자신들을 “못된 놈!”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 했다. 유리판에는 B-29의 폭탄장착 과정, 출격직전의 승무원 단체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티니언 원자폭탄 보관소 표지석과 기념관


▶한국인 학살현장의 외로운 추모비
티니언 중심마을 산호세 뒤편에는 한국인위령비가 외롭게 서있다. 정확한 숫자조차 알 수 없는 한국인 징용자와 위안부들은 사탕수수 농장, 진지공사장, 일본군 병영으로 동원되었다. 티니언 전투 중에는 이리저리 내몰리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약 5,000명의 동포가 목숨을 잃었다고 적힌 위령비는 당시의 서러움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었다.
“백의의 아들딸들이 여기 누워있다. 단군의 백성으로 목숨 받은 이들! 양처럼 끌려와서 군도에 찔리어 떼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젊은 형제요 꽃다운 자매였다. 티니언의 푸른 파도여 이제는 증언하라! 그 통한의 의미가 무엇이었던가를···”  
 


한국인 학살 동굴입구에 외롭게 서있는 추모십자가 

 

▶천혜의 관광휴양지로 재부상하는 티니언
인구 3000명에 불과한 티니언에도 한국교민들이 살고 있다.  놀랍게도 “Kim, Park”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한국인 3세, 4세도 몇 명 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면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징용자후손이란다. 이 작은 섬에는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수단이 없다. 혼자 여행 시에는 현지인 안내를 받든지 아니면 렌터카를 이용해야만 한다. 70여 년 전 치열했던 전장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오늘날 티니언은 스쿠버다이빙, 바다낚시 등으로 각광 받는 휴양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티니언 산호세 부근 해안 휴양지 전경



TIP
➤➤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약15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로써 일본은 원폭투하 6일 후인 8월 15일,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했다. 전쟁 조기종결로 미군은 일본본토상륙을 하지 않아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줄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핵무기 사용의 윤리성 논쟁이 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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