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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벙커, 전차 잔해가 곳곳에 남아있는 사이판(2)

전사적지_답사기 작성자: 부국강병조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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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7-04 09:55:46

일본군 벙커·방공호·전차잔해 곳곳에

 사이판의 중심도시 가라판에는 미국 전쟁기념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후세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려주고자 1994년 사이판전투 50주년 행사 시 조성되었다. 전시관에는 태평양전쟁 발발배경에서 종전까지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신세대 안보교육장 미국 전쟁기념공원
 자동차로 30분이면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는 작은 섬 사이판! 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전쟁의 흔적을 쉽게 볼수 있다. 이 섬의 전쟁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라판해변의 전쟁기념공원(American Memorial Park). 8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 전몰장병 위령탑, 전쟁박물관은 신세대의 훌륭한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물관 안내원 마리아(Maria)는 70세가 넘은 연방공무원이다. 단체관람 온 꼬맹이들을 정렬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오랫동안 이 전쟁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특히 전쟁참상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전시관에서 교육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자신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곳에서 근무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 기념공원 옆에는 아늑한 숲과 벤치가 있어 시민휴식처로도 널리 이용된다. 또한 하얗게 펼쳐진 백사장에는 원드스핑과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고 하였다.
 

 

        

                      전쟁기념공원에서 현장체험학습 중인 미국학생들


▶1930년대 시작된 일본의 전쟁준비
 박물관 첫 전시실은 전쟁 발발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등에 대한 생생한 사진과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1930년대의 일본 전쟁준비과정에 대한 다양한 역사자료들이 있었다.
 “일본정부는 1930년부터 사이판에 대규모 사탕수수농장을 만들기 위해 일본과 한반도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왔다. 이 개간은 ”남양흥발(南洋興發)“ 회사가 주축이 되었고 당시 사이판에는  22,000명의 일본인과 조선인 7,000명, 원주민 2,000명이 함께 생활했다. 또한 일본해군은 이미 1932년에 사이판에 간이비행장을 만들어 대규모 항공기 이착륙훈련을 했다. 일본은 이런 군사시설을 숨기기 위해 ‘남양청 제1농장’이라는 위장 이름을 붙였다. 이 비행장이 뒷날 ‘아슬리토’ 비행장이 되었고 오늘날 사이판 국제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국내선 터미널 근처에는 일본군 방공호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처럼 일본의 해외영토 확장야욕은 사이판에서부터 집요하게 시작되었다.
 


              

                                 사이판 국제공항부근의 일본군 방공호

 

피로 물들인 미군의 사이판 상륙작전
 1944년 6월 11일 오후 1시! 미군함재기 225대가 사이판의 일본군들을 강타하기 위해 출격했다. 당시 사이판 전투에 참여하는 미 제58기동부대는 정규항모 7척, 소형항모 8척, 전함을 포함한 함정이 77척이었다. 항공모함에 탑재된 항공기는 1,000대, 상륙병력은 106,000명에 달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갖춘 미군들은 자신만만하게 사이판에 상륙했다.
 수 일 동안 계속된 함포사격과 폭격으로 일본군진지는 초토화되었고 수백 대의 상륙용 주정들이 자라 떼처럼 굼틀거리며 해안으로 기어갔다. 엄청한 공격준비사격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벙커속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저항은 격렬했다. 수많은 주정들이 침몰했고 해변 산호초는 상륙함정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가까스로 백사장에 도착한 미군전차들은 일본군이 미리 파놓은 깊은 함정으로 전진이 어려웠다. 상륙 첫날 미 해병 2사단의 경우 사상자만 1,575명에 달했다. 그야말로 사이판 백사장은 피로 물드는 처절한 전장터로 변했다.
 


시내 중심부에 남겨진 일본군 전차잔해
 1944년 마리애나제도 방어가 다급해진 일본군은 북만주의 제9전차연대(전차 44대로 편성)를 사이판으로 이동시켰다. 시내를 열 지어 질주하는 전차를 보고 일본군 사기는 충천했다. 그러나 미 해·공군전력 앞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이 전차부대는 괴멸되었다.
 오늘 날 가라판 시내 중심부와 전쟁기념공원에는 부서진 일본군 전차잔해들이 군데군데 전시되어 있다. 아직도 쉽게 볼 수 있는 해안 백사장 근처의 일본군 벙커들은 대부분 강제징용 온 노동자들이 건설했다. 남의 전쟁터에 끌려와 죽을 고생을 하며 노역에 시달린 선조들의 고통이 눈에 보이는 듯 선했다.
 

 

                        
                                                 가라판 시내에 전시된 일본군 전차잔해 

 

▶사이판 한국교민들의 자녀교육 열정
 전쟁유적지를 안내하는 K씨에 의하면, 한 때 한국 기업인들이 이곳에서 많은 봉제공장을 운영했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대부분 동남아 국가로 이전했다. 또한 교민자제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우등생들이라고 했다. 사이판에는 통학버스가 다니고 있으나 이 차량를 이용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교민 대부분은 직접 자동차로 자녀들을 통학시키며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이나 과외지도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무서운 교육열은 사이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교민 2세, 3세들이 미국 ROTC나 사관학교로 진학하여 사회적 신분상승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미군장교가 되려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직업군인의 인기 정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댓글 2

  • berzip 2018-07-05 추천 0

    뙤sha들 어딜가나 티를 내고 다니죠 요즘은 알토란같은 곳에 땅을 사들이고 알박기를 하고 있지요. 영토확장? ?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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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신 2018-07-05 추천 0

    사이판 시내 한복판에 뙤놈이 대형 호텔을 신축중이였는데,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중국에서부터 전세기를 띄었답니다. 수천명의 노무자들을 관광객으로 위장시켜 일을 시키다가 발각되어 전부 쫓겨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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