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코너 전사적지답사기

터어키군 전적지 현장안보교육장을 찾아서

전사적지답사기 작성자: 부국강병조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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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3-16 13:25:15

  전쟁의 상흔은 아물어가고
  통일을 염원하는 키프로스
! 


 아직도 키르네(Girne)시 일부에는 전쟁 상흔이 남아 있다. 전몰장병묘역, 전쟁기념관, 평화기원비 등을 도시 근교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종교적 배경이 같은 북키프로스 주민들은 활기차고 인간미도 넘쳤다. 여기에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어우러져 키프로스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멀리하고 활력이 넘치는 관광명소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키프로스섬 전적지에서의 터어키군 현장 안보교육 전경
 


관광명소와 외국인 노동자 삶


 수많은 호텔과 리조트가 늘어선 키르네 해변! 푸르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외식당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관광객들이 담소를 즐기고 있다. 이곳 식당호텔가게 종업원들의 대부분이 파키스탄네팔필리핀인이다. 유창한 영어 덕분에 현지 관광업계 취업도 용이하다.


 해변식당에서 만난 파키스탄 청년 하산(Hashan.25)2년 전 북키프로스로 왔다. 식당에 취업 후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은 전액 고향으로 보내고 숙식은 주인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자 틈이 생기면 와서 말을 걸곤 했다. 지켜보던 식당주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유 있으면 식당밖에 나가 다른 손님들을 끌어와!라고 소리 지른다. 놀란 수탉처럼 후다닥 달려 나가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스페셜 메뉴판을 흔들며 선전한다. 해외체류 국민들의 대접도 모국(母國)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냉정하게 정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키레네 항구의 노천까페


키르네 버스기사와 전몰장병 묘역


 키레네 버스정류장의 좁은 공터에 미니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승차권 매표소도 없고 운행코스도 승객이 물어서 확인 한다. 운전사와 차내 승객들은 버스운행 중에도 서로 웃고 떠들며 장난까지 친다. 교외로 벗어나니 해안을 따라 폭넓은 2차선이 나타났다. 갑자기 버스 옆에 붙어선 다른 봉고차 기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큰 소리로 대화하며 운전한다. 좁은 섬 안의 주민들은 평소부터 서로 잘 아는 듯 했다. 넘치는 인간미가 보기는 좋으나 여행객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터키군 전사자 묘역은 지중해 해변에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다. 묘역 주변에는 키프로스 전쟁 배경과정을 설명하는 석판과 터키국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하얀 묘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또한 4명의 터키군 장병들이 묘역관리와 안보 현장교육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터키군 병 교관의 현장 안보교육


 전몰용사 묘역에서 터키군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아흐네트(Ahnet.24)는 가지안테프(Gaziantep)대학에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입대한 병사이다. 터키군은 1년 미만의 군복무로 병사들은 계급장이 없다. 더구나 대졸자 병역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군복무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아흐네트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전사적지 현장교육 교관으로 선발되었다.


 당당한 체구에 훤칠한 용모까지 가진 그는 병 교관 역할에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일단의 터키군 장병들이 묘역으로 몰려 왔다. 추모탑 앞에서의 정신교육은 엄숙하고 진지했다. 교관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목청을 높이며 양손까지 번쩍 번쩍 들었다. 10여 분 간 계속된 교육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진지한 그들의 태도에 차마 카메라 셔터조차 누를 수 없었다. 이어서 전쟁기념관 견학과 전사자 명비 앞의 숙연한 추모행사를 보면서 어느 나라나 전몰용사의 희생을 애국심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터어키군 병사 정신교육 교관


키프로스 전쟁과 국제사회의 무력함


 1974721일자 당시 한국 일간지들은 키프로스 전쟁을 이렇게 보도했다. 터키 육··공군은 키프로스를 기습적으로 침공, 수도 니코시아와 북부 해안도시 키르네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즉각 그리스군은 전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스탄불 북방 터키그리스 국경지역으로 지상군 병력을 집결시켰다. 과거에도 양국 간 수차례의 긴장사태는 있었고 미국 정보당국은 터키군의 대규모 함대이동을 그리스에 외교적 압력을 가하기 위한 책동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국제사회의 역할은 무력했다. 키프로스 서쪽 지중해에 떠 있는 미 제6함대와 영국함대는 타오르는 니코시아의 불길을 지켜만 보았다. 유엔 또한 당사국들의 자제를 호소하며 대화를 종용할 뿐 이었다. 결과적으로 터키는 평화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키프로스의 절반을 차지했고 민족 갈등은 임시적으로 봉합되었던 것이다.
 현재 그리스와 터키는 키프로스 사태에 대해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스는 터키군 철수와 연방국가 수립을, 터키는 협상을 통한 분쟁해결과 국가연합을 주장한다. 오늘날 남북 분계선을 통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키프로스 사람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통일방안 제안과 주기적인 쌍방 대화는 키프로스 분쟁 해결의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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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키프로스 통일협상 연혁


  2002-EU 동시가입 전제 통일방안
           양측 국민투표 실시, 결과 무산
  2005-그리스총리 터키 방문,
           양국관통 가스관 기공식 참석
  2008-북 키프로스 대통령 통일회담 개최
  2009-양측 연례군사훈련 잠정 중단
  2010-유엔사무총장 주관 3자 평화회담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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